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발맞춰 달린 북한 쌍둥이 자매의 특별한 마라톤

인천 | 이용균 기자 2014. 10. 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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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고독한 레이스'로 불린다 42.195㎞의 거리는 보통사람들이 쉽게 머릿 속으로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거리다. 달리는 내내 고통의 극한을 경험하는 레이스다. 그런데, 함께 곁을 지켜주는 이가 있다면. 게다가 자매라면. 무엇보다 한 날 한 시에 함께 태어난 쌍둥이라면. 그 레이스는 더 이상 '고독한 레이스'가 부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북한의 쌍둥이 자매 김혜성(21), 김혜경(21)이 2일 2014 아시안게임 여자 마라톤 코스를 달렸다. 출발 부터 어깨를 나란히 했고, 초반 다른 선수들과의 '눈치싸움'을 벌인 뒤로는 레이스 절반이 넘도록 나란히 발을 맞춰 달렸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표정. 흔드는 발도 땅을 힘차게 구르는 발도 왼발, 오른발이 딱딱 맞았다.

초반에는 1위그룹에서 6명이 함께 어울려 달렸다. 쌍둥이 혜성·혜경 자매도 함께 였다. 10㎞를 막 지났을 때 바레인의 에우니세 젭키루이 키르와가 치고 나가자 동생 혜경이 잠시 언니 곁을 떨어져 키르와를 따라붙었다. 잠시 키르와와 보조를 맞추던 김혜경은 이내 뒤로 살짝 빠지면서 언니 곁을 지켰다.

이후 쌍둥이 자매의 동반 레이스가 계속됐다. 나란히 달리는 둘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리는 딱 '데칼코마니'였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의 위치도, 보폭도 똑같았다. 중간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똑같은 동작으로 왼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레이스 중간중간 언니는 동생을, 동생은 언니를 살짝살짝 쳐다보며 페이스를 맞췄다.

북한 쌍둥이 마라토너 자매는 지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김혜경이 2시간 35분 49초로 8위에 올랐고, 김혜성은 2시간 38분 28초로 14위를 기록했다. 둘의 레이스 덕분에 국가별 상위 3명의 기록을 합해 매기는 번외 단체전에서 마라톤 강국 케냐, 에티오피아를 제치고 북한은 우승을 차지했다.

북한 조선신보에 따르면 자매는 마라톤 감독인 아버지를 따라 황해북도 금천군청소년학교에서 6년전 마라톤을 시작했다. 운동시작 석달만에 청소년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이 급성장했다.

나란히 달리는 자매는 서로에게 최고의 페이스메이커인 것을 넘어 격려와 우애로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지난 4월 평양 대회에서 선두를 달리던 김혜경이 35㎞지점에서 "언니가 두 번째로 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났고, 언니와 함께 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쌍둥이 자매는 15㎞ 지점을 지나며 나란히 4위권에서 레이스를 이었다. 페이스가 흔들리지 않았다. 이후 20㎞를 지나 절반을 넘어서도 '함께 달리기'가 계속됐다. 하지만 선두권에서 멀어지자 25㎞를 지나면서 김혜경이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졌고 언니는 앞서 나가는 동생을 묵묵히 좇았다.

비가 뿌리는 가운데 자매의 레이스는 이어졌다. 세계 정상급 기록을 갖고 있는 키르와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그 뒤를 바짝 따른 기자키 료코(일본) 역시 이미 멀어졌다. 키르와가 2시간 25분 37초로 금메달을, 료코가 2시간 25분 50초로 은메달을 땄다. 레이스가 끝났다. 동생 김혜경(2시간 36분 38초·7위)이 먼저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똑같이 생긴 언니 김혜성(2시간 38분 55초·9위)도 트랙을 돌았다. 그 사이를 김성은(25·삼성전자·2시간 38분 16초)이 차지해 8위를 기록했다.

자매는 전력을 다했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굳은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김혜경은 '비가 와서 레이스가 어렵지 않았느냐'는 취채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김혜성은 신발에 묶였던 체커를 떼는 동안 지친 듯 잠시 휘청거렸다. 그리고 둘 모두 조용히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쌍둥이 자매의 또 한 번 레이스가 끝났다. 물론, 앞으로 함께 뛰어야 할 레이스가 훨씬 많이 남았다.

<인천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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