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선수협 파동 주역'양준혁과 마해영의 엇갈린 행보

2007. 6. 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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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협 파동의 소용돌이

양준혁(38. 삼성 라이온즈)과 마해영(37. LG 트윈스), 이 시대 두 걸출한 타자의 극명하게 엇갈린 야구인생 항로가 새삼 눈길을 끈다. 공교롭게도 둘은 새천년 벽두, 프로야구판을 뒤흔들었던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 파동'의 주역.

2000년에 한국 프로야구계는 이른바 선수협 파동으로 지새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만치 심한 내홍을 겪었다.

1월22일 신새벽에 발기인 75명으로 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전격 출범, 권리찾기에 나섰으나 구단측과 장기간 마찰을 빚으며 긴 파장을 일으킨 끝에 1년을 넘겨 2001년 1월20일에야 그 막을 내렸다.

선수협은 창립총회에서 한화 이글스 송진우(41)를 초대 회장으로 선임했지만 1월22일 오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이사회를 열고 창립총회 현장 서명자 전원에 대해 자유계약선수로 방출을 결의, 2개월 남짓 '제 1차 선수협 파동'이 일었다.

2000시즌이 끝난 후 12월18일 선수협 집행부는 28명의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재결성을 시도했고 구단측이 강력저지에 나섬으로써 '제 2차 선수협 파동이 불거졌다. 12월20일 KBO와 8개구단이 선수협 집행부 주동자 6명(송진우,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박충식, 최태원)을 자유계약선수로 전격 방출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양측간 분쟁이 격화됐다. 집행부 방출에 격앙된 LG, 해태, SK, 롯데, 한화, 두산선수들이 집단으로 선수협에 가입, 정면대결에 나섰고 그에 맞서 구단측은 12월26일 이사회를 열어 '사태 미해결시 시즌중단'을 선언했다.

선수협 파동은 해를 넘겨 2001년에도 이어졌고 1월4일에는 그동안 관망하고 있던 삼성 이승엽이 선수협에 가입하는 일도 생겼다. 이런 와중에 구단측과 선수협이 막후에서 절충을 시도, 결국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어렵사리 타결을 이루어내고 파국을 면했다.

방랑 길에서

선수협 파동은 후유증을 남겼다. 사태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선수협 핵심멤버로 롯데의 간판타자였던 마해영은 2001년 1월31일 삼성 이계성, 김주찬과 2:1로 전격 트레이드 됐다. 그에 앞서 1998년 12월14일 해태로 트레이드 됐던 양준혁은 2000년 3월24일 LG 손혁과 맞트레이드 돼 다시 '이적선'을 탔다. 둘다 구단의 눈에 미운 털이 박혀있었던 탓이었다.

그 게 끝이 아니었다. 마해영은 3년간 삼성에 몸담았고 2002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도 일궈냈다. 마해영은 FA자격을 얻은 2004년 KIA 타이거즈로 말을 갈아탔다. KIA에서 두 시즌을 지낸 다음 마해영은 2005년 11월3일 KIA에서 LG 장문석 등과 3:3으로 트레이드 돼 트윈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마해영이 떠도는 동안 비슷한 방랑자의 신세였던 양준혁은 2000, 2001년 2년간 거처했던 LG를 떠나 김응룡 사장(당시 감독)이 내민 손을 잡고 2002시즌부터 본고장인 삼성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2년전에는 FA 재계약을 했다.

양준혁과 마해영의 오늘

선수협 파동으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양준혁과 마해영은 엄청난 간극 속에 서 있다. 양준혁은 고향팀에 안착, 2007년 6월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마침내 한극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000안타 고지에 올라섰다.

매스컴은 그를 일러'살아 있는 전설', '양신' 등 최상의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팬은 '위풍당당 양준혁'을 더욱 소리높여 외쳤다. 양준혁은 "2500안타가 목표지만, 그 고지를 넘어선다면 한계라고 생각하는 3000안타에 도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양준혁이 무대의 전면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동안, 마해영은 뒷전에서 자신의 영락한 처지를 곱씹어보며 아픔을 삭여야했다. 올 시즌 11경기에 출장, 28타수 2안타, 타율 7푼1리의 극심한 타격부진을 보인 끝에 2군으로 추락한 마해영은 급기야 구단에 방출을 요구하며 정면 충돌, 선수생활의 기로에 섰다.

기약없는 2군생활 속에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를 바라보며 6월5일 LG 구단에 들어가 공식적으로 방출을 요구했지만 싸늘한 반응만 돌아왔다. 그의 소식을 들은 롯데측도 냉담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LG 구단 김연중 단장은 "월봉 4000만 원을 받는 선수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현재 2군에서도 전 게임 출장을 하지못한다. 2게임 연속 4번, 1루수로 내보냈더니 8타석 무안타 5삼진을 당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면서 "마해영의 부진은 한마디로 기량쇠퇴 때문이다. 아예 스윙자체가 제대로 안된다"고 지적했다.

마해영이 방출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연봉과 연관된 발언을 한 것도 구단측과 마찰을 빚고 있는 한 가지 요인이다. 김연중 단장은 "마해영이 농반진반으로 방출이 되면 월급이 깎이지 않을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며 혀를 찼다. LG는 마해영의 방출 요구를 거부했다. 마해영으로선 '출장을 안시켜주는데 어떻게 제 기량을 찾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LG 구단측은 그 반대다. 선수가 변화하지 않고 답보, 정체 상태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진화하는 양준혁, 퇴보한 마해영의 내일

양준혁은 변화와 적응으로 자신의 야구인생을 활짝 꽃피웠다. '변해야 산다'는 게 그의 화두이다. 양준혁은 게다가 힘이 장사이다. 선수가 지탱할 수 있는 바탕은 하체에서 나온다. 양준혁은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 타격이 안풀리면 작은 변화를 꾀하면서 탈출구를 찾는다.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 왕년의 강타자 한대화 삼성 수석코치는 "(양)준혁이 크게 바뀐 것은 없지만 작년부터 손목놀림이 더 좋아졌다. 힘도 그대로인데다 겨우내 왼쪽 손목에 통증이 있으면서도 배트 스피드 향상에 주력했다"고 전했다.

양준혁은 배리 본즈(43. 샌프란시스토 자이언츠)처럼 캐나다산 고급 방망이인 샘배트(Sambat) 880g짜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야구용품과 자신의 체력관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마해영은 운전을 할 줄 모른다. 그는 전철을 타고 야구장에 나온다. 게다가 술과 담배도 안한다.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는 선수이다. 그렇지만 기량은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자신 스스로 부진의 까닭을 찾아야한다. 그는 자신을 심각하게 되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해야할 시점에 와 있다. 아직 그의 나이는 그라운드에서 충분히 뛸 수 있다.

마해영은 올 시즌 후 11월 말로 LG구단과의 FA계약이 만료된다. 진로를 새롭게 모색할 수 있는 시점이 아직도 5개월 남짓 남았다. 그 시간을 허비해버린다면, 그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질 수 있다. 탈출구는 현재로서는 없다. LG 구단 안에서, 그것도 2군의 밑바닥에서부터 찾아가야하는 게 마해영의 운명이다.

홍윤표 OSEN 대기자

<2007 삼성 PAVV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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