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를 위한 변명, 언제까지 리시브 타령만 할 것인가

che 2016. 8.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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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를 취재하다보면 패장에게서 으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리시브가 전혀 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서브 리시브의 안정은 다양한 패턴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서브 리시브가 되지 않으면 공격패턴이 단순화되어 상대 블로킹이 2명 내지 3명까지 몰려든다. 설사 셧아웃시키지 못하더라도 2~3인 블로킹이 공격 코스를 제한하면 코트 후방을 지키는 수비수들도 한결 수비하기가 편해진다.

▲네덜란드전의 패인은 리시브 맞다.

한국은 1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지뉴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2016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1-3으로 패했다. 이날 패인 역시 서브 리시브였다. 서브 에이스만 12개를 허용했다. 에이스로 연결되진 않았어도 공격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게 어렵게 받아올린 리시브는 훨씬 더 많았다. 한국은 리시브되지 않은 공을 주로 전위 레프트 공격수에게 올리는 단순한 공격패턴을 가져갔고, 이를 미리 알던 네덜란드는 2~3명의 블로커를 따라붙게 했다. 네덜란드가 한국의 공격을 코트에 직접 떨어뜨린 블로킹은 8개에 불과했지만, 대부분이 유효블로킹이 되어 받아 올렸고, 이를 라이트, 레프트, 센터 가리지 않는 다양한 공격패턴으로 한국 코트를 맹폭했다.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획득을 노리던 여자배구 대표팀의 도전이 8강에서 멈춰섰다. ‘배구 여제’라 불리는 김연경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에 큰 기대를 걸었던 팬들의 바람은 리시브 불안을 초래한 박정아를 향한 비난의 화살로 바뀌어 날아와 꽂히고 있다. 박정아는 이날 팀에서 가장 많은 25개의 리시브를 받았는데, ‘Excellent' 판정을 받은 리시브는 단 4개에 불과했다. 맞다. 이날 박정아의 리시브는 확실히 불안했다. 이에 대해선 전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박정아 뿐만 아니라 리베로 김해란도 24개 중 단 6개만을 ‘Excellent' 판정을 받으며 올렸다. 팀 리시브의 62.8%를 책임진 두 선수가 흔들리다보니 공격 작업이 원활하게 될리 없었다. 팀 패배의 원인 리시브임을 본 기자도 전혀 부정할 마음은 없다. 


굳이 박정아를 변호하자면, 박정아는 리시브가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1m87의 좋은 신장과 수준급 펀치력을 통한 공격력이 뛰어난 레프트다. 소속팀인 IBK기업은행에서도 리시브는 리베로 남지연과 윙리시버 채선아가 거의 전담한다. 박정아는 후위일 때 상대 서브가 스파이크 강서브일 때만 3인 리시브에 참가하는 정도다. 그랬다면 네덜란드 서브가 대부분 플로터였음을 감안하면, 박정아의 강점인 공격력을 살릴 수 있게 그가 전위로 올라왔을 때 리베로 김해란과 레프트 김연경의 2인 리시브를 경기 초반부터 가동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김연경의 공격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긴 하지만, 이날 김연경이 후위로 빠졌을 때 후위 공격의 활용도가 거의 전무했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고려해봄직 한 시스템이었다. 안 그래도 리시브에 약점을 보이는 레프트 공격수들은 리시브가 흔들리면 공격리듬까지 흔들린다. 이날 박정아는 공격에서도 팀내에서 두 번째인 26번을 시도해 단 4개만을 성공하는 데 그쳤다. 어차피 전위 레프트의 공격비중이 높다면 그의 공격력이라도 살 수 있게 하는 게 나았다.(결과론에 근거한 분석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리시브, 리시브 할건가.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한국 배구는 언제까지 리시브, 리시브 할 것인가. 강한 스파이크 서브와 흔들림과 낙차가 심한 플로터 서브까지. 서브의 위력이 강해진 현대 배구에서 리시브 성공률을 50% 이상으로 담보하긴 쉽지 않다. 결국 리시브가 잘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다양한 패턴 플레이를 구사해 상대 블로킹을 따돌릴 수 있느냐 여부가 팀 전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다.

이날 숨은 패인은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 공격패턴이 너무 단순했다는 것이다. 라이트의 김희진이 공격이 부진하면서 리시브가 흔들렸을 경우엔 대부분 전위 레프트로 오픈성 토스가 올라가거나 센터 양효진이 전위였을 경우 그의 개인 시간차에 의존하는 패턴이었다. 김연경이 전위였을 땐 그나마 공격 성공률이 잘 나왔지만, 박정아가 전위였을 땐 그렇지 못했다.(김연경은 리시브가 그렇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53.19%의 놀라운 공격 성공률로 양 팀 통틀어 최다인 27점을 올리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이는 가위바위보에서 ‘가위’를 내지 않고 상대에게 이기길 바라는 꼴이다. 상대가 가위를 거의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대처하기 참 쉬워진다.

이제 서브 리시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는 ‘서브 리시브가 나빠도 상관없다’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서브 리시브가 항상 좋게 올라올 수 없는 전제 하에 단순히 양 측면으로 올라가는 오픈성 토스가 아닌 센터 공격수들의 속공과 외발 공격, 양 측면으로 빠르게 쏴주는 C퀵 토스를 쏴줄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로테이션에서도 전위, 후위 가리지 않고 4명의 공격수가 모두 공격태세를 갖추고 달려드는, 즉 스피드 배구가 내재화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이 경우에 센터가 공격을 하지 않아도 항상 속공 타이밍에 점프를 떠주면서 상대 블로킹 하나는 잡아두는 플레이가 필수다. 이숙자 KBSN 해설위원도 “현대 배구의 추세를 보면 센터 공격수들이 뛰어난 팀들이 강팀이다. 레프트나 라이트도 중요하지만 센터들이 속공과 이동공격 등 빠르게 뛰어다니면서 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을 보유한 팀들이 대부분 성적이 좋다”면서 “한국은 속공과 이동공격을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센터들이 드물다. 중고교 배구만 봐도 당장의 성적을 내기 위해 키 큰 선수들에게 내내 오픈성 시간차만 시키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결코 그 선수를 위해서도,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 체질 개선을 할 때다. V-리그도 그간 대부분의 이단 공격은 외국인 공격수에게 몰아주고, 리시브가 잘 됐을 때 패턴 플레이로 토종 공격수를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런 전술이 성적을 내기에 가장 유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지속적인 이러한 경기 양상은 토종 선수들로만 꾸려지는 대표팀의 경쟁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여자배구는 김연경이라는 불세출의 슈퍼스타와 함께한 두 번의 올림픽을 4위, 8강으로 마쳤다. 김연경이 “4년 뒤 도쿄를 기약해야 할 것 같다”며 도쿄 올림픽 출전을 시사했지만, 2020년엔 그의 나이도 한국 나이로 서른 셋이다. 지금처럼 뛰어난 운동능력과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도쿄에서 런던과 리우를 뛰어넘는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김연경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전술이 아닌 공격수 전원을 리시브나 로테이션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전술이 실현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V-리그 나아가 유소년 배구부터 입버릇처럼 ‘리시브, 리시브’만 외치는 배구가 달라져야 한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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