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첫 눈 단상

조회수 2013. 11. 27. 17: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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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축구 보느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더니 눈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다.올 들어 처음이다.얼마전에도 눈이 많이 왔다는데 그때 나는 두바이에 있어서 사진으로만 봤다.

남아공에서 우루과이한테 지고 두리가 펑펑 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 후면 브라질 월드컵이다.벌써 4년이 지나간 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지만 참 빠르다.

평창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한 해가 아닌 계절을 하나하나 조각으로 기억하며 보내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시내에는 벌써 봄이 왔는데도 산꼭대기에 있는 우리집 나무들은 싹을 틔울 생각을 안했다.

이사하면서 옮겨심었더니 죽었나 보다며 나무등을 긁어보고 가지를 잘라보고 조바심을 치면서 기다렸는데, 때가 되니까 체리도 열고 보리수도 달리고 블루베리도 제법 많이 열렸다. 감나무는 죽었다.

올여름은 비가 무섭게 왔다. 청소년 대회 중계를 하느라 터어키를 다녀 왔더니 온 집이 물에서 건져낸 스폰지처럼 건드리기만 해도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해 나는 날을 기다렸다가 서재의 책들을 말리고 습기를 빼내고 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사실 아파트에서 지낼때는 이런 일들이 나하고는 상관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온 가족이 모두 나서야만 한다. 습기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만큼 날이마르니까 이제는 쑥쑥 자라는 잔디를 깍아줘야한다. 이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잔디 깎기는 독일에서도 많이 했기때문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축구장이 생기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여름 내내 열심히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잔디 이발을 해줘야 한다. 물론 아침 저녁으로 물도줘야한다. 주말이면 집에와서 자고가는 외손주들한테는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주렁주렁 달린 블루베리가 익어갈 즈음부터 새들이 더 자주 나타났다. 블루베리를 먹으러 오는 새는 꼭 두마리가 같이 와서 자기 짝이 맘놓고 블루베리를 따 먹게 하려고 한마리는 소나무가지에 앉아서 망을 봐준다. 나는 그 모습에반성했다. 그 새들 덕분에 우리는 블루베리를 한개도 먹어보지 못했다. 한달이 넘게 마지막 하나까지 깨끗이 다 찾아서 먹고는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나타난게 벌새다. 댕강나무 꽃을 좋아한다. 너무 작고 빨라서 우리는 그냥 큰 벌인가보다 했는데 마당에 앉아서 취재를 하던 중국 CCTV 일행이 벌새라고 일러줬다.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도저히 사진으론 찍을수는 없었다. 동영상으로 찍어서 봤더니 새였다. 저 작은 날개를 저렇게 빨리 움직여서 수천킬로를 가다니. 경이롭기도 했지만 가엽고 기특했다.

얼마전 마당에 내놓았던 화분들을 모두 들여놨다. 엄청나게 커서 나는 물론이고 아저씨들 몇분이 끈을 매고 들어 옮겨야 한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봄이 되면 그렇게 또 밖으로 나갈것이다.

눈이 오면 새들이 먹을게 없어진다. 독일에서는 곡식들을 망에 넣어서 매달아 놓을 수 있는 먹이를 판다. 한국에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곡식을 꿀로 버무려서 만들어 산시춘 나무에 매달아 놨다. 얼마가 지나니까 소문이 났는지 새들이 모여들었고 다 먹었다.

두리 엄마는 소반에 연시랑 과일 같은 것을 겨울 내내 내다 놨다. 두리네 집을 좋아하라고. 그랬더니 새들이 두리네 집을 정말 좋아했다.

오늘 눈이 오는 바람에 겨울이야기를 쓰고있는데 택배가 왔다. 하동 장에서 털신발이 올라왔다. 이웃에 사시는 장사익 선생님네도 보내드릴 것이다. 두리 엄마가 지난 겨울에는 우리가 집에서 입는 오리털 조끼를 보내드려 함께 입었는데 올해는 털신발을 함께 신고 싶다고 주문을 했다.

아침에 손님이 오면서 김우빈인가 하는 친구가 우리집 아래에서 촬영을 하더라고 하니까 멋있다며 요란을 떨더니 털신발이 오니까 다시 장사익 선생님이 좋단다. 이해는 간다. 사람들도 내가 좋다고 멋있다고 그러다가 두리가 나타나면 모두 두리한테로 가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니까.

뭐, 그러거나 말거나다. 나는 오늘 누가 뭐래도 기분이 최고다.

"명장밑에 약졸이 나올수 있겠습니까. 모두 감독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며 항상 보은의 마음은 제가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아시아 최우수 감독이 나를 좋아한다는데 김우빈인가 하는 친구가 문젠가?

두리야, 최용수 감독님 잘 모셔라.

아시아 최우수 감독이시다.

ㅎㅎ

(글을 다 쓰고 읽어보니 한심하다. 아무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얘기가 이렇게 럭비공처럼 튀어서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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