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운 감독이 말하는 선동렬, 그리고 1992년 우승

2015. 1. 2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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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피오리아(애리조나), 이대호 기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에게 빠질 수 없는 질문, 바로 '선동렬 공은 어땠냐'라는 질문이다. 롯데 자이언츠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종운 감독 역시 투수 선동렬과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추억이 있다.

이 감독은 1989년 롯데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많은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감독 역시 처음에는 2군에서 기량을 닦았다. 2군에서 좋은 타격 솜씨를 보여줬던 이 감독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1군에 올라왔다고 한다.

1군에 승격된 이 감독이 처음 마주한 상대는 당시 최강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 이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3연전을 들어갔는데, 첫 날 경기는 이강철이 선발이었고 2,3차전은 대타로 한 번씩 나왔는데 모두 선동렬 선배랑 붙었다. 3연전동안 4타수에 안타는 하나도 없었고 모두 삼진을 먹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당시 이강철은 신인 때부터 리그를 주름잡았던 무서운 투수였다. 36경기에 나와 완투만 8번에 완봉 3번을 해가며 195⅓이닝 15승 8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23을 기록했었다. 선동렬은 여러 번 말하면 입 아프다. 1989년은 36경기 21승 3패 8세이브 169이닝 평균자책점 1.17로 비교적 평범한 시전을 보냈다. 통산 평균자책점이 1.20이니 평범한 시즌이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이 감독은 "그때 롯데 감독이 김진영 감독님이었는데, 대타로 이틀 연속 선동렬 선배한테 날 붙이더라. 나야 어쩔 수 있나. 그냥 삼진을 당하고 들어왔는데, 감독님이 날 노려보시는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 그 눈을 보고 '아 2군 가겠구나' 직감했는데 곧바로 2군에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신인타자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데뷔전이었다.

좌절감을 가슴에 품고 2군에 내려갔던 이 감독은 그 해 1군에서 61경기 64타수 17안타 타율 2할6푼6리에 2도루 6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해, 1992년에는 타율 3할1푼4리 66득점 35타점 21도루로 활약했다. 그 해 쳤던 3루타 14개는 2014년 서건창이 깨기 전까지 단일시즌 최다 3루타였다.

1992년 우승 당시 기억도 생생한 이 감독이다. 그 해 롯데는 주전 가운데 5명이 3할 타자였는데, 이종운·전준호·박정태·김민호·김응국을 묶어서 '남두오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처음에 선동렬 선배한테 삼진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선동렬 선배 공이 나한테는 타이밍이 맞더라. 그래서 안타도 적지 않게 쳤었다"고 했다.

1992년 롯데는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삼성-해태-빙그레를 차례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었다. 이 감독은 "그때도 언론에서는 우리를 우승후보로 안 찍었다. 빙그레, 해태 모두 무척 강했다. 그런데 선동렬 선배가 그 해는 몸이 안 좋아서 별로 못 나왔고, 빙그레 역시 정규시즌에서는 우리한테 7대 3 정도로 강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는 힘을 못 썼다. 우승이라는 게 되려고 하니 되더라"며 웃었다.

cleanupp@osen.co.kr

<사진> 피오리아(애리조나)=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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