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정근우의 암살 '역사의 반복'

조회수 2015. 8. 10. 1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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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에게는 실로 오랜만의 1승이었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실망만 드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경학과 주현상에게 특히 고마워했다. 고비 때마다 몸을 던져 위기를 막아줬던 탓이다.

권혁의 유니폼은 온통 젖어 있었다. 던질 때마다 흩뿌려지는 땀들이 마치 '불꽃' 같았다. 사흘 연투한 투수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가 던진 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볼이었다. 그럼에도 상대 타자는 압도됐다. 무사의 결기가 느껴졌다.

어제(9일) 대전 경기는 명승부였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까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비록 중하위권 팀들간의 대결이었지만, 역시 최고의 흥행 카드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다. 열매는 승자의 몫이다. 그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승률 5할을 지켰고, 5위에 복귀했다. 배영수와 권혁, 파릇한 내야수들의 수비력. 그것들은 자신감으로 승화될 것이다.

그리고 언급돼야 할 또 한 명. 그렇다. 오늘 <…구라다>가 얘기하려는 그 친구, 또 정근우다.

중계 플레이에 대한 소프트웨어적인 이해

그는 5회 역전 2점 홈런을 쳤다. 팀이 낸 점수는 그게 전부였고, 결승타였다. 물론 이 한방으로도 그가 이 경기의 주역이 되는데 부족함은 없다. 하지만 그 정도로 평가하면 섭섭하다. 그의 진가는 수비에서도 찾아봐야 한다. 4회 홈인하는 강민호를 잡아낸 중계 플레이 말이다. 만약 세이프였다면? (이닝을 재구성하면) 이글스는 여기서 2점을 잃게 된다. 3-0이 되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자. 1-0으로 끌려가는 흐름이었다. 1사 후 강민호가 안타로 나갔다. 이어서 박종윤이 우중간을 완전히 빠져 담장까지 구르는 2루타를 날렸다. 외야수 위치까지 진출한 정근우는 (우익수) 정현석으로부터 받은 공을 홈으로 뿌려 주자를 아웃시켰다.

물론 강하고 정확한 송구 능력이었다. 그 먼 거리에서 포수까지 낮고 빠르게 제구된 공을 배달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그건 일부분일 뿐이다. 그 플레이의 이면도 평가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의 능력치는 2가지로 분할해서 이해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으로. 그러니까 송구의 정확성은 하드웨어적인 품질을 나타낸다. 반면 소프트웨어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그건 상황에 대한 인식, 판단력 따위다.

모든 팩트는 '홈'을 가리킨다

당시 그의 플레이를 자세히 관찰해 보자. 중계 위치로 달려가는 동안 한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힐끗힐끗 주자의 움직임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는 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 패턴은 그 직후에도 나타난다. 정현석의 공을 받아 돌아섬과 동시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곧바로 홈으로 쏜다. 만약 보통의 경우처럼 주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쩌고 했다면? 홈에서 그런 타이밍은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물론 정근우가 돌아서는 순간 주변의 야수들은 모두 콜 플레이를 한다. 손으로는 홈을 가리키고, 소리로도 외치지만, 관중의 함성 속에서 그런 게 들릴 리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을까. 그건 상황에 대한 인지능력 + 판단력이다.

몇가지 팩트를 대입해 보자. ① 상대는 1점을 앞서고 있다. ② 아직 초반이다. ③ 1아웃이다. ④ 타순은 8, 9번으로 내려간다. 모든 팩트가 가리키는 방향은 오직 하나다. '상대는 공격적이고, 과감한 베이스러닝을 할 것이다.'

'딱' 하는 타구가 우중간을 빠지는 순간 그는 이미 모든 수읽기를 마쳤다. 따라서 주자의 움직임을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동료 야수들의 콜이 들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너무도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면, 그 역사를 다시 산다

아직 한 달도 안됐다.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지난 달 14일 게임이었다. 매치업 역시 똑같다. 자이언츠-이글스. 당시 <…구라다>의 글 '정근우의 광대역 LTE급 서비스'라는 편의 소재로 삼았던 케이스다.

8회였다. 1루 주자 손아섭, 타자는 최준석. 타구가 가운데 담장을 직격했다. 이때 중계 플레이로 들어간 정근우는 이용규에게 넘겨 받은 공을 커트맨(김태균)에게 연결했다. 그리고 김태균은 다시 3루로 던져 오버런한 손아섭을 잡아낸 바 있다.

이때 정근우의 선택은 어제와 달랐다. 홈이 아니라, 중간에 서 있던 커트맨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제와 똑같은 상황 논리로 풀어보자. ① 3-3 동점이다. ② 8회 종반이다. ③ 노아웃이다. ④ 타순은 6, 7번으로 나쁘지 않다. 종반이라 대타도 가능하다. 역시 모든 요인은 공격 측의 신중한 플레이를 예고했다. 따라서 그는 굳이 홈이 아닌, 커트맨을 선택했던 것이다. (자이언츠는 여기서 점수를 얻는데 실패했고, 결국 9회말 정근우의 끝내기 안타가 승부를 갈랐다.)

이상한 일이다. 19세기~20세기 초반을 살았던 하버드대 교수(철학자)가 이런 저격수들을 알 리 없지 않은가. 독립군 상등병 안옥윤(전지현)과 이글스의 정근우를 말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조지 산타야나)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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