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K] ④ '시골 클럽' 상주의 남다른 꿈과 미래

정다워 입력 2013. 12. 9. 11:55 수정 2013. 12. 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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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상주] 정다워 기자= 경상북도 상주는 인구가 11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실제 거주인구는 7만에서 8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시내에는 경운기가 다니고, 변변한 극장도 없다. '도시'보다는 '시골'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런 상주에 프로축구팀이 있다. 바로 K리그 챌린지의 상주상무다. 상주시는 2010년까지 광주시를 연고로 하던 상무, 즉 국군체육부대와 2011년 연고 협약을 맺었다. 2011년엔 승부 조작의 중심에 있었고, 2012년에는 강제 강등을 당한 파란만장한 역사도 있다. 올해 첫 선을 보인 K리그 챌린지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강원FC와 만난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1,2차전 합계 4-2로 앞서 K리그 클래식 승격에 성공했다.

프로축구 22개 구단 중 상주 만큼 작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팀은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주는 인구 10만 5천의 소도시다. 축구팀이 있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할 정도다. 기자의 지인들 중 상당수가 상주라는 도시의 위치는 물론이고, 경상북도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전국적인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다. 낯선 소도시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적절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시즌 상주의 평균관중수는 약 2,000명에 달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개막전에는 9,000여 명이, 강원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도 7,500여 관중이 상주를 응원하기 위해 상주시민운동장에 자리했다. 거주 인구의 약 10%가 경기장을 찾은 셈이다. 2차전에도 무려 1,200여 명의 시민들이 강릉 원정에 동참했다. 상주의 축구 열기는 수도권 팀들 못지 않게 뜨겁다.

'손수레 함부로 비웃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반가운 경품이었더냐' (사진=풋볼리스트)

공성면이 응원하는 상주, 경품은 농업용 수레

상주 시내에서 상주시민운동장으로 가는 길. 거리 곳곳에 상주의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구단에서 제작한 게 아니다. 시에서 한 것도 아니다. 동마다 자체적으로 상주의 우승을 자축하기 위해 만든 현수막들이다. 크기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각기 다르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정감 있는 풍경이다. 수도권 팀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림이다.

더욱 이채로운 장면은 경기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경기장 맨 꼭대기 층엔 각 동, 면 등 지역 단위 마을에서 걸어 놓은 현수막이 있다. 하나 같이 상주를 응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성면에서도, 남원동에서도, 북문동에서도 상주의 승리를 염원한다. 빼곡하게 줄 서 있는 현수막들은 E석 한 편에 가득 메우고 있다.

K리그의 각 구단들은 홈경기를 개최할 때마다 다양한 경품을 내놓는다. 패밀리 레스토랑 식사권이라든지, 영화 관람권, 스포츠 용품 교환권 등이 통상적인 경품들이다. 하지만 상주의 경품은 기상천외하다. 상주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심지어 열광하는 경품은 농업용 손수레다. 경기마다 보통 5개 정도의 손수레를 내거는데, 인기는 당연히 만점이다. 상주의 이재철 단장은 "상주는 농업도시다. 경품도 그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 대도시 구단과는 다르게 해야 한다. 손수레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전거도 인기 경품이다. 상주 같이 작은 도시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집마다 자전거 한 대씩은 꼭 구비하고 있다. 4인 가구면 자전거 4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국내 최고의 자전거 도시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단장은 "대도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과 그 팬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이게 적합한경품이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우리에겐 매우 의미 있는 방침이다. 우리 같이 작은 구단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관중을 불러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관중 동원의 비밀, 한 사람 거치면 모두 아는 사이…SNS가 중요하지 않은 도시

상주에 실제로 거주하는 인구는 7,8만 명 사이다. 관중을 동원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평균연령도 높다. 시내에서도 2,30대 젊은이들을 만나기가 흔치 않다. 일반적으로 프로축구의 주요 소비층으로 꼽히는 연령대 인구가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뜻이다. 관중들을 경기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상주의 마케팅팀 강지웅 팀장은 "상주는 다른 구단들처럼 마케팅을 하면 관중을 모으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일반적인 방법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상주도 SNS계정을 통해 구단을 홍보하고 알린다. 하지만 상주의 인구 구성 특성으로 인해 온라인 마케팅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활용하는 방법이 직접 발로 뛰는 것이다. 현재 상주에는 총 28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중학교는 18개, 고등학교는 10개가 있다.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은 숫자다. 상주와 가까운 포항만 해도 초중고등학교의 숫자가 120개를 훌쩍 넘는다. 강 팀장은 각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어머니회를 집중공략한다. 이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하면, 구단 마케팅에도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활동이 활발한 초등학교 어머니회는 관중 동원의 핵심이다. 실제로 상주의 관중 중 상당수가 초등학생들이다. 상주가 인구수에 대비해 적지 않은 관중을 동원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학교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각 동과 면에서 입김이 센 이장이나 동장 등을 섭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단장은 "한 해가 지나면서 이제는 각 마을마다 누가 더 경기장에 많이 가는지 경쟁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특히 각 마을의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더 열정적으로 경기장에 오려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상주의 홈경기 풍경은 꽤 색다르다. 한 쪽에선 젊은 서포터들이 응원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사물놀이가 벌어진다. 문경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의 타종목 선수들이 올 때면 군인들의 박수도 만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시장님보다 개미군단이 중요' - 작은 클럽 꿈꾸는 상주의 미래

상주는 시민구단이다. 일부 예산은 시에서 지원을 받는다. 수도권 팀들처럼 거대한 스폰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만큼 소액을 후원하는 이들의 존재가 소중하다. 후원의 규모보다는 후원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는 게 이 단장의 지론이다. 그는 "거대한 스폰서 한 개가 있는 것보다 개미라 불리는 소액 후원자들이 많은 게 좋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액을 후원하는 이들은 한 번이라도 더 경기장을 찾기 때문이다. 이 단장은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후원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경기장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 사람은 그 돈을 낼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그런데 단 5만 원이라도 구단을 후원하는 사람은 한 번이라도 더 경기장을 찾으려고 한다. 그럼 그 사람이 경기장에 혼자 오겠나? 그래서 개미가 더 많아야 한다는 거다. 거대 스폰서가 돈은 더 많이 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액을 후원하느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시민구단의 특성상 구단주인 시장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상주의 성백영 시장은 축구팀에 대한 열정이 크다. 홈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응원한다. 구단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장은 "시장님이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구단은 시장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시민, 즉 팬들의 영향력에 더 기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시장이 개입되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상주처럼 작은 팀은 더욱 그렇다. 이 단장이 경계하는 내용이다. 그는 "그렇게 되려면 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우리처럼 작은 구단일수록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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