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흥민이가 잘하는걸 어떡해!

조회수 2013. 10. 25. 16: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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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했던 명장 중에 크라마 감독이 있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우리팀에 쩨셀이라는 재능이 아주 뛰어난 유망주가 있었는데 크라마 감독은 쩨셀을 손주처럼 아끼며 기대를 많이 했다. 시합전 합숙을 할때면 감독은 쩨셀을 내 방에다 집어 넣었다. 영화를 보겠다고 조르는 째셀을 달래서 일찍 재우는 게 시합전 내 숙제였다.

모두들 단복을 입고 가야 하는 자리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면 난감해진 감독은 야단도 치지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속닥인다. 선수들은 쩨셀을 달래는 감독 흉내를 내면서 키득거리지만, 맘이 약한 감독은 드러내놓고 손주같은 그 어린선수를 야단치치 못했다. 당시 쩨셀은 스무살이 채 되지 않았다. 요즘 흥민이를 보면서 그 당시 크라마 감독을 이해한다.

두리엄마는 중계하면서 흥민이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거듭 거듭 얘기한다. 심지어는 당신이 너무 칭찬을 많이 하는게 흥민이한테 좋은게 아니라고 협박도 한다. 그러마라고 하기는 하지만 중계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질 않는다.

흥민이가 너무 잘한다. 내가 중계를 했던 아이티와 말리전에서 흥민이의 경기는 굉장히 훌륭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덤으로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이 두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뛰어났다. 거기다 골까지 넣었다. 당연히 칭찬을 해줘야 한다. 물론 어리니까 더 귀엽고 분데스리가 선수니까 더 애정이 가고 레버쿠센 후배니까 더 각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부분도 있을것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는 오히려 흥민이가 해낸 것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마치 설익은 유망주의 그것처럼 과소 평가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그 나이에 분데스리가에서 프로선수로 뛰고 있기만 해도 독일에서는 부러움과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 흥민이는 가장 비싼 선수다. 골도 잘넣는다. 분데스리가에서 두자리수의 득점을 한다는 것은 베테랑 공격수들에게도 자랑할만한 성적이다. 정말 누구나 할수있는 그런게 아니다. 결코 과소평가 할수 없는 성적이다.

그걸 스무살 남짓의 한국선수가 해냈다. 레버쿠센이 괜히 그 많은 돈을 주고 흥민이를 샀겠는가. 이런 우리선수가 자랑스러워서 내가 흥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두리엄마는 칭찬좀 그만하라고 나를 말린다.

이제 나는 대견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나의 기록이 곧 깨질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다시 들어가 골을 넣을수도 없는데 흥민이가 한번 깨버리면 나는 영원히 흥민이 밑에 있을것 아니겠는가ㅎㅎㅎ

1904년에 Bayer 04 팀이 만들어져서 110년이 되었다. 110년의 역사중 하일라이트는 88년 내가 골을 넣었던 UEFA 우승이고 내가 넣은 3:3 동점골로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갔기때문에 이 역사적인 순간의 가장 큰 공은 나하고 승부차기를 지킨 골키퍼 폴본이다.흠.

이걸 넘어서려면 챔피온스리그를 우승하든지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든지 해야한다. 그동안 레버쿠센팀은 번번히 이 두대회의 우승 문턱에서 넘어졌다. 그때마다 88년 당시 맴버들이랑 스테프들은 행여 최고의 자리를 넘겨줄까 전전긍긍하면서 이상한 응원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흥민이가 그걸 해내길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나처럼 결정적인 공을 세워서 훗날 레버쿠센의 역사를 얘기할때 차붐과 손을 가장먼저 꼽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동안 독일에 갈때면 흥민이를 보러 가겠다고 함부르크 감독에게 몇차례나 얘기를 해놓고도 못가봤는데 이번에 레버쿠센에 들를수 있어서 좋았다.

레버쿠센 식구들은 흥민이를 정말로 좋아하고 예뻐한다. 어느날 국가대표경기를 한다고 한국에 다녀오더니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이상한 캐릭터가 커다랗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며 귀여워 죽겠다고 난리다.

그정도면 팀 생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냥 나한테 듣기 좋으라고 하는건지 정말로 좋아하는지 정도는 구분할줄 안다.

그리고 또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사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축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선수들이 부지기수인데 그 나이에 축구를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참는다는 것도 나는 고맙다.

크라마가 그렇게 아끼던 유망주 쩨셀처럼 철없이 날뛰지도 않는다.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나는 흥민이의 성공을 기대하고 싶다.

흥민이는 두리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나는 흥민이의 할아버지가 된다. 손주가 귀엽지 않은 할아버지는 이세상에 없다.

그래서 더욱 대견하다.손흥민!힘들어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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