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인터뷰] 김봉길 감독, "봉길매직은 나를 낮추는 것"

풋볼리스트 2013. 5. 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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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취재팀= 김봉길. 뭔가 구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이름은 이제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 사이에서 신앙과 같은 의미가 돼 버렸다. 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끈 허정무 전 감독이 부진을 거듭하던 중 물러났고 그 뒤를 이어 감독대행이 된 김봉길 감독은 지난 시즌 고비를 넘어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상위 스플리트 진출엔 아쉽게 실패했지만 하위 스플리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치며 2013시즌의 돌풍을 예고했다. 시민구단을 기다리는 운명처럼 지난 시즌이 끝나고 핵심 선수를 다른 팀에 보내야 했지만 오히려 올 시즌 인천은 더 좋은 경기력으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봉길매직'이다. 최하위권을 맴돌던 팀을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그의 지도력은 마법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과연 봉길매직을 위해 그가 읊는 주문은 무엇일까?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의 감독실에서 만난 김봉길 감독은 "나를 낮춤으로써 선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 올 시즌 인천의 돌풍이 큰 화제다. 몇몇 주전 선수가 떠나 힘들 거라고 예상됐는데?

작년 4월에 감독대행이 됐고, 7월에 정식 감독이 됐다. 그 당시엔 준비할 기간이 짧아 정신이 없었다. 올 시즌을 준비하며 동계훈련을 철저히 했고 선수 구성에 있어서도 내가 바라는 대로 거의 했다. 기존 멤버들이 다 같이 갔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사정이 있었다. 새 선수를 보강하면서 나도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작년 후반기에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떠난 선수고 그들을 안타까워하는 건 과거에 잡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었다. 지금 있는 선수들로 전력을 극대화하자고 마음을 정리했고 열심히 준비했다. 괌에서 1차 체력훈련을 했고, 목포에서 전술을 가다듬는 훈련을 했다. 일본 기타큐슈에서 실전 중심으로 경기력을 향상시켯다. 훈련 과정이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졌다.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는 가운데서도 준비는 착실히 했으니까 자신감도 있었다.

- 조직력만 놓고 보면 인천은 포항과 더불어 가장 완성됐다는 평을 받는다. 평소 본인이 강조했던 것도 팀워크인데?

그렇다. 그 부분을 늘 강조한다. 김남일, 설기현, 이천수 같은 고참들이 내 의지를 알고 팀워크라는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 축구는 팀 분위기라는 게 중요하다. 김남일, 설기현이 모범을 보이는데 구본상, 문상윤, 한교원이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경쟁에 관해서는 감독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이름값으로 무조건 우대해주면 안 된다. 팀 안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니까 선수가 좋아지고 팀이 좋아진다. 지금의 인천은 신구 조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베테랑들은 체력에 문제가 있다. 신인들은 의욕과 체력을 지녔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그게 상호조화가 되니까 팀이 잘 되는 거다.

"잘하면 선수 탓, 못하면 감독 탓. 선수를 높여야 내가 올라간다"

- 기자회견에서 항상 이기면 선수 탓이고, 지면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다.

나는 선수들한테 신뢰를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라면 우리 팀 선수를 믿어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도 '감독이 우리를 믿는구나'라고 생각할 거다. 안 되는 경기도 있고, 실패하고 질 수도 있다. 실패할 때의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 것이다. 결과에 대해 남 탓은 안 한다. 내 소신이다. 감독이 준비를 잘 못하고 전략, 전술을 못 세워서 결과가 안 좋은 거다. 내가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선수들이 잘 소화해줘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잘 되면 그 공은 선수의 몫이다. 자신감 있게 하라고 한다. 작년 말부터 올 시즌까지 지는 경기도 꽤 있지만 인천은 이제 기복과는 거리가 먼 팀이 됐다.

- 지도자가 스스로를 낮춘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사실 나도 많이 참는 편이다. 선수들이 내가 바라는 것을 이행하지 않거나 간과할 때는 화를 낸다. 지금은 감독이 어떤 축구를 추구하는지 선수들이 인지하니까 화 낼 일이 적지만 화를 낼 때는 한번 심하게 낸다. 늘 좋게만 갈 순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정신적으로 다시 한번 가다듬을 필요한 시기가 있다면 소리도 지른다. 올해는 딱 한번 있었다. 전북과의 홈 경기 하프타임이었다. "우리가 준비한 게 고작 이거냐? 홈 팬들이 너희들 자신감 없는 플레이를 보러 온 거 아니지 않냐. 경기는 져도 좋으니까 자신 있게 마음껏 해라"고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역전승이 나왔다.

