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결별..KT는 프로야구 감독을 무엇으로 아는가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6. 10. 1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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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가 초대 사령탑 조범현 감독(56)과 결별을 선택했다. 선택은 구단의 몫이지만 그 과정이 대단히 프로답지 못하다.

KT 구단은 12일 조범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준교 KT 스포츠 사장이 지난 11일 밤 조범현 감독을 찾아 직접 이 사실을 전했다. 동시에 김진훈 단장도 해임하고 곧바로 농구단을 이끌던 임종택 단장을 후임자로 발표했다.

조범현 감독은 KT가 창단된 2013년 초대 사령탑에 선임됐다. KT가 퓨처스리그에 합류한 2014년부터 지휘해 올 시즌을 끝으로 3년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 1군 리그 합류 뒤 올해까지 2년 연속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KT는 “성적 부진과 분위기 쇄신”을 재계약 불가 이유로 설명했다. 그러나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명분이다.

KT는 당장 우승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을 바랄 수는 없는 팀이다. 1군 2년차에 가을야구에 진출한 제9구단 NC와도 비교할 수 없다. 구단 지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폐지됐던 연고지 1차지명 제도가 2013년 KT 창단과 함께 부활하면서 KT는 먼저 창단했던 NC에 비해 좋은 신인을 영입하기 어려웠다. 대신 다른 팀보다 1명 많이 보유하고 투입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구성을 잘 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두 시즌 동안 KT를 거친 9명의 외국인 투수가 거둔 성적이 35승61패다. 지난해 12승을 거둔 크리스 옥스프링을 제외하면 제몫을 해낸 외국인투수는 아무도 없다. 구단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도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올 시즌 유한준을 4년 총액 60억원에 영입한 것이 가장 큰 움직임이었다. 전력을 제대로 꾸려주지 않고 감독에게 성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구단 분위기 쇄신도 실질적인 명분이 되기 힘들다. KT가 문제삼은 부분은 빈번했던 선수단 사고였다. 지난 시즌 초반 트레이드로 영입해 큰 기대를 걸었던 포수 장성우 사건에 이어 올해 초에는 역시 트레이드로 KT 유니폼을 입은 오정복이 음주운전 하다 적발됐다. 7월 중순에는 김상현이 음란행위로 입건돼 KT가 문제 구단으로 낙인 찍혔다. KT는 그룹 이미지 실추를 염려했고 결국 이 연쇄 사고의 책임을 조범현 감독에게 물었다.

장성우와 오정복과 김상현은 성인이다. 감독이 일일이 사생활을 다 확인할 수 없다. 그 중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김상현 사건이다. 선수가 한 달 가까이 숨기다 구단에 털어놨다. 익산 퓨처스리그에서 있었던 일로 언론을 통해 공개됐을 당시 코칭스태프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김상현으로부터 직접 소식을 듣고도 무마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현장에 알리지 않아 경기에 나섰던 김상현이 초반에 교체되도록 해프닝을 만든 것은 김진훈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다. KT는 김진훈 단장도 동시에 해임하며 책임을 나누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책임은 조범현 감독에게 전가했다.

재계약 불가를 통보하기까지 과정은 상식밖이다.

전반기 막판이던 지난 7월 초 KT는 조범현 감독과 재계약 방침을 확정했다. 계약기간과 계약금 등 세부사항까지 구체적인 조건을 나눴고 합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준교 사장과 김진훈 단장은 조범현 감독에게 “축하한다”는 인사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스타 휴식기 첫 날 발표하기로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발표를 사흘 앞두고 김상현 사건이 터졌다. 그룹 고위층에서 이 사건에 대노하면서 일단 재계약 진행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 석 달이 지나고 시즌이 끝나도록 구단은 침묵했고, 결국 ‘성적 부진과 분위기 쇄신’이라는 이유로 조범현 감독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았지만 구두 합의를 파기한 셈이다.

프로야구단 감독은 사장이나 단장보다 오히려 더 팀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얼굴’이다. 야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이 가장 먼저 존중해 줘야 하는 자리다. 발표만 하지 않았을뿐 재계약을 결정하고 당사자에게 축하까지 한 뒤 시즌 종료 뒤 뒤집은 것은 무례한 행위다. KT가 감독직을 쉽게 생각한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KT 고위 프런트는 프로스포츠단 운영 경력이 전무한 인물들로 꾸려져 있다. 지난 2년을 함께 한 김진훈 단장은 KT의 대구 고객본부장 출신으로 프로야구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지만 그동안 전면에 나서 구단을 운영해왔다. LG 스포츠단 사장 출신인 김영수 사장이 1년 만에 물러난 뒤 올해 역시 프로스포츠 현장과 전혀 관계 없는 김준교 사장이 취임했다.

재계약 진행이 중단된 사이 조범현 감독은 보이지 않게 ‘레임덕’을 겪어야 했다. KT 특유의 낙하산 인사 문화를 겨냥한 야구계 일부 인사들이 차기 감독을 노리고 줄을 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코치들과 선수들에게도 소문은 전해져 분위기는 대단히 어수선했다. 그 와중에도 조범현 감독은 시즌 끝까지 책임을 지기 위해 외롭게 애를 써야 했다.

KT가 12일 발표한 보도자료는 신임 단장 선임 소식으로 구성돼 있다. 조범현 감독에 대해서는 맨 뒤에 “KT구단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조범현 감독과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후임 감독은 선수단의 마무리 훈련 및 내년 시즌 준비를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 줄만 언급돼있다.

조범현 감독은 SK가 2000년대 후반 신흥 강팀으로 올라서기 직전인 2003~2006년 사령탑을 맡아 팀을 만든 주인공이다. KIA 사령탑에 취임한 지 2년 만인 2009년에는 팀을 12년 만에 한국시리즈를 우승시킨 감독이다. 그리고 제10구단 KT의 초대 사령탑이다. KT는 자신들의 초대 감독을 매우 무례한 방식으로 떠나보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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