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응답하라 1972!!

조회수 2013. 12. 19. 20: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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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이 드라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우리집 애들은 자신들의 어린시절이 오버랩되어서 행복한 과거여행을 하는 기분인 모양인데 두리 엄마는 삼천포라는 상당히 어리버리하고 엉뚱한 주인공을 보는 재미로 이 드라마를 본다고 한다.

나는 별 재미를 못 느낀다.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적 공감대를 느끼는 것도 아니라서 물에 떠도는 기름같다.

사람마다 자신들이 기억하고 공감하는 시간대가 있다. 자신들의 시간대에 좋아했던 음악을 듣거나 그때 좋아하던 스타들을 떠올리면 당시의 감성이 조금은 살아난다. 그래서 연령대마다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건과 인물과 기억들이 다를수 밖에 없다. 지금 50대를 넘긴 분들은 아직도 나를 차범근 선수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리고는 박지성이 아무리 잘해도 차범근이 최고라고 부득부득 우긴다.ㅎ

내 기사가 실릴때면 당시 자신이 어렸을때 부르던 떳다 떳다..... 이런 노래들이 생각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당시에 축구는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수 없을만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국가대표팀이 축구를 하면 서울 시내에는 자동차가 다니질 않아서 텅빈 서울거리 모습이 신문에 종종 실리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부잣집에 한대쯤 있는 티비앞에 모여 앉아서 박수치고 소리지르며 응원을 했던 시절이다.

< 1973년 서독월드컵 예선을 위해 모인 국가대표 선수들. 왼쪽 맨 뒤가 막내인 나다. >

김정남,김기복,김호,김재한 이회택,노흥섭,박이천,정규풍,박수덕,강기욱,박영태,고재욱,이차만,김진국,임태주,김인권,유기흥,김기효,고봉우,김호곤,이세연,김경중,그리고 코치에 박경화. 이 이름들에 가슴이 설레이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은 50대가 넘었을 것이며 60,70대가 대부분일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대단한 축구팬들이다.

이 이름들은 1972년, 만으로 18세가 채 되지 않았을 때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뽑힌 나의 첫번째 국가대표팀 동료들이다. 당시 국가대표 선수들은 거의 일년내내 합숙을 하던때라 이 형들은 그냥 함께 축구하고 같이 살았던 식구들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회라고 해봐야 매해 열리는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컵 , 태국의 킹스컵, 한국의 대통령배, 올림픽 예선, 월드컵 예선,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정도의 수준이 전부였는데도 그 당시 이런 대회의 승패는 온 국민들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열받아서 숨이 넘어가기도 하는, 정말이지 지금의 월드컵 못지않게 진지하고 중요한 경기들이었다.

이 형들이 내일 모두 모인다. 최근에 현대 감독을 그만두고 연락이 안되고 있는 김호곤형하고 소식을 알수없는 김경중 형만 빼고는 모두 모인다. 두리와 아내가 마련해주는, 예순 하나 환갑을 보내는 해의 마지막 선물이다.

이 중에는 축구계 주변에서 늘 부딪히고 얼굴을 보는 형들도 있지만 40여년동안 단 한차례도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 형들도 많다. 축구와 전혀 상관없이 살고 계시는 형들도 꽤 있다. 전화를 드렸더니 모두 즐거워 하신다. 진주,부산,대구에서도 모두 올라오신다. 단 한사람도 싫다는 분이 없다. 물론 최재모 형이나 황재만 형처럼 세상은 먼저 떠나신 분들도 있다. 스무명이 훨씬 넘는 1972년 국가대표팀이 완벽하게 모이는 것이다.

누구는 명단을 보더니 '살아있는 축구 박물관이네요!"한다. 민병대 문정식..으로 이어지던 코칭 스태프중에는 박경화선생님이 아직 건강하시다. 다행이다. 당시 형들과 함께 뛰던 흑백 티비의 어지러운 동영상들도 구했다. 아무리 화질이 나빠도 자신들의 모습은 담박에 알아보지 않을까? 해설자의 말투는 지금 북한 티비의 뉴스진행자의 그것하고 똑같다. 사용하는 언어도 상당히 그렇다. ㅎㅎㅎ

아내는 70년대의 별들을 상징하는 로고를 만들어서 자수로 박아 티셔츠를 만들었다. 나이때문에 시들어버린 형들의 자부심이 이 티셔츠를 입고 그때만큼은 아니라도 조금은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축구의 꽃은 '골'이다. 그러니 공격수가 스타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같이 뛰고도 항상 나는 후한 대접을 받아왔다.

'야 범근아, 너 골 넣으라고 우리가 다 뛴거다!'

맞다. 지금 나는 너무 흥분해 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너무 업되어서 좀 도가 넘고 있다고 결국 한마디를 들었다. 이 이름들을 알지 못하는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께 한번쯤 이 이름을 불러드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축구를 모르신다고 해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름 몇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눈부시던 20대의 청춘에 만났는데 이제는 자식들도 아니고 손주들에게 그 청춘을 물려줘야 하는 자리에 서있는 우리들. 그 시간 만큼 많이 변하고 약해지셨겠지만 부디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내일 만나기를 바란다.

# 차붐의 특별부탁! : 부모님께 여쭤보시고 기억나시는 분들 얘기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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