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호의 트윈시티] LG, 육성철학 없으면 악몽 계속된다

2016. 7. 3.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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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팬들에게는 잠 못 이루는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잔인한 패배였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함께 했던 두 선수가 적으로 나타나 심장에 칼을 꽂았다. 영화나 드라마 각본으로 내놓으면 퇴짜를 맞을 만한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졌다.

LG는 지난 2일 잠실 SK전에서 2-4로 역전패했다. 8회까지는 2-1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9회초 1사후 정의윤에게 동점홈런, 곧이어 최승준에서 역전홈런을 맞고 경기를 내줬다. ‘잠실구장은 홈런타자를 육성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LG는 이미 두 선수에게 충분한 기회를 줬다. 두 선수의 이적은 팀이 잘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두 명제가 이날 역전패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정의윤과 최승준 모두 지난해 이 맘 때에는 LG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정의윤은 2005년, 최승준은 2006년 LG에 입단했고, 둘 다 10년이 넘게 LG 4번 타자가 되는 꿈을 키웠다. 꿈이 이뤄질 것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정의윤은 2013년 5월과 6월 LG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 홈런을 쏘아 올리지는 못했으나, 두 달 동안 44경기에 나서 타율 3할5푼8리 21타점 OPS 0.874를 기록했다. LG 또한 해결사가 된 정의윤과 함께 급격히 상승세를 탔고,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다가갔다. 

최승준도 비슷한 시간과 마주했다. 2014년 후반기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주목받았다. 낯설기만 했던 1군 무대에 올라 삼성 장원삼을 상대로 잠실구장 가운데 펜스를 강타하는 통산 1호 홈런을 터뜨렸다. 약 한 달 뒤에는 라이벌 팀 두산을 상대로 2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15년 스프링캠프 MVP에 선정됐고, 2015시즌 개막전 4번 타자로 출장했다. 

그러나 둘이 LG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는 거기까지였다. 정의윤은 내부경쟁에서 밀렸다. 적어도 타격에서 경쟁자보다 우위를 점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당시 정의윤에게 박용택 이병규(7번) 이진영은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최승준은 불운이 겹쳤다. 2015시즌 개막전 출장 후 슬럼프에 빠졌고, 1군 콜업이 예약된 채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후 교통사고를 당했다. 모든 계획이 어긋났고, 허무하게 일 년을 보내야 했다.

정의윤은 지난해 7월 24일 SK로 트레이드됐다. 최승준은 작년 12월 6일 FA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어느덧 둘은 SK 유니폼을 입은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LG 시절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다. 정의윤은 SK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를 치른 2015년 7월 26일부터 홈런 31개, 최승준은 올 시즌 홈런 16개를 기록하고 있다. 정의윤의 프로 통산 홈런은 62개로 LG에서 10년 반 동안 31개, SK에서 1년이 안 되는 시간동안 31개를 쳤다. 최승준은 통산 홈런이 18개에 불과하다. LG 유니폼을 입은 10년 동안 2개를 쳤고, SK 유니폼을 입고선 약 3개월 만에 16개를 쳤다.   

정말 뼈아픈 부분은 이러한 일이 늘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9시즌 중 LG는 KIA와 트레이드를 통해 김상현을 보냈다. 그리고 김상현은 KIA 유니폼을 입자마자 잠재력을 대폭발, MVP가 되고 팀도 우승시켰다. KBO리그 역사에 남을 가장 강렬한 신데렐라맨이 탄생했다. 

2년 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LG는 2011년 7월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눈앞에 두고 박병호를 넥센으로 보냈다. LG를 떠난 박병호는 통산 타율 1할 타자에서 4년 연속 홈런왕이자 MVP를 두 차례나 수상하는 최고스타가 됐다. 현재 박병호는 아시아를 넘어 메이저리그 성공을 바라보며 땀 흘리고 있다. 

LG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뻔하다. 이들이 트레이드되기 전에 LG에서 잠재력을 터뜨리고 계속 LG에서 잘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11년을 기다리는 부끄러운 일은 없었다. 프로 원년팀 중 한 번도 홈런왕과 MVP를 배출하지 못한 유일한 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후회하고 속상해도 소용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미 LG를 떠난 이들이 다시 LG로 돌아올 수도 없다. LG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트레이드나 FA 영입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최악의 경우만 생각하고 구단을 운용하는 겁쟁이는 절대 프로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 현재 이천에 있는 수많은 유망주들이 LG에서 꽃을 피우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LG에는 뚜렷한 육성철학도, 확고한 육성 시스템도 없다는 점이다. 같은 서울 팀인 두산과 넥센에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차이가 크다. 두산처럼 유망주들을 정글에 던져놓고 무한경쟁을 시키지도 않고, 넥센처럼 선수마다 등급을 분류해 중장기적 플랜을 짜지도 않는다. 

최고 시설이 들어선지 3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매뉴얼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천 시설로 이익을 누리는 이들은 스스로 훈련할 줄 아는 1군 선수들로 한정된다. 수술 후 재활을 하거나, 부상이나 부진으로 많은 양의 훈련이 필요한 1군 선수들이 이천 시설의 혜택을 본다. 두산이 국가대표 내야진을 구축하고, 넥센이 세 번째 메이저리거 만들기 작업에 착수한 상황에서, 21세기 LG 출신 국가대표 야수는 아직도 박용택이 유일하다.  

‘전술은 우승을 만들고, 철학은 왕조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기자는 6년 동안 LG 구단 관계자로부터 LG 구단이 세운 전술이나 철학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시스템 구축에 대해 물어봐도 명확한 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프랜차이즈 출신 모 코치가 작년 이천에서 재활 중인 선수에게 폭언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겉으론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었다. 두산·넥센과 같은 조건으로 신인을 뽑지만 결과물은 극명하게 차이난다. 

최승준은 2일 경기 세 번째 타석이었던 6회초 2사 2루 볼카운트 3B0S에서 자신 있게 배트를 돌렸다. 결과는 우익수 플라이였으나 움츠려들지 않았다. 결국 다음 타석에서 똑같은 스윙으로 결승홈런을 만들었다. 불과 8개월 전 LG 선수였던 최승준이 어떻게 변했고, 얼마나 향상됐는지, LG 구단은 치열하게 연구해야 한다. '심리적 안정'이란 뻔한 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프로 야구단이라면 최승준이 짧은 시간 밟아온 과정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계속 아무 것도 안 하면, 10년 후 LG는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서울 삼류 구단이 될 것이다. / LG 담당기자 drjose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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