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클래식도 축구처럼

조회수 2013. 12. 6.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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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듣는다. 내가 고상하거나 음악을 많이 알아서 듣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클래식은 고사하고 대중음악도 아는 노래가 없다. 고인이 되신 정주영회장님께서 '쨍하고 해뜰날'을 흥나게 한 곡 하시고는 이어서 날더러 해보라고 마이크를 주셨을 때도 마이크를 잡고 부른 노래가 기껏 '고향의 봄'이었다. 그것도 모두의 도움을 받아서 2절까지 불렀다. 참 한심한 상황이었을 것이다.ㅎㅎ

음악이라고 하면 어차피 좋아하는 장르나 작곡가도 없고 가사를 아는 노래는 더더욱 없다보니 아무 생각없이 음악이 떠돌아다니게 두는 것으로는 클래식이 더 편한 면이 있다.

영화를 전혀 보지 않으니 영화음악도 당연히 모른다. 듣고는 있지만 사실 음악의 제목이나 작곡가 같은 것은 아예 모른다. 그 이상의 것은 당연히 모르고. 그런데도 일을 할때는 클래식을 듣는다. 아내가 골라서 걸어 놓은 CD가 계속 돌아가거나 클래식 채널을 그냥 아무 생각이나 느낌 없이 켜놓는 것이다.

(사진 설명 : 음악회에 갔다가 두리 엄마와 한 컷. 연세대학교 음대를 나온 아내 덕분에 종종 이런 곳에도 온다.)

내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할때 원정을 가게 되면 집에서 CD 몇 개를 챙겨준다. 모짜르트가 대부분인데 더러는 대금도 있고 거문고도 있다. 호텔방에서 일을 할 때도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CD를 걸어 놓는다. 1997년 월드컵 예선을 하러 카자흐스탄에 갔을때 훈련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클래식 TV가 켜져 있었다. 룸메이드가 늘 클래식을 듣는 내가 음악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 줄 알고 신경을 써 준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당시 카자흐스탄 호텔의 서비스 수준으로 볼 때 프로라고 할만하다.

내 칼럼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 혹시 우연히 내가 클래식을 들으며 일을 하는 모습을 보더라도 뭘 알아서 듣고있는 걸로 속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렇게 집이나 방에서 일을 하면서 듣는 음악은 그나마 편하고 좋은데 연주회장에 가서 듣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때는 알지도 못하는 곡을 집에서처럼 건성으로 듣지 못하고 집중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따라 나서기는 하지만 정말 몸이 저절로 비틀어진다. 곡이 끝나고 모두들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모습이 나에게는 음악이 끝나서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다. 그때마다 나와 같은 심정으로 박수를 치는 분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식한 나를 두둔한다.

며칠 전 음악회에 갔다. 물론 나에게는 일신이 편하기 위한 보험 차원의 동반이었다. 홀에 음향이 시원치 않다는 둥 계속 마땅찮아하는 아내 옆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두시간이 빨리 지나가야 할텐데..'하는 일념으로 느긋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문득 지난해 제주도에서 금난새 선생과 제법 열을 올리면서 나눴던 얘기가 떠올랐다.

해마다 제주도에서 하는 금난새 선생님의 음악회를 가는데 지난해에는 음악을 듣는 나의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도 해주었다.ㅎ 사실 제주도 음악회의 곡들은 짧은 것들이라서 90분 경기를 뛰는 나의 집중력으로는 참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곡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배려해서 쉬운 것들로 고른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좀 수월하다.

(사진 설명 : 금난새 선생과 축구 얘기를 나누게 될 줄이야. 결국 모든 것은 축구로 통하는 법이다. 하하.)

그날 제주도에서 음악회가 끝나고 리셉션이라는 이름의 수다판이 벌어졌을 때, 금난새 선생이 그랬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연습시킬 때 축구 얘기를 자주 한다고. "축구 선수가 공이 올 때를 기다리고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실수를 안하지 넋놓고 있다가 자기 앞으로 공이 오면 어떻게 잘 할 수 있겠냐?"

사실 이 얘기는 나도 훈련중에 가장 자주하는 얘기다."미리미리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움직이면서 기다려!!!"

그날 밤은 상대가 대 음악가인데도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 음악이 아니고 훈련법을 얘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결국 음악감독이나 축구감독이나 하는 일은 똑 같은 것이었다. ㅎㅎㅎ 금난새 선생하고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며칠 전에 갔던 두시간의 음악회가 많이 수월해졌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내내 어려운 음악을 듣는 것 보다는 어느 연주자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다가 지휘자의 사인에 어떻게 연주를 시작하는지를 눈여겨 보는 데 집중했다. 음악애호가 입장에서 보면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 셈이다. 그래도 축구를 보는 심정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축구 포지션처럼 파트를 나눠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선 몸이 뒤틀리는 것이 훨씬 덜했다. 특색이 다른 악기들이 지휘자의 사인에 맞춰 들어오고 나가고 쉬고 연주하고 하는 모습이 흡사 축구경기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정원처럼 날렵한 악기도 있고 최용수처럼 묵직하고 파괴력 있어 보이는 소리도 있었다. 뒤에 진을 치고 있는 커다란 악기들은 수비수들 처럼 낮고 무거웠다. 미친듯이 빠르다가도 템포를 바꿔서 쉬어가는 호흡이 축구의 완급조절을 하는 모습과도 요령이 같아 보였다.

음악회는 앞으로도 나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어차피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따라 나서야 한다. 그럴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즐겨야 한다. 두 시간을 버틸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해준 금난새 선생에게 감사의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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