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다이아몬드+] 방출 그후..이범석은 오늘도 완투를 한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6. 11.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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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KIA 타이거즈 제공
투수 이범석은 최근 고향인 충남 온양으로 내려가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김은진 기자

“이범석이 누구야?”

2008년 7월4일이었다. 대구구장에서 열린 KIA-삼성전의 시선이 KIA 선발 이범석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이닝이 지나고 또 지나도 안타를 맞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9회말 2사후. 삼성 박석민에게 3루 선상에 깊은 타구를 내준 것이 내야 안타로 선언됐다. 대구구장의 모두가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2000년 5월18일의 한화 송진우 이후 첫 노히트노런 투수로 이름을 올릴 뻔한 이범석의 도전은 그렇게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끝났다. 프로야구 팬들에게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이 깜짝 피칭은 이범석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프로야구 노히트노런은 그 뒤로도 한참을 지나 2014년에야 외국인투수 찰리 쉬렉(당시 NC)의 손에서 나왔다.

2005년 KIA에 입단한 이범석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뛰었다. 2008년 5월 선발로 발탁된 뒤, 노히트노런은 놓쳤지만 완봉승을 올린 그 경기를 포함해 7승을 거뒀다. 앞날이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경력이 멈춰섰다. 고교 시절 외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덕에 갖게 된 독특하고 역동적인 투구 폼은 투수 이범석의 상징이 됐지만 부상을 가져다줬다. 2009년 8월 어깨 수술을 했고 군에 입대 했다. 이 정도로 길어질 줄 몰랐던 재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재활의 가장 큰 고통은 알 수 없는 미래다. 던지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재활 프로그램에만 매진하다 통증이 사라질 무렵 공을 잡으면 다시 어깨가 아파왔다. 그러기를 몇 년 동안 수없이 반복했다.

이범석은 수술을 두 번이나 더 받았다. 2012년, 그리고 2015년. 같은 부위에 세 번이나 수술을 했다. 선수단을 떠나 서울에서 개인 트레이너와 훈련을 했고, 그 사이 당연히 연봉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술도, 훈련도 자비로 해야 했기에 사회인 야구팀에서 레슨도 했고 부모님의 지원도 받았다. 세 번째 수술 뒤, 기다리던 피칭을 시작했을 때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좌절감에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돌아온 뒤 “차라리 그만 두고 집에서도 나가라”던 속상한 어머니의 말씀에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재활 첫 단계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범석은 2000년대 후반 KIA를 설레게 한 강속구 영건들 중 한 명이다. 절친한 동생 곽정철도 긴 재활 끝에 1군 마운드를 밟았고, 진해수는 팀을 옮겨 새 투수로 일어섰다. 윤석민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여전히 핵심 투수다. 경험한 투수들은 재활이 힘들다는 것을 다 안다. 겨울이면 같이 만나 여행도 가고 자주 연락하며 지내지만 동생들이 가끔 눈치를 보는 것도 잘 알았다. 다들 비슷한 아픔을 겪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야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전병두가 SK에서 은퇴를 결정한 날 이범석은 “힘이 빠진다”고 했다. 한 살 형인 전병두 역시 KIA 강속구 영건 출신으로 오랫동안 재활을 했다. 서울에서 같이 운동하며 격려하고 힘이 돼주던 형이 마침표를 찍자 이범석도 자신감을 잃었다.

그리고 지난달 이범석은 구단으로부터 방출을 통보받았다. 지난 몇 년간 동료·후배들이 시즌을 마치고 편하게 휴가를 즐기기 시작할 때쯤이면 이범석은 혹시나 구단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긴장하며 지냈다. 재활 8년째에 결국 다가온 방출 통보는 생각보다 서운하지 않았다. 이범석은 “지금까지만 해도 많이 기다려준 것”이라며 “생각보다 오래 소속을 갖게 해준 구단에 고맙다”고 했다.

3주 전, 이범석은 길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충남 온양으로 내려갔다. 고향으로 가는 길,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좀 더 후련해진 마음으로 진짜 마지막을 각오할 수 있게 됐다.

이범석은 지금 보디빌딩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방출을 통보받은 뒤 앞날을 고민할 때 우연히 만난 선배 조용준의 한마디가 힘을 줬다. 빈약한 몸을 키우고 근육도 늘려보니 통증이 생기지 않더라는 선배의 경험에 용기를 내 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먹으며 운동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활기차게 운동하는 이범석은 몸을 만든 뒤 다시 공을 던질 거고, 잘 다듬어 입단 테스트에 도전하려 한다. 강아지도 한 마리 입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르는 산행길, 강아지 노을이는 새로운 재활길을 외롭지 않게 해주고 있다.

이범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꿈은 딱 하나, 아프지 않고 공을 던지는 것, 그래서 다시 한 번만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다. 스물세살 그때처럼 빠르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지난 시간을 담은 소중한 공을 반드시 던져보겠다고, 이범석은 오늘도 마음으로 완투를 한다.

p.s. 1985년생인 이범석은 서른 한살이다. 그 사이 결혼도 했다. 아내는 온 정성을 다해 재활을 돕고 있고, 다음달이면 예쁜 딸이 태어난다. KIA가 지난 25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한 2017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이범석은 30일 KBO가 공시를 하면 공식적으로 소속이 사라진다. 소속이 없어진 허전함을 재기에 대한 열정으로 채운 채 또 한 번 달리는 이범석은 고향으로 내려가던 날 “언젠가 마지막이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밝게 웃으며 다짐했다. 언젠가 시원하게 공을 던지고 밝게 웃을 그날이 반드시 오기를 함께 기다리고 응원하며. 파이팅.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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