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격정토로 "J리그가 한국축구 씨 말린다"

2013. 1. 2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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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황선홍 포항 감독이 젊은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일본(J리그) 진출과 그로 인한 한국축구의 질적양적 손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황선홍 감독은 최근 MK스포츠와의 만남에서 "감독이란 당장 우승 트로피를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팀을 이끌어갈 미래의 자원들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면서 "포항에 그런 선수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황선홍 감독은 답답하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황 감독은 "올해 (배)천석이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선수다"고 말한 뒤 "그래서 이놈이 일본에서 보낸 허송세월이 너무 아깝다"는 의아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포철공고 출신인 배천석은 지난해 말 입단한 신인이다. 2009년 포항의 우선지명을 받은 뒤 숭실대에 진학했던 배천석은 고교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대형 스트라이커로서의 가능성을 내뿜었던 유망주다. 2011년 중반까지는 홍명보호에서도 제법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2011년 여름에 내린 선택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배천석은 2011년 7월 숭실대를 중퇴하고 일본 J리그 빗셀 고베에 입단했다.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일본 진출이었으나 이후 배천석이라는 유망주의 이름은 사라졌다. 피로골절 부상과 함께 J리그에서 거의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고 자연스레 홍명보호에서도 내려와야 했다. 황선홍 감독의 표현대로, 배천석에게 일본에서의 1년은 허송세월에 가깝다.

황 감독은 "(포철공고)동기생들인 (고)무열, (이)명주보다 차이가 난다. 이제 무열이는 프로 3년차, 명주는 2년차가 된다. 지난 워크숍 때 천석이를 불러 차이를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인정한다고 하더라. 틀림없이 차이 난다. 빨리 따라잡아야한다"는 설명을 전했다.

요컨대, 해외무대라면 그저 좋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으로 택한 J리그가 발전이 아닌 퇴보를 가져왔고 이것이 또래들과의 격차를 벌려놓았다는 설명이다. 비단 배천석만의 오판은 아니다. 황선홍 감독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황 감독은 "왜 젊은 선수들이 무조건 일본으로 넘어가서 망하고 돌아오는지 답답하다. 근래 일본에 나가서 성공하고 들어온 대학생들이 있는가? 성공은커녕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없다. 2부리그까지 합치면 진출한 선수가 40~50명 된다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면서 "대학 감독들은 드래프트에서 왜 선수를 뽑지 않느냐 푸념하는데, 좋은 애들은 죄다 일본에 있는데 누구를 뽑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황선홍 감독도 현역시절 J리그를 경험했다. 1998월드컵 이후 일본 문을 두드렸고 이듬해인 1999년에는 24골로 J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일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전할 수 있는 충고다. 일단,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 감독은 "우리가 일본에 넘어갈 때만해도 K리그 환경은 열악했다. 잔디상태도 엉망이었다. 팀도 8개에 불과했고 연봉도 1억원이 최고였던 시절이다. 반면 J리그에서는 7~8억 원을 제시했다. 잔디부터 트레이닝장 시설까지 수준이 확실히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K리그라고 뒤처질 것이 없다"는 말로 특별한 메리트가 없음을 전했다.

황선홍 감독이 무엇보다 답답해하는 것은 한창 땀 흘릴 나이에 조금 더 편한 생활, 조금 더 받는 돈에 연연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이다.

황 감독은 "대학교 1, 2학년이라면 한창 기량을 발전시켜야할 때다. 한국에서 감독에게 잔소리도 듣고 강하게 부딪치면서 많이 배워야하는 시간인데 그게 싫은 거다"라고 한 뒤 "(일본에 가면)운동은 적게 하고 돈은 조금 더 받으며 일일이 간섭하는 사람도 없으니 당장은 좋아 보이겠지만, 어리석은 판단이다"라고 쓴 소리를 전했다.

이어 "일본은 한국과 완전 다르다"고 강조했다. 황선홍 감독은 "일본 애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왜 용병을 가르쳐주고 보살피냐"며 일침을 놓았다. 요컨대, 훈련이든 사생활이든 사사건건 간섭 없으니 마치 대접을 받는 것 같으나 결국은 방치당하고 있는 것이고 그 속에서 한창 발전해야할 한국의 유망주들이 도태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대화가 무르익자 황선홍 감독은 "일본 놈들이 치밀한 것인지, 정말 우리도 모르는 선수들을 싹 데려가서 다 없애버린다. 한국축구의 씨를 말리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인지 무서울 정도"라는 말까지 하면서 답답해했다.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끝으로 황선홍 감독은 "한창 축구만 생각할 나이인데 돈 몇 푼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옆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어려운 것을 하다가 편한 것은 할 수 있어도 편하게 지내다 어렵게는 못 지내는 것이다. 젊었을 때 고생하지 언제 고생할 건가. 서른 넘어서 힘든 길을 가겠다는 것이냐"는 말로 후배들의 올바른 성장을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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