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박은선 사태 上', 서정호 감독 "절대 덮어지지 않을 것"

2013. 11. 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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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지난 11월5일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박은선의 성별 논란을 제기하면서 내년에 박은선이 리그에 뛸 수 없도록 조치를 요구했다. "만약 박은선이 계속 경기에 뛰면 내년 리그를 보이콧하겠다는 뜻을 알렸다"던 한 매체의 보도와 함께 '박은선 사태'는 축구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틀 뒤인 7일, 박은선의 소속팀 서울시청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 인간의 성별을 확인하자는 주장은 당사자의 인격과 자존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심각한 인권침해다. 더구나 박은선은 여러 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해 여자축구선수로서 전혀 문제가 없음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또 다시 박은선의 성별 진단결과를 요구하는 것은 선수를 두 번 죽이자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련기관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의뢰할 것이다. 6개 구단 감독들은 사회적 물의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할 것"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들불처럼 일어나 분노 섞인 비난을 쏟아내던 언론과 여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여자축구계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일어난 비상식적인 일이 유야무야 덮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K스포츠는 21일, 서울시청 여자축구단을 찾아 서정호 감독을 만났다. 사태가 일어난 근본적인 배경부터,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대처방안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2시간가량 이어진 긴 대화를 통해 서정호 감독은, 그냥 덮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뜻을 전했다.

사태 이후 이성균 수원시설관리공단 감독과 고양대교의 유동관 감독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했으나 아직 다른 4개 팀 감독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정호 감독은 "인권위원회를 비롯해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6개 구단에 서울시청 이름으로 공문 보내 놓은 상태다. 정확한 입장 표명을 기다리고 있다. (박)은선이네 집에서는 당장 고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단 추이를 지켜보자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은선이에게도 개인적인 SNS나 언론과의 접촉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현재의 상황을 전했다.

박은선과 서울시청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요구는 '성의 있는 사과'다. 서 감독은 "아직 합당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2개 구단은 감독을 경질하면서 의지 나타냈으나 다른 4개 구단은 책임 있는 행동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정확한 접근을 위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부터 다시 물었다. 서정호 감독은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왜 좋은 선수가 대표팀에 뽑히지 않는지 의심이 되고 걱정이 되어서 했던 제안이라고 하는데, 어이없는 발뺌"이라고 성토했다. 서 감독이 '기만'이라 규정한 근거는 서울시체육회가 지난 7일 "6개 구단 감독들이 의견을 문서로 정리해 여자축구연맹에 공식적으로 접수했다"면서 공개한 문서 속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문서 속에는 <7. 박은선 선수 진단>이라는 제하 아래 "2013년 12월31일까지 출전여부를 정확히 판정하여 주지 않을 시 서울시청 팀을 제외한 실업 6개 구단은 2014년도 시즌을 모두 출전을 거부한다는 의견"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박은선 죽이기'라는 의도가 명확했던 일이라는 주장이다.

서정호 감독은 "사실 갑자기, 즉흥적으로 생긴 일이 아니다. 박은선이라는 선수가 다른 팀에 있으면 자신들에게 부담이기에 어떻게든 뛰지 못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과거부터 있었다"면서 "예전에는 팀을 자주 이탈하는 박은선의 태도를 문제 삼아 징계를 내리는 식으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계심이 줄어들었다. 하도 말썽을 자주 일으키면서 예전과 같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으니까 박은선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지난해까지 흘러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박은선이 달라진 것이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위례정산고를 졸업하고 2005년 서울시청에 입단한 이후, 박은선은 해가 멀다하고 '사건'을 일으켰다. 사건의 대부분은 팀 무단이탈이다. 서정호 감독은 "은선이가 멘탈이 약하다. 특히 숙소생활에 너무 갑갑함을 느낀다. 팀을 이탈할 때마다 이유들은 제각각 달랐으나, 갑갑함은 늘 함께 하고 있었다"면서 "그랬던 은선이가 이제 조금 성숙해진 것 같다. 아마 중학교 이후 이렇게 꾸준하게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일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꾸준함이 다시 '경계심'을 키웠고 이것이 '박은선 죽이기'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박은선 방황의 가장 가까운 과거는 지난 2011년이다. 그해 12월 서울시청에 합류한 박은선은 몸을 만들어 2012년 WK리그로 돌아왔다. 하지만, 공백기가 하루아침에 채워질 수는 없었다. 서정호 감독은 "지난해의 박은선은 박은선이 아니었다. 우리 편이지만 상대편을 도와주는 수준이었다"는 말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음을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지금과 똑같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던 2012년에는 WK리그 감독들의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서정호 감독은 "그런데 지난해를 지나며 체력도 정신력도 좋아지더라. 그러면서 축구는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셋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이기적이던 은선이가 이타적인 것에 눈을 뜬 것이다"라면서 "하지만 이런 변화는 나만 알지 다른 팀 감독들은 모른다. 시즌이 시작되고 달라진 은선이와 서울시청을 보고서 아마 다른 팀 감독들은 그러다 말겠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2라운드, 3라운드 계속 성적이 좋으니까 감독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전했다.

박은선이 되살아난 서울시청은 2013시즌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고, 통합 준우승에 올랐다. 결국 이 타이밍이 문제였다. 구단 이기주의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왜 날개를 펼치지 못하던 지난해에는 가만있다가 올해 입장이 달라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이 많다.

서정호 감독은 "이미 8~9월부터 소문이 흘러 다녔다. 내년부터는 박은선이 리그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뿌리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10월 전국체전부터는 아예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우리 팀 선수는 물론, 다른 팀 선수들도 알고 있었다"는 말로 계획된 죽이기라 강조했다. 서 감독의 전언이 모두 사실이라면,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정리컨대, 박은선이 예전의 기량을 다시 찾았고 때문에 서울시청의 성적이 오르자 다른 팀 감독들이 자신들의 위기감 때문에 제자 한 명을 필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작업'을 펼친 것이다.

서정호 감독은 "부끄럽지만, 여자축구 지도자들이 그릇이 너무 작다. 사실 이런 일을 모의했다는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다른 감독들이)앉아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울시청이 성적을 내는 것은 박은선 때문이고, 때문에 박은선만 빠지면 우리가 이긴다는 것까지만 생각하니까 가능했던 행동"이라고 분통을 터뜨린 뒤 "우리는 승리 수당도 없고, 외국인 선수도 쓸 수 없는 팀이다. 그런 팀을 상대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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