- 부평고 감독 시절에는 김봉길 감독이 굉장히 무서운 지도자였다는 증언들이 있다.

(웃으면서) 맞다. 그때 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선수 은퇴하고 갓 지도자가 됐으니 의욕만 앞서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선수들에게 화를 냈다. 사실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밥도 빨리 먹고, 무슨 일이든지 빨리 결론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코치를 하면서 배웠다. 선수들은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시간을 당기려고 한다고 그게 오지 않는다. 그러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

- 어쩌면 선수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걸로 볼 수도 있다.

선수들이 부진하면 그걸 자기가 제일 잘 안다. 그때 한번 안아주면 그 감독을 어찌 안 믿겠나. 선수들에게 버림 받은 지도자는 설 곳이 없다. 요즘은 선수들도 지도자를 평가한다. 얼마나 준비하고, 잘 가르치는지 자기들끼리 스마트폰 안에서 얘기한다. 의식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선수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다. 지도자 강습 P코스 중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 감독이 심리학박사가 되어야 한다고. 운동장 밖에서도 선수들과 통해야 한다. 페트코비치 감독님이 어느 날 경기가 끝나고는 나를 살짝 불렀다. 커피 한잔 하자고 하시더니 그 얘길 하셨다. "미스터 김, 당신이 벤치에서 아무리 고래고래 외쳐도 선수들은 경기 중에 그걸 인지 못한다. 판정도 마찬가지다. 휘슬 불었는데 뭐가 바뀌나. 선수들을 동요시킬 뿐이다. 믿어라. 그러면 바뀐다." 내가 희생을 해서라도 선수를 높여야 한다. 그게 이 치열한 축구판에서 감독이 사는 법이다.

"이천수 같은 선수를 책임지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다"

- 수석코치만 8년, 감독대행만 2번 했다. 감독 한번 하기가 참 어려웠다.

감독이 되고 싶은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될 듯, 안 됐다. 그래도 수석코치 10년 하면 기회가 한번은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해외로 유학 가서 명망 있는 지도자를 만나는데 나는 한국 최고의 감독인 허정무 감독님께 배웠고, 장외룡 감독님, 그리고 페트코비치 감독님 아래에서 축구를 알게 됐다.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며 팀을 만드는 과정을 배운 데 감사하다. 그 와중에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이 만들어졌다.

- 수석코치와 감독, 어떻게 보면 한 끗 차이인데 정말 많은 게 다르다.

수석코치를 오래 하면 선수와 감독 간의 교량 역할을 하니까 선수들의 감정을 세세하게 읽을 수 있다. 선수들이 불편해 했던 쪽에 귀를 기울였다. 선수를 훈련시키는 건, 이미 지도자들이 공유하고 이는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니까 큰 차이는 없다. 감독은 대외적인 것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시민구단은 선수 구성, 외부와의 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재정이 어려우니까 내가 원하는 스쿼드를 짤 수 없다. 보낼 선수를 보내야 한다. 지난 겨울에 해 보니까 감독을 했던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감독이 됐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 시기였다. 수석코치 때는 의견만 피력했는데 이젠 모든 일의 결정권자가 되니까 고뇌할 시간이 많아졌다. 정상에 서니까 오히려 고독해지더라.

- 2013년 인천의 돌풍을 말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얘기할 선수는 이석현이다. 다른 신인들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쳐지는 반면 이석현은 꾸준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코치 생활을 오래 하면서 느낀 건, 신인을 키우려면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조금 부진하다고 바꾸면 자신감을 잃어서 어느 선에서 추락하고 만다. 마냥 기용할 순 없지만 이석현이 다행히 그 시기에 기대에 부응해줬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더 도약해야 한다. 신인이기 때문에 이 정도 평가에 만족할 수 있지만 그러면 안 된다. 스스로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 사실 인천의 스쿼드는 그렇게 두텁지 않다. 그런데도 상위권에서 계속 경쟁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요인때문인가?

