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 유재학 감독, 그도 '농신'은 아닌 이유

입력 2014. 2. 18. 08:57 수정 2014. 2. 1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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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울산 모비스 유재학(51)은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농구 최고 '명장'이다. 코트 안에서 만가지 수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만수'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지략가인지 대변해준다. 하지만 그도 전지전능한 '농구의 신'은 아니었다.

지난 16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모비스 대 KGC 경기 4쿼터 종료 3분 39초전. 77-64로 크게 앞선 유재학 감독은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유재학 감독은 함지훈을 가리키며 "너 스위치 얘기 했어? 안했어?"라며 수비실수를 지적했다. 이어 "야 테이프 줘봐. 테이프 입에 붙여"라며 트레이너에게 테이프를 잘라 함지훈의 입에 붙일 것을 지시했다. 테이프를 건네받은 함지훈이 머뭇거리자 "붙여 이 XX야"라고 욕설까지 나왔다. 함지훈은 마지못해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

유재학 감독의 언행은 바로 앞에서 생중계되는 카메라를 통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워낙 가까웠기에 유 감독이 카메라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유재학 감독은 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공개적인 자리서 욕설까지 섞어가며 함지훈의 뇌리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기량은 뛰어나지만, 감정표현에 소극적인 함지훈의 나쁜 습관을 깨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던 셈.

그러나 모든 감독들이 유재학 감독처럼 선수들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감독으로서 11번의 우승을 차지한 '젠 마스터' 필 잭슨(69, 전 시카고 불스 및 LA 레이커스 감독)은 동양의 선불교 사상을 농구철학에 도입해 왕조를 구축했다. 그는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등 자존심 강한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을 이끌고 3번의 3연패를 이뤄냈다. 단순히 선수구성이 좋고, 전술적 역량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본인은 "전술은 큰 의미가 없다.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발간된 필 잭슨의 저서 '일레븐 링즈'를 읽어보면 모비스와 비슷한 상황에서 잭슨이 어떻게 팀을 이끌었는지 잘 나와 있어 주목을 끈다. 잭슨이 구사한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5명의 선수가 혼연일체가 돼야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한 명이라도 어긋나면 와장창 무너진다. 잭슨은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해 위기를 해쳐나가길 강조했다. 이에 잭슨은 4쿼터 막판 팀이 지고 있어도 일부러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곤 했다. 또 대화를 일절 금하는 무언의 연습경기를 치르도록 했다. 답답한 선수들이 알아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한 것.

조던이나 코비도 처음부터 팀을 먼저 배려하는 리더는 아니었다. 잭슨은 연습경기에서 조던이 못하는 동료들과 팀을 이루도록 했다. 조던이 대패를 당해 자존심이 상하도록 한 것. 조던은 스티브 커와 주먹다짐을 실컷 한 뒤에야 자기 득점만 챙겼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한다. 잭슨이 직접 조던에게 "너 왜 혼자 농구해?"라고 소리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모든 것은 연습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부에서 보는 시카고 불스는 완벽한 팀 자체였다. 선수들의 자존심이 공개적으로 상하는 경우도 없었다.

미국대학농구(NCAA) 명문 UCLA에서 역대최다 10회 우승을 차지한 전설의 명장 故존 우든(1910-2010) 감독은 "나는 우리 선수들에게 절대로 소리를 치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상황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열정은 사랑만큼 오래가지 않는다. 당신이 열정에 의존한다면, 일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소리를 질러야 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선수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주입식 교육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감독마다 지도방식은 각기 다르다. 꼭 전설의 명장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재학 감독 역시 함지훈에 대한 애정에서 극단적인 방법을 썼으리라. 다만 스승인 감독의 지시에 제자인 선수들이 일방적으로 따르는 한국특유의 '기계식 농구'는 언젠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필 잭슨은 자신의 성공비법에 대해 "전략은 우승을 만들 수 있지만, 철학은 왕조를 구축한다"는 말을 남겼다. 올 시즌 2연패에 도전하는 '만수' 유재학 감독이 '테이프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닐까.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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