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프로축구 30년<22>] 할렐루야 4년만에 100게임 돌파 금자탑

김덕기 2013. 3. 3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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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1985년 5월26일. '프로 1호' 할렐루야가 프로통산 첫 100게임 고지에 오른 말이다. 팀 창단 4년 168일, 플로축구 출범 2년 20일만에 이뤄낸 관록과 성숙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날이었다.

1차 리그를 마감하는 이날 시즌 들어 최다관중인 1만2천여명이 경주 공설운동장에 운집한 가운데 경기에 임하는 함흥철 감독의 각오는 남달랐다. 프로 원년인 1983년 4월 지휘봉을 잡은 그 해 우승의 감격을 맛본 이후로 1984년 4위로 전락한데다 1985년 들어 1승4무1패로 중하위권에서 허덕이는 팀을 승리로 이끌어 2,3차 리그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팽팽한 대 접전 끝에 현대에 0-1로 분패했다. 1984년 드래프트제에 의해 지명했다가 현대에게 허망하게 빼앗긴 서울대 출신의 김종환에게 후반 13분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한 것이다. 게다가 1984년 할렐루야 행을 번복하고 역시 현대 유니폼을 입은 허정무에게 미드필드를 완전히 빼앗겼다.

100게임 째를 멋진 승리로 장식하려던 꿈이 무산되고 만 것이다. 배반의 아쉬움에 한숨이라도 내 쉬었을 법했으나 함흥철 감독은 차분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늘 그래왔듯이 센터서클에서 무릎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나오는 선수들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끝까지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펼쳐 준 선수들이 고마웠을 뿐이다.

함흥철 감독에게는 또 하나의 굴레로 남아 있었던 일부 축구팬들의 비난의 앙금이 눈 녹듯 씻어 내릴 것도 차분한 마음을 갖게 했다.

할렐루야는 1984년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 준결승전에서 지나치게 승부에만 집착, 수많은 반칙으로 88대표팀에 승리를 낚아챘다는 비난의 목소리들이 이날 까지도 할렐루야 감독 선수들의 가슴마다에는 고통스러운 '주홍글씨' 마냥 각인돼 있었다.

기독교 선교를 하는 팀이 어떻게 과격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느냐는 비난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납득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말 못하고 겪는 할렐루야 팀의 고통은 더욱 컸었다. 그래서 이날 보여준 할렐루야 선수들의 불필요한 반칙 자제 등 깨끗한 매너는 관중들의 격려의 박수에 충분했다.

그 모습을 신앙인으로서의 선행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포츠맨십의 정수가 그대로 나타났을 따름이었다.

함흥철 감독은 "프로 통산 100게임 돌파는 프로축구 발전의 한 기틀이 됐다. 더욱이 페어플레이로 이뤄낸 것이어서 그 의미를 더욱 빛내는 값진 것이었다."고 자평했다.

44승31무25패(국제경기 22승 6무8패 포함). 할렐루야의 100게임 성적표다.

과격한 플레이라는 오해 섞인 비난, 위축된 플레이에 따른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 끝까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극복해내며 100게임을 맞이했던 할렐루야를 자리매김해 볼 때 당시 뛰었던 많은 선수들이 그 뒤 성실한 지도자로서 귀감이 된 것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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