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정성룡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조회수 2013. 11. 25. 17:04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지난 금요일, 축구협회 비젼 선포식에 갔다가 재한이형을 만났다.김재한은 70년대 아시아 축구 최고의 장신 스트라이커다. (잡지 표지 사진 왼쪽)

↑[최고의 공격 콤비로 이름을 높였던 김재한 선배(왼쪽)와 나]

내가 선배들 식탁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어느 형이 부러운듯 한마디 했다."야, 범근이가 중계하면서 네 얘기 하더라.""응. 나도 봤어."은근히 좋아한다. 아니 귀가 입에 걸리면서 내놓고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형이나 나나 후배를 잘 만난거다.형은 김신욱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뜨는(?)거고 나도 흥민이 덕에 신문에 더 자주 나오니까. 흐흐흐.

"형, 헤딩은 형이 분명히 잘해. 근데 움직임이나 기술은 형이 신욱이 못따라가. 인정하지?""응. 걔가 잘해."

당시 말레이시아나 태국, 버마(지금의 미얀마) 같은 동남아 대부분의 선수들이 형 가슴까지 밖에 안오던 때라 190cm가 넘는 키의 형은 거인에 가까웠다.

어느 나라의 누구도 감히 같이 떠서 헤딩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무기'였다.

물론 나는 공을 치고 달리면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스피드가 무기였고. (엄청난 스피드라고 말하고 싶지만..ㅠㅠ)

내가 대놓고 "형이 신욱이만은 못하다"고 얘기할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환갑을 넘기고 있다는 여유도 있지만 형이 워낙 느물느물하고 푸석푸석한 편한 사람이라서 그렇다.그러니까 그다지 악착스럽거나 여물지 못한, 좋게 말하자면 순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꽉차지 못하고 엉성한 형하고 내가 70년대 한국축구의 최전방을 지킨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키와 스피드로 아주 재미난 축구를 했다.지금은 애들 걱정 손주 걱정에 늙어가고 있을 당시의 어린 아이들은 '떴다 떴다 김재한 차범근'을 부르면서 좋아했고 우리가 경기를 할 때면 좁은 대한민국에 차가 다니지 않을 만큼 사랑을 받으며 축구를 했다.

↑[1972년, 대표팀 소속으로 브라질 산토스와 친선 경기를 마친 뒤. 펠레 왼쪽 짙은 상의를 입고 웃는 이가 이세연 선배. 나는 화면 왼쪽 두번째에 있다. 펠레의 오른쪽은 이회택 선배 (사진=대한축구협회)]

그런데 지금 대표팀을 보면서 빼놓을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요즘 정성룡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더욱 생각나는 선배, 이세연이다.그는 골키퍼이면서 키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다부지고 무서웠다.

뛰어난 각자의 무기를 앞세우고 축구를 했던 최전방의 어수룩한 우리들과는 달리,최후방의 이세연은 자신의 핸디캡을 오기와 투쟁정신으로 극복하는 최고의 골키퍼였다.

당시 아시아 축구는 마치 한조에 속한 팀들이 리그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박스컵이니 킹스컵이니 메르데카배니 하면서 교류가 많아서 서로가 서로를 훤히 알고 있었다.

'감히 누가 내 문앞에 얼씬거려!' 하면서 세연이 형이 두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마주치며 얼르면아시아 공격수들은 공을 놓고 도망갔더라는 얘기가, 나는 70% 이상 사실이라고 믿는다.

우리 골문 앞에서 공을 몰고 다니면서 까부는 선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불 꺼놓고 겁주고 한방 날렸다는 얘기도 당시 같이 뛰던 우리는 절대 허풍 같은 것이 아닌 90%이상의 실화로 믿고있다. ㅎㅎㅎ

배짱, 오기, 자신감..이런 것은 골키퍼에게 가장 큰 무기다. 타고 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길러져야한다.

나도 만 18살에 국가대표선수가 되서 대선배들한테 눌려 기를 못펴고 어리바리하자 당시 민병대 감독님이 투견장에 데리고 가서 나를 맨 앞자리에 앉혀 놓고 보게 했다.

정성룡 골키퍼는 참 많은 것을 타고 난 아주 훌륭한 골키퍼다.지금 흔들리고 있다. 가지고 있는 기량과 지금 경기장에서 나타나는 기량은 차이가 있다.

서정원이나 홍명보, 그리고 나 차범근도 정성룡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선수인지 이미 알고있다.그래서 감독들은 흔들리는 정성룡을 계속 경기장에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감독들은 정성룡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기다리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흔들림은 지켜보기가 참 안타깝다.오죽하면 유럽의 구단들이 비싼 돈을 들여서 심리치료사를 두겠는가.

빨리 제 자리로 와라.이전에 네가 기가 막히게 했던 경기들을 한번씩 돌려서 봐라.너가 지금 잃고 있는 너의 모습이 보일것이다.슬럼프가 없는 선수가 어디 있겠냐.얼른 회복하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라.'나는 아시아에서 최고의 선수다!' 라고..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