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켈리 교체상황, 심판들은 왜 우왕좌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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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이날 SK는 4-3으로 앞선 채 8회초 수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7회까지 단 91개의 공을 던지며 7안타(1홈런) 3실점하던 켈리가 마운드에서 벤치 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닝 시작전 연습투구를 하다가 오른쪽 허벅지쪽에 이상 증세를 느껴서였다. 결국 김원형 투수코치와 통역, 그리고 트레이닝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켈리의 상태를 점검했다. 켈리는 더 이상 투구가 어렵겠다며 교체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후 문제가 벌어졌다. 박종철 주심과 문동균 1루심, 김익수 2루심, 나광남 3루심 등 4심들이 켈리의 교체 여부에 대해 그라운드에 모여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SK 김용희 감독과도 또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더니 또 엉뚱하게 한화 덕아웃으로 다가가 김성근 감독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모습도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그라운드에 모인 4명의 심판들은 또 토론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켈리는 계속 짜증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면서 무려 8분이 소요됐다. 결국 심판진은 켈리가 1명의 타자를 상대한 뒤에 교체될 수 있다고 최종 선언했다. 켈리는 하프피칭 형태로 이용규를 상대하다가 5구만에 좌전안타를 맞고 문광은으로 교체됐다.
결과적으로 이런 해프닝은 SK에 치명적인 폭탄이 되어 터졌다. 불필요한 시간 지연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고메즈가 이용규의 2루 도루시도 때 포수 송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했다. 그덕에 이용규는 3루까지 갔다. 또 급하게 마운드에 올라온 문광은은 송광민을 삼진으로 잡았지만, 김태균에게 역전 투런포를 맞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달아오른 한화타선은 계속 터졌다. SK는 문광은에 이어 채병용과 김주한 박민호 등 3명의 투수를 더 투입했으나 홈런 3방을 포함해 10안타를 더 얻어맞고 순식간에 11점이나 허용하고 말았다.
이런 참사의 1차적 원인은 켈리의 갑작스러운 부상 때문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경기 지연 상황과 그에 따른 SK 수비의 동요는 심판의 책임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사실 KBO리그 공식 야구규칙에는 이와 같은 상황에 관한 규정이 명확히 제시돼 있다.
▶심판진은 왜 우왕좌왕했을까
야구규칙 3.05 '선발투수 및 구원투수의 의무' (d)항에 따르면 "이미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투수가 이닝의 처음에 파울 라인을 넘어서면 그 투수는 첫 번째 타자가 아웃되거나 1루에 나갈 때까지 투구해야 한다. 단, 그 타자의 대타가 나온 경우 또는 그 투수가 부상 혹은 부상에 의해 투구가 불가능하다고 심판진이 인정할 경우는 제외한다"고 돼 있다. 이 규칙대로 경기를 진행했다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즉, 심판진이 켈리의 몸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빠르게 판단한 뒤 '한 타자 상대후 교체'나 '즉시 교체'를 신속히 결정했으면 되는 것이었다. 못던지겠다는 켈리나 바로 바꿔달라는 김용희 감독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 자체가 없다. KBO 규정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대로 이행하라는 지시만 하면 끝났을 일이다. 사실 켈리도 허벅지에 이상 증세가 생긴 건 맞지만 그로 인해 투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친 건 아니었다. 만약에 부상 악화가 우려됐다면 가볍게 고의4구를 내주고 교체되는 게 더 나을 뻔했다. 그러는 게 투구수도 1개 줄이고,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심판진이 이와 관련해 김성근 감독에게 양해를 구할 이유나 명분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도 당시 덕아웃으로 다가와 불필요한 요청을 하는 심판에게 "합의 사항이 아니지 않느냐. 규정대로 알아서 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결정이든 심판이 규정대로 재량껏 하면 된다는 뜻이다. 설령 심판진이 켈리에 대해 '즉시 교체' 판단을 했더라도 그냥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4인의 심판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참이나 그라운드에서 우왕좌왕했다. 명문화돼 있는 규칙을 제대로 몰랐든, 혹은 상황 판단이 너무나 까다로웠든. 결과적으로는 스피드업을 부르짓는 KBO의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또한 1점차 팽팽했던 승부에도 꽤 큰 악영향을 끼친 장면이었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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