시즌이 시작하면 부상 선수가 많이 나오게 되는데 다행히 올 시즌 인천은 부상이 적다. 그리고 준비 과정에서 스쿼드를 구성하는데 고만고만한 선수들이지만 나름대로 내부에서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디오고가 외국인 선수로 최전방에 있지만 그 뒤에는 이효균이 있다. 설기현이 돌아오면 더 경쟁이 심해진다. 남준재는 작년에 굉장히 잘해줬지만 올 시즌은 이천수와 경쟁을 한다. 김남일도 주장이지만 구본상, 문상윤, 손대호가 열심히 하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중앙수비가 유일하게 아쉽다. 안재준과 이윤표가 있고 그 뒤에 김태윤이 바쳐야 하는데 부상이 길었다. 그래도 전준형이 있고 급하면 손대호도 쓸 수 있다. 축구 선수는 축구화를 벗을 때까지는 무한경쟁 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다. 1주일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실전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멘탈적으로 더 강해지라고 주문한다.

- 봉길매직이라는 표현이 유행인데 교체카드 적중해서 분위기 반전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체선수가 해결을 해줘서 자신의 판단이 들어맞을 때 기분이 어떤가?

정말 좋다. 그것만큼 짜릿할 순 없다. 감에 대한 근거는 없는 편이다. 같이 생활하고 훈련할 때 관찰하며 본 시간이 근거라면 근거일까? 그 과정 속에서 쌓인 감이 있고, 경기 전 분석을 통해 어떤 스타일의 선수가 통한다는 것을 파악하면 어느 정도 예감은 든다.

- 이천수는 생각보다 빨리 몸이 올라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천수가 레일을 이탈하지 않고 계속 팀의 일원으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워낙 예전에 사고를 쳤으니까.

그건 천수를 믿는 수 밖에 없다. 천수도 팀원이다. 지금도 천수에겐 팀워크를 해치는 선수와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다행히 팀 내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경기력 외에도 후배들을 독려하고 팀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처음 천수가 인천에 온다고 하자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골치 아픈 선수를 왜 데려오냐?"고 했다. 난 생각이 다르다. 감독이 말 잘 듣고 지시 잘 수행하는 선수만 데리고 있으면 뻔한 축구를 하게 된다. 다루기 힘들어도 천수처럼 과감하고 예측 불가능한 축구를 할 줄 아는 선수도 있어야 한다. 입단하고 감독실에서 단 둘이 만났다. 그때 "마음고생 많았다"고 하니 "거둬주셔서 고맙다"고 하더라. 내가 알기론 이천수가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다. 주변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게 문제였다. 그래서 "고생한 거 마음껏 펼쳐라.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상의하자. 혼자서만 결정하고 책임을 다 안고 가지 마라"고 했다.

"봉길매직도 성적이 안 나오면 끝이다"

- 김봉길 감독도 그렇고 김남일, 이천수, 안재준 등 많은 인천유나이티드의 구성원들이 인천 출신이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이 팀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 같다.

내 얘기를 하면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여기서 프로 첫 감독을 하게 됐다.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남일이, 천수도 여기가 축구인생의 종착역일 것이다. 친척, 선후배가 있는 이 곳에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기회를 준 것도 고향이기에 더 믿고 감싸 안은 것이다. 나도 경기 당일이 되면 친구들이 경기장으로 응원을 많이 온다. 경기가 열리는 날은 거의 동네 잔치다. 아는 사람들이 관중석 곳곳에 있다. 그 책임감을 감독으로서 흡수하는 것이다.

- 어렵게 감독을 시작했지만 큰 꿈이 있을 것 같다.

당연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서 국가대표 감독도 되고 싶다. 외국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정도의 감독이 되겠다는 욕심이 있다. 7월이 되면 정식 감독이 된 지 1년째다. 감독을 해보니까 내 모든 걸 바쳐야지 이 자리를 수행할 수 있다. 모든 걸 쏟으려고 한다. 한 순간도 소홀히 해서 안 된다. 경기에서도 내가 망설이는 순간에 실점을 한다. 방심하면 그 즉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곳이 프로다. 작년에만 10명의 감독이 교체됐다.

- 승강제 도입 후 K리그 감독들이 파리 목숨이다.

그래서 난 작년에 감독 계약을 할 때 구단에 연봉이 아니라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지도자의 가치를 짧은 안목으로 보는 거다. 환경이 그러니까 맞춰갈 필요가 있지만 지원도 없이 모든 걸 지도자 탓으로만 모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무리 봉길매직이라고 하지만 성적이 안 나오면 끝이다. 쉬운 자리가 아니다. 늘 최선을 다하겠다.

사진=풋볼리스트, 인천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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