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프로축구 30년⑳] 무쇠다리라 불린 최기봉..124게임 무교체 출전

김덕기 2013. 3. 2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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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1985년 4월20일 전후, 국내 모든 신문 헤드라인은 '부쇠다리' '철각' 등의 표현으로 뒤덮였다.

육상선수도 아닌 축구선수에게 붙여진 이 별명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던 까닭은 그 주인공이 바로 프로축구팀 유공의 철벽 수비수 최기봉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85 슈퍼리그' 2주째인 한일은행과의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최기봉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47게임에서 제동이 걸렸으며 그는 오른쪽 다리에 두터운 깁스를 한 채 우울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아야 했다.

이 경기에서 유공은 2-3으로 패해 최기봉의 결장 공백이 유난히 커 보였다.

1983년 슈퍼리그란 이름으로 출범한 프로축구 그라운드에 유공팀 원년 멤버로 첫발을 내디딘 최기봉은 47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기까지 놀랍게도 전게임 교체 없이 소화, 프로축구 선수 중 최강의 '무쇠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기봉은 소속팀 유공이 그 때까지 프로리그에서 치른 모든 경기에 빠짐없이 그것도 교체 한번 없이 출전해 제 몫을 해냈던 것이다.

그의 출장 시간으로 따지면 4,230분으로 70시간이 넘는데 날수로는 2.74일이니 거의 3일에 이른다.

최기봉을 이 자랑스런 기록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물론 강인한 체력과 주전 자리를 결코 놓치지 않았던 훌륭한 기량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이 평가된 것은 그의 성실성과 축구에 대한 진정한 사랑, 그리고 헌신이었다.

최기봉은 "유공 입단 전 서울시청 소속으로 뛸 때 당시 박종환 감독이 유난히 훈련을 거르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무리 몸이 아파도 훈련에는 빠짐없이 참가했는데 프로에 와서도 몸에 밴 그 버릇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정남 감독 역시 "최기봉이 몸이 불편하고 다소 부상이 있어도, 그래서 아무리 쉬라고 일러도 고집스럽게 훈련장에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철의 사나이도 부상에는 손을 들고 말았다.

1985년 4월14일 할렐루야외의 시즌 첫 경기에서 전반 10분 할렐루야 포워드 문영서의 문전 대시를 저지하던 최기봉은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통증을 참고 미련스럽게 경기를 마친 최기봉은 즉시 병원으로 이송, 진찰한 결과 전치 4주의 '중형'을 선고받고 깁스를 했다.

180cm의 좋은 체격에 탱크처럼 굳센 체력의 최기봉은 투지 넘친 태클과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으로 유공의 최후방어벽을 굳건히 지켰다.

이후 6게임에 결장하여 와신상담한 최기봉은 깁스를 풀자마자 경기에 나서 그해 15게임을 무교체로 출전했다.

198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유공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최기봉의 총 출전 경기수는 124게임, 중요한 것은 124게임이 모두 무교체 출장이라는 것이다. 최기봉의 프로통산 124게임 전 게임 무교체 출장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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