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기주 "158km 던질 때보다 지금이 편하네요"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6. 3.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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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제공

5년 전이었다. 2011시즌의 한창이던 7월 한기주(29·KIA)는 복귀전을 치렀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2년 재활을 마친 뒤 소원이던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5년 만의 선발 등판이다. 설레고 긴장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스물다섯, 어린 투수였다.

그러나 이 기분 좋은 설렘을 오래 느끼지 못하고 한기주는 또 수술을 받았다. 손가락을 다쳐 두 번 수술, 던질만하니 또 어깨가 아팠다. 2013년 5월 결국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았다.

투수에게 어깨 수술은 ‘끝’을 의미한다. 실패한다면 더 이상 발 디딜 곳은 없다. 그 전에 재활을 많이 거친 투수라면 어깨 수술은 더욱 절망적이다.

그 절망을 딛고 한기주가 3년 만에 일어섰다. 그라운드의 모두가 새롭게 출발하는 3월 한기주도 프로 입단 10년 만에 새로 태어나 야구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BEFORE

한기주는 지난 15일 시범경기 NC전 등판을 마치고 “이제 조금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재활을 마치고 투구 스타일을 온전히 바꿔야 했던 한기주의 지난 시간이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

한기주는 공인 최고구속 158㎞를 던졌던 강속구 투수다. 비공인 기록으로는 2007년에 159㎞, 2008년에는 160㎞까지 찍었다. 시속 150㎞를 넘는 강속구에 빠른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는 것이 주무기였다.

지금 한기주의 최고 구속은 141㎞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더라도 크게 오를 것 같지는 않다. 팔꿈치 수술 이후에도 구속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어깨 수술 뒤에는 거의 잃었다. ‘투수 한기주’를 상징하는 가장 큰 무기가 사라졌지만 지금 한기주의 표정은 데뷔 이후 가장 좋다.

한기주는 “구속이 안 나온다는 걸 지난해 5월 처음 알았다. 어깨 수술 이후 처음 공을 던졌을 때다. 그런데 사실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내려놨을 때라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 수술을 해야 한다고 진단받았을 때 충격이 더 컸다. 재활 기간도 힘들었지만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배들 중에서도 어깨 수술을 하고 쉽게 일어난 투수가 거의 없다. 한기주에게는 ‘1%’의 가능성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을 통해 한기주는 편한 마음을 얻었다.

한기주는 “어깨 수술을 받기로 하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어깨 아프면 야구 그만 해야지’ 생각했던 사람이다. 수술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 자체가 되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내가 나가서 붕어빵을 팔 수는 없지 않나. 야구 그만 두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결정했는데 막상 다가오니 많이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AFTER

강속구는 잃었지만 머리와 마음은 아직 강속구를 기억하는 모양이다. 인터뷰 전날 NC를 상대로 3이닝 무실점 호투한 한기주는 “어제 던지고 안타를 맞은 뒤 전광판을 봤는데 155㎞가 찍혀있었다. 순간적으로 내 구속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타구 속도였던 모양이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한기주는 마무리 투수였다. 지난해 윤석민이 30세이브를 거두기 전 KIA에서 한 시즌 가장 많은 세이브를 거둔 투수도 2008년 26세이브를 기록한 한기주였다. 사실상 KIA의 마지막 마무리다. 마무리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강속구 덕택이었다. 이제 한기주에게는 ‘없는 추억’이 되었다. 아쉬움을 예상하고 꺼낸 이 화제에 한기주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한기주는 “어깨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구속은 포기했다. 그때 모든 것을 내려놨다”며 “지금이 편하다.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삼진 욕심이 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삼진 욕심도 내지 않는다. 맞혀잡는 것이 훨씬 편한 것 같다. (임)준혁이 형과도 그런 얘기 했다. 150㎞ 던질 때보다 지금이 편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과거 직구와 빠른 슬라이더에 커브를 간혹 섞어던졌던 한기주는 지금 느린 슬라이더와 싱커를 추가했다. 각이 큰 대신 확 휘어떨어지는 슬라이더는 이번 시범경기에서 한기주가 보여준 가장 큰 변화인 동시에 부활투였다. 파워피칭으로 윽박지를 수 있었던 과거의 능력이 사라진 지금 한기주는 생존을 위해 구종을 추가하고 완급조절하는 투수로 변신했다. “이제 조금 감을 잡았다”는 고백의 의미가 여기 있다.

한기주는 “전에는 강속구 위주로 던지니 어깨에 무리도 많이 갔다. 상체 위주로 던져 밸런스도 맞지 않았다”며 “물론 어린 투수들이 던질 수 있는데도 완급조절로 꼬아서 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 돼도 계속 강하게 던질 수 있는 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제 구속을 내고 싶어도 나지 않으니… 오히려 부담이 덜 하고 편하게 던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하나 생긴 무기는 자신감이다. “이제 두 경기 잘 던진 거라 속단하긴 어렵지만 일단은 불안하지 않다. 재활할 때는 던지는 것 자체가 불안했다. 이제는 스스로 나를 믿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일어서보고 싶다

KIA는 이번 봄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마무리였던 윤석민이 선발로 옮기면서 불안해진 불펜은 현재 필승계투조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기존 투수진에 한기주와 곽정철이 가세했다. 3년 이상 긴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둘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KIA는 든든한 희망을 안았다.

보직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기주와 곽정철은 오랜 시간 같은 아픔을 나눈 동지로서 이번 봄을 새롭게 다짐하고 있다.

지난 시즌 먼저 복귀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재활군과 2군으로 돌아가야 했던 한기주는 이번 시범경기 과정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한기주는 “정철이 형과 나, 우리 둘 다 고생도 많이 했고 1군에 같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투수 자리 싸움이 워낙 치열하니 결국 형과 나도 경쟁을 해야 할 것 같다. 자리 때문에 꼭 한 명이 빠져야 한다면 정철이 형이 살아남으면 좋겠다. 나는 지난해에 1군 맛을 봤으니까… 형도 같이 맛 좀 봐야지.”

그리고 한기주는 말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언젠가 뭔가 하나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 선수인데 은퇴하기 전에 타이틀 하나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구속만 나온다면 마무리 한 번 더 해보고 싶지만 구속이 안 나오니까…. 하지만 항상 ‘언젠가 기회가 한 번은 올 것이다’ 생각하고 견뎠다. 이제 나도 한 번쯤 일어서보고 싶다”고.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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