[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응답하라 1972' 뒷이야기

조회수 2013. 12. 23. 11: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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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였다.새팀을 맡아 정신이 없는 이차만형만 비행기를 못 타고 모두 모였다.따뜻한 축구를 읽은 많은 분들이 형들을 기억해 줬다.

늘 수덕이형 인권이형 호야형....이렇게 불렀기 때문에 이제는 정확한 이름도 가물가물한 판에 꼼꼼 하기로 소문난 지점장 출신 노흥섭 형이 명단을 말들면서 긴가민가 하던 나는 그대로 옮겼다. 그런데 팬들은 알아내고 지적해 줬다. 이제 흥섭이 형도 그다지 믿을만한 나이는 아닌모양이다. 하하.

많은 분들이 변호영 형이 빠진 것과 정강지 형을 궁금해 했다. 호영이 형은 지금 홍콩에 계서서 오실수가 없었고 강지형은 오실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기억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태종대에서 횟집을 하시면서 직접 요리를 하시는 임태주 형은 주말이라 주방을 비울수 없다고 하시다가 내가 조르자 기꺼이 올라오셨다. 가게일로 다음날 5:30에 내려가셔야 한다더니 그것도 빵꾸! 형수한테 엄청 혼이 나시겠지만 그날 저녁은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을 만큼 재밌었다.

이천이 형도 집안일이 있으시다고 하는데도 꼭 오셔야한다고 졸랐더니 그러마고 하신거다. 인권이 형은 병원에 조금은 신경쓰이는 약속이 잡혔는데도 "형, 그렇게 이상한 것이면 병원에서 바로 오라고 하지 날자를 정하겠어?"라며 억지를 부렸더니 병원 약속을 내년으로 미루고 진주에서 올라오셨다.

[사진 :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오신 박경화 선생님이 박영태 형과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

그런데 한가지 웃을수 조차도 없는 해프닝이 있었다. 박경화 선생님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박종환감독의 번호를 잘못알려준 것이다. 알아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해서 끊었는데 어쩐지 가장 먼저 도착하실 선생님이 시간이 되도 안나타나셔서 전화를 했더니 연락을 못받으셨다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오셨다.

나의 선생님이시기도 하고 두리의 배제고등학교 선생님이기도 하시지만....더 중요한 것은 삐지기도 잘하시는데...진짜로 큰일날뻔 했다. 박종환 감독님 미안합니다. 최성환이란 놈이 번호를 잘못 가르쳐줘서 그런 실수를 했네요. 그럼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거듭 죄송합니다.

식사를 하는 중에 박경화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70을 바라보는 머리가 하얗게 센 형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모습은 늙어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 스포츠맨들의 끈끈함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군대갔다가 훈련소에서 너무 배가 고파 밤중에 몰래 건빵을 먹다가 걸려서 죽을만큼 혼이 난 이후로 별명이 고문관이 된 유기흥 형은 조용했다. 형, 왜그렇게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선배님들이 있은데 내가 뭘......." 김기복 이세연같은 형들이 옆에 있었다. 화랑팀은 예순이 훌적 넘었어도 선배들 앞에서는 아직도 입을 다무는게 편하다.

하하하.

고재욱 형은 보기에 좋았다.

"야, 재욱아, 넌 안늙었다. 보기 좋다 야!""형, 나는 위가 내꺼가 아니야!!"

가발이다. 하하하.

"야, 너는 위가 남의 꺼냐? 나는 이게 내꺼가 아니다!"며 혀로 틀니를 쑥 내미는 세연이 형!

[사진 : 젊을 때보다 머리가 풍성해진 고재욱 형]

두리는 지들이 숙소에 모여서 하는 짓을 할아버지들이 똑같이 하고있으니 너무 재밌어서 아주 넘어갔다.

모두들 우리집에 오시면서 그 집에는 술이 없을테니 끝나고 소주 한잔씩 하자고 하셨단다. 우리집에서는 술을 마셔도 안되고 달라고 해도 안된다고들 생각하시니까 미리 포기를 하고 오신거다.

그러고 보니 술도 없는, 재미없을 것이 뻔한 범근이네 집에 모두들 기꺼이 오신게 더 고마운거네. 그런데 아내가 이날 만큼은 형들을 위해 술을 많이 준비했다. 아주 좋은 것으로 많이. 범근이네 집에서 술을 만나니 더 반가운 것 같아 보였다. 모두들 많이 마셨지만 젊어서도 머리가 없어서 영감이라고 놀렸던 영태 형이 제일 늦게 까지 좋아하시면서 거듭거듭 마셨다.

밀양에서 올라오신 영태 형은 연세대학교 후배인 아내에게 "내가 연세대학교에서 제일 좋은 상대 경영학과를 5년이나 다녔다"는 얘기를 스무번쯤 하시고 나서 끝이났다. 두리가 지방에서 오신 형들을 힐튼호텔로 모시고 가서 방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반드시 침대까지 모셔다 드려야 할만큼 많이 마셨다.

"이천이 형이 회택이형보다 더 잘했어!" 우리들 나이에는 선배가 무조건 더 잘하는 것인데 큰일 날려고 누군가가 술기운을 빌려서 얘기했다. 그동안 기에 눌려서 입을 다물었던 세연이 형의 무용담 중 몇개도 후배들의 술기운을 빌어서 "뻥이 좀 많이 들어갔다!"는 것으로 이날 밤 정정했다.

하하하.

이렇게 겁이 없어지면 자리를 파하는게 술먹는 룰인가보다. 아직도 너무나 건강하신 박경화 선생님이 한곡조 부르시고, 재욱이형도 근사하게 한곡조....

하일라이트는 정남이형과 호야형이 손잡고 한곡조. 얼굴은 모두 붉었고 마음은 1972년 당시의 청춘으로 돌아간 밤이었다.

[사진 : 호야 형고 정남이 형이 사이좋게 노래 한 곡.]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50도가 넘는 독한 술을 마셨다. 형들과 함께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목은 불이 난것처럼 뜨거운데도 취하지는 않았다.

모두 함께 싸인을 해서 싸인볼을 하나씩 나눠가졌다. 태극기와 별들이 새겨진 '70년대의 별들'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었다. 흑백 동영상이 담겨진 USB 를 두리와 친구들이 준비했고, 장사익 선생님의 봄날은 간다 대전부르스 비내리는고모령 타향살이 동백아가씨... 같은, 형들이 좋아할만한 노래들이 담긴 CD도 준비했다.

[사진 : 함께 나눠가진 티셔츠와 사인볼 등]

모두들 서로서로 이제 자주 만나자고 거듭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이렇게 모이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날밤 만큼은 이렇게 자주 서로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너무 행복했고 그 여운은 아직도 달콤하게 남아있다.

아내에게 두리에게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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