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정, '테크노 가드'부터 남긴 불멸의 기록들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입력 2014. 12. 23. 11:43 수정 2014. 12. 2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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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SK 주희정(37)에게 '테크노 가드' 수식어는 더 이상 따라붙지 않는다. 한 때는 밀레니엄 시대를 이끌어갈 그에 대한 기대치가 담긴 세련된 별명이었지만 이제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 표현 대신 'Mr. 쭈'라는 글자가 그의 유니폼 뒤에 적혀있다.

주희정이 프로에 데뷔했을 당시(1997~98시즌) 초등학생이었던 기자가 나이 서른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 시점까지도 그는 여전히 코트 위를 누비고 있다. 그런 주희정이 지난 22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LG와의 경기를 통해 마침내 통산 900경기를 뛰었다.

900경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단순 계산으로도 매년 50경기를 무려 18시즌 동안 뛰어야 이룰 수 있는 기록이다. 주희정은 18시즌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이 기록을 넘어섰다. 데뷔 직후 첫 4시즌 동안에는 45경기 체제가 열렸기 때문에 다소 손해를 본 부분까지 있지만 지금껏 단 10차례밖에 결장하지 않을 만큼 강철 체력을 과시한 덕에 이룰 수 있었던 기록이다.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738경기, 역대 2위), '국보급 센터' 서장훈(688경기, 역대 3위) 등 역대 최고의 선수들과도 상당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으며, 현역 선수들 가운데서는 임재현(604경기), 송영진(592경기), 김주성(583경기) 등이 뒤를 따르고 있지만 이들 역시 주희정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대기록의 가장 큰 밑바탕이 됐지만 고려대 2학년 당시 대학을 중퇴하고 일찌감치 프로에 뛰어든 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군 면제 혜택을 받은 점도 주희정이 소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기록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최근 대학무대에서 얼리 드래프트로 프로에 일찍 도전하는 선수들이 종종 있으나 그 시점이 2학년을 마친 직후인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수상하며 군 면제 혜택을 받은 선수들도 있지만 결국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충족하면서 강철 체력까지 가진 선수가 향후 나타날지조차 의문이다. 사실상 주희정의 통산 경기 출장수는 '꿈의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주희정은 경기수 외에도 각종 정규리그 통산 주요기록에 블록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5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통산 어시스트(5,095개, 2위 이상민 3,583개)와 스틸(1,431개, 2위 김승현 917개)은 경기수 못지않게 불멸의 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며, 통산 득점(8140점, 5위), 3점슛(1078개, 3위), 리바운드(3,226개, 4위)기록 역시 빛난다. 특히 가드 중에서는 2,000리바운드를 넘어선 선수조차 주희정 단 한 명밖에 없다.

농구선수로서 프로에 진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또한 프로에서도 치열한 경쟁 때문에 수많은 선수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한다. 역대 프로 최고의 포인트 가드를 논할 때 이상민, 김승현, 양동근 등에 늘 가려있던 주희정이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팬들 앞에 선 선수는 KBL 역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을 주희정이 18년 동안 코트 위에서 증명해내고 있다.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yuksamo@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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