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영웅' 이현일 "12년 전 선물, 이제야 갚았네요"

2014. 9. 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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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12년 만에 만리장성을 넘어 아시아 최강을 탈환한 한국 남자 배드민턴. 그 중심에는 대표팀 맏형 이현일(34, MG새마을금고)이 있었다.

이현일은 2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 중국과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결정지었다. 경기 스코어 2-2로 맞선 마지막 단식 경기에서 궈환을 2-0(21-14 21-18)으로 승리하며 5시간이 넘는 혈투의 대미를 장식했다.

지난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의 단체전 금메달이다. 이후 대표팀은 2006년 도하, 4년 전 광저우에서 모두 중국에 분패, 은메달에 머물렀다. 두 번 패배의 설욕을 안방에서 멋지게 해낸 셈이었다.

이현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우승이었다. 대표팀은 첫 단식 주자 손완호에 이어 복식 세계 최강 이용대(삼성전기)-유연성이 잇따라 승리해 우승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이동근(요넥스)이 전 단식 세계 최강 린단에 덜미를 잡힌 뒤 김사랑-김기정(이상 삼성전기)마저 네 번째 복식을 내주며 역전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한국 선수 최초로 단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최고참 이현일이 버티고 있었다. 이현일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궈환을 가볍게 요리하며 경기를 매조졌다.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던 후배들은 마침내 금메달이 결정되자 달려나와 이현일을 부둥켜안았고, 헹가래까지 쳤다.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12년 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 두 번이나 쓴잔을 안겼던 중국이었기에 더욱 짜릿했다. 본인도 부산 대회 이후 잇딴 아쉬움을 털어냈기에 더 기뻤다. 이현일은 경기 후 "어제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에 져서 아쉬웠는데 남자 대표팀이 12년 만에 다시 금메달을 따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선배로서 제몫을 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어린 후배들에게 금메달과 함께 병역 혜택이라는 큰 선물을 안겼기 때문이다. 이날 승리로 대표팀은 김사랑, 김기정, 이동근, 전혁진(동의대) 등이 군 문제를 해결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1년 남짓 복무 기간이 남았던 고성현(27, 국군체육부대)도 곧바로 제대할 수 있다.

12년 전 자신이 받은 혜택을 후배들에게도 선물했다. 이현일은 2002년 부산 대회 금메달로 군 복무를 해결했고, 이를 발판 삼아 2004년 세계 1위에도 오르는 등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현일은 "사실 경기할 때 많이 의식을 했고 이긴다는 확신을 갖고 경기했다"면서 "좋은 결과가 나와 혜택 받게 됐고, 후배들한테 자랑스러운 선배가 돼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선배들에게 받은 선물, 이번에는 내가 준다

뿌듯함의 기억은 12년 전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유산이다.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한 자신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겼던 선배들이다. 당시 이현일은 단체전 결승에서 선배들과 힘을 모아 금메달을 일궈냈다.

이현일은 "오늘 경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그때(2002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고 운을 뗐다. 이어 "복식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병역 혜택을 받은 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후배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잘 마무리됐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2002년 대표팀 복식조는 당시 1위 이동수-유용성과 김동문-하태권 등 최강이었다. 이현일은 "워낙 복식이 강팀이라 단식 하나면 잡으면 금메달을 따는 상황이었는데 이번과 비슷한 경우"라면서 "그때도 내가 단식 경기를 잡았다"고 회상했다.

다만 당시 결승 상대는 인도네시아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손승모-이현일까지 단식 2경기를 먼저 따낸 뒤 이동수-유용성이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김동문-하태권이 금메달을 결정지었다.

사실 이현일은 런던올림픽 이후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앞두고 단체전 필승 카드로 다시 합류했다. 역시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이현일은 "적지 않은 나이라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으로 대표 은퇴를 선언했지만 아시안게임을 위해서 복귀를 했다"고 말했다. "개인전에는 나가지 않는 만큼 홀가분하게 후배들을 응원할 것"이라고 선배의 미소를 지었다. 12년 전 그가 봤던 크고 듬직한 선배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인천=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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