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프로축구 30년(38)] 충격 현대 프로축구단 전격 해체(상)

김덕기 2013. 6. 3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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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3년 11개월만에 난파된 '호랑이' 현대 축구팀의 임원, 선수들은 팀 해체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87년 11월7일 오후2시 안양숙소에 모려든 선수들은 모두 허탈해 있었고 일부 선수는 눈물을 흘렸다,

조중연 감독은 "할 말이 없다. 축구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선수들의 장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고 김호곤 코치도 "협회를 이끌어 온 축구인들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주장 최강희는 "7,8일 대우와의 2연전을 앞두고 삼척에서 훈련중이었는데 긴급 철수 지시를 받고 6일 밤 11시30분 서울에 왔다. 팀 해체로까지 확대될 줄은 몰랐다."며 역시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필자가 1987년 11월 8일자에 한국프로축구 사상 최고의 파문으로 손꼽을만한 '현대 축구단 해체' 소식을 보도한 기사 내용이다.

1987년 시즌 마지막 경기를 불과 하루 앞두고 축구계를 강타한 현대 해체의 날벼락은 12월8일 팀 부활 공식 선언으로 급반전 되기까지 51일간 이 땅의 프로축구 역사를 바꾸게 한 중대한 사건의 빌미로 작용했다.

현대 해체의 불안한 그림자는 11월5일 축구협회 이사회가 선수등록의 소급적용을 결의 하면서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사회 결의는 그해 8월 고려대를 졸업하고도 추가등록기한인 7월31일을 넘긴 김종부가 기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등록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특혜성 시비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김종부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던 대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튿날 오전 선수등록카드 3부, 통일 계약서, 졸업증명서 등 등록서류를 프로축구위원회와 축구협회에 접수시켰다. 이로써 김종부는 1년 7개월 만에 선수 자격을 회복했고 현대와 대우의 '김종부 스카우트 전쟁'은 마침내 막을 내리는 듯 했으나 기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현대는 "대한축구협회가 특정 선수와 특정 구단의 편익을 위해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하고 소급적용하는 등 법규의 보편타당성과 행정의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하면서 "이런 풍토에서 프로팀 운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 팀 해체 배경을 밝혔다.

현대 해체의 급보를 11월8일 부산에서 접한 프로축구위원회 유흥수 회장은 그날 밤 서둘러 상경, 사태 해결을 위해 현대그룹 정세영 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한 끝에 11월10일 아침 면담이 성사되긴 했으나 '완강한 의지'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현대해체가 결코 엄포가 아닌 가능한 현실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프로 실업 학교가 망라된 일선 팀 감독, 코치들이 속속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축구계는 태풍 전야의 불안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충격! 현대 프로축구단 전격 해체(하) 계속됩니다.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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