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나는 요즘 시장이 참 좋다

조회수 2013. 11. 8. 15: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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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젊으시네요!!"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티비보다 훨씬 잘생기셨네요."

이렇게 훌륭한[?] 립서비스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ㅎㅎㅎ

사람들은 얼굴이 알려진 소위 유명인들을 만나면 자신들과 다를거라고 생각한다.그리고 다르게 살고 있을거라고도 생각한다.그러다가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유명인들은 보면 소박하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글쎄...지금 세상에서 얼굴을 알리고 사는 사람들 중에 출생이 소박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금 더 여유가 있고 덜하고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 50대를 넘긴 사람들의 생활은 너나 할것 없이 모두 가난했다.그럼에도 모두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가난하다는 생각은 못하고 산 것도 사실이다.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소를 끌고 풀을 먹이러 가는 일은 정말 싫었다. 흩어지는 보리밥을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가면서 볼이 터지게 먹었지만 밥을 비비는데 참기름을 넣는 호사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자랐다.

고추장은 고사하고 언젠가 한번 배터지게 맛있는 것을 먹어보는게 항상 간절한 소원이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러다 축구를 했고 축구는 나를 아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 부자의 기준은 없다. 진짜 부자가 들으면 비웃겠지만 그래도 나는 늘 내가 아주 부자라고 생각하고 고마워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축구를 잘하는 나를 좋아해 주었다. 예전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나를 좋아해주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자꾸 고맙게 느껴진다. 조금씩 철이들고 늙어간다는 증거인가?

요즈음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재래시장이다.

남대문 동대문 방산시장 경동시장...가릴거 없이 다닌다.정말 즐겁다. 남대문시장은 어찌나 자주가는지 나를 보면 아저씨들이 "나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한다. 상가번영회 회장 수준이라고 두리엄마는 재밌어 한다.

항상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만두가게에 가서 줄을 설라치면가게 아줌마는 목을 빼고 자기 차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우리 국가대표 감독님이 오셨으니까 먼저 드리겠습니다!!" 이러면서 새치기를 시켜준다. 나의 화려한 축구경력이 남대문 시장에서 새치기를 하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 그리고는 손바닥만한 찐빵도 하나씩 더 주신다. 뜨끈뜨끈 김이 올라오는 찐빵을 먹는 즐거움은 행복의 경지에까지 나를 데리고 간다. 공짜라서 더 맛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ㅎㅎㅎ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주 깨끗한 기름에 직접 튀겨주시는 도너츠다. 중부시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튀김대를 지키고 계시는 분들인데 직접 마련하신 찹쌀로 곧바로 튀기시기 때문에정말 쫄깃쫄깃하고 맛있다. 앙금이 들어있는 것 두 개, 안들어 있는 것 두개를 먹어야 만족스럽다. 꽈배기보다는 찹쌀도너츠가 더 맛있다.

수원삼성 감독을 그만둔 이 삼년 전부터는 오일장 까지 진출해서 즐거움을 넓혀가고 있다.며칠전에는 화개장도 다녀왔다. 사실 시장이나 오일장은 어린시절 나에게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장 한가운데 서면 지금도 알수없는 즐거움에 괜히 두리번 거리게 된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경제발전의 풍요로움은 거의 폭력처럼 밀려왔다. 정신이 없었다.멀미가 날 지경까지 간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부를 통해서 얻어지는 풍요로움은내가 어렸을때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가 풀어놓은 장보따리가 주는 풍요로움처럼 설래고 흥분되는 그런게 아니었다. 늘 뭔가 아쉬웠다.그래서 요즈음 부쩍 재래시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마누라가 주섬주섬 사는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을 누비는 즐거움은 거대하게 잘 치장된 콘크리트건물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선거때면 줄줄이 사람들 끌고가서 배추하나 들고 사진찍는 그런 시장모습의 시장하고도 다른 냄새가 있는 곳이다. 동태하나들고 사진찍는 후보들의 모습은 시장의 즐거움을 반감 시키는 왜곡된 홍보다. 시장 매니아로서 불만이다.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사람냄새를,내 또래의 50-60 대에게는 옛 시간을 기억해내는 행복기계로 시장가기를 강추하고 싶다.

지금은 빨간 감이 많다.마누라가 오늘은 겨울에 홍시를 만들어 먹을 대봉을 사러 시장에 나가자고 한다. 그래서 원고를 빨리 쓴다.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오늘 시장 나들이는 보나마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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