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필요악' 빈볼, 가학의 얼굴

2007. 7. 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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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볼에 얽힌 일화 한토막이다.

일본프로야구 개인통산 최다안타(3085개. 1959~1981년)의 주인공인 전설적인 강타자 장훈(67)은 같은 재일교포이면서도 일본에 귀화한 가네다 마사이치(74. 한국명 김정일)와 사적인 자리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면서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가네다는 개인통산 최다승인 400승(298패. 1950~1969년)을 달성한 일본 최고의 투수.

1973년 7월11일, 가네다가 첫 감독을 맡았던 롯데와 장훈이 소속돼 있던 닛다쿠(도에이 전신)가 도쿄에서 맞대결을 벌였다. 당시 롯데는 전기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경기에서 장훈은 1회에 2점홈런, 8회에 결승홈런을 날렸다. 8-9로 패한 롯데는 난카이에 밀려 전기 우승을 놓쳐버렸다.

감독 데뷔 첫 해 우승을 노렸던 가네다는 장훈으로 인해 우승이 날아가자 후기리그에 들어가기 전 '이번은 장훈을 박살내는 시리즈'라고 복수를 선언했다. 그리고 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투수들에게 빈볼을 던지는 훈련을 시켰다.

롯데와 닛다쿠는 후기리그 개막전을 치렀다. 장훈은 롯데 투수가 던진 공을 팔꿈치에 얻어맞았다. 장훈은 당연히 항의했고 가네다 감독은 거꾸로 빈볼이 아니라며 주심을 떠밀었다가 퇴장당했다. 그 일로 인해 장훈은 같은 핏줄인 가네다에게 무척 서운한 감정을 느꼈으나 훗날 화해했다. (장훈이 1977년에 펴낸 자서전 <방망이는 알고 있다> 참조)

빈볼은 야구라는 종목의 가학적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촉수와 같다. 빈볼은 야구에서 정녕 필요악인가. 빈볼과 단순히 몸에 맞는 볼(힛바이피치드볼)은 그 경계가 흐릿하다. 고의성 여부가 빈볼을 판정하는 척도이지만, 심판이 경기 도중에 빈볼을 명확하게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안다.

'기록의 화신' 장종훈(39. 한화 2군 코치)은 현역시절 투수가 던진 131개의 공을 몸에 얻어맞았다. 프로생활 19년 동안 장종훈이 기록한 몸에 맞은 공은 그나마 박종호(삼성 라이온즈)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2군에 머물러 있는 바람에 올 시즌에는 없었지만 박종호는 통산 160개의 힛바이피치드볼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은퇴, 현역 통틀어 최다 숫자다.

몸에 맞는 공은 연간 532게임을 소화한 2000년부터 2004년 사이(2000년 536개, 경기당 1.01개 →2001년 515개, 경기당 0.97개→2002년 658개, 경기당 1.24개→2003년 605개, 경기당 1.14개→2004년 681개, 경기당 1.28개)에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502게임제로 바뀐 2005년에는 711개(경기당 1.41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2006년 533개(504게임, 경기당 1.06개)로 줄어들었다.

올해는 303게임을 치른 7월12일 현재 322개, 경기당 1.06개꼴로 작년과 비슷하다.

구단별로는 '무림의 공적'처럼 돼 버린 1위 SK가 가장 많이 얻어맞았고(50개), 3번째로 많이 때렸다(46개). 8개구단 가운데 한화와 현대가 적게 맞고, 적게 던졌다. 한화는 35개를 맞았고, 31개를 던졌다. 현대는 35개를 맞았고, 29개를 던졌다.

반면 KIA는 무려 57개의 힛바이피치드볼을 기록했다. 이는 꼴찌인 팀성적과도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고 그만큼 KIA 투수들의 제구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몸에 맞는 공을 곧바로 빈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이다. 그 가운데 '혐의'를 둘만한 것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실제 빈볼로 명확한 판정을 받은 공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역대 몸에 맞는 공 순위를 보면, 박종호와 김한수(삼성. 144개)가 1, 2위에 올라 있고 장종훈(3위) 다음 박경완(4위. 129개), 김동수(5위. 128개), 이만수(전 삼성. 8위. 118개) 등 포수출신들이 상위에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박경완은 특히 올 시즌 들어 9개의 공을 얻어맞아 고영민(두산)과 고동진(한화. 이상 10개)에 이어 3번째를 기록했다.

SK의 공수의 핵인 박경완이 다른 팀 투수들의 주공략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게해주는 수치이다.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도루왕 김일권 전 해태 코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반사신경과 타자의 공격성향을 연관지어 풀이했다.

선수생활 10년 동안 몸에 맞는 공이 22개밖에 없었던 김 전 코치는 "허리 위쪽으로 던지는 공은 피하기 쉽지만 무릎 밑으로 던지는 공은 피하기 어렵다"면서 "타자 개개인의 공격적 성향(홈플레이트 앞쪽으로 나서서 치는 것)과 민첩성, 반사신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수들은 아무래도 동작이 민첩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얻어맞는다는 분석이다. 김 전 코치는 공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나 소질로 본다.

빈볼은 빈볼을 부른다. 경기 중후반, 승부가 완전히 기운 상태에서 타자가 출루한 다음 추가점을 얻기 위해 번트를 대거나, 도루를 시도하고, 원포인트형 투수를 투입하는 등의 행위는 상대팀을 자극, 빈볼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올 시즌 SK가 7개구단의 집웅 표적이 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경기 운영과 무관치 않다는 게 현장 지도자들의 지적이다. 김성근 SK 감독은 얼마 전 삼성과 경기를 마친 후 "매너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거꾸로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칼하다.

일부 야구인들은 역설적으로 만약 빈볼이 없다면 야구장은 오히려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빈볼이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허구헌날, 입으로, 몸으로 싸울 수 없으니까 오히려 빈볼로 상대방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빈볼은 야구의 서글픈 얼굴이다.

홍윤표 OSEN 기자

<2007 삼성 PAVV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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