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프로축구 10950] 슈퍼리그, 1983년 5월8일 팡파르

김덕기 2013. 1. 16.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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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1983년 슈퍼리그로 출범한 프로축구가 2012년 시즌으로 30년을 보냈다. 30년의 연륜을 쌓아오는 동안 영욕이 엇갈린 그라운드에서는 많은 스타들의 부침이 있었는가하면 거듭된 시행착오로 야유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프로축구는 기형적 탄생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월드컵 7회 연속 출전, 월드컵 4강의 업적과 국내 최고의 프로스포츠로 자리를 잡는 성과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프로축구 30년을 날짜로 환산하면 10,950일이다. 프로축구 탄생 현장은 물론 30년을 변함없이 프로축구와 함께 한 기자의 30년 취재수첩을 펼쳐 보인다.

K리그의 모체인 '슈퍼리그'가 닻을 올린 것은 1983년 5월8일이었다. 이날은 유별나게 사랑과 미움을 함께 받아 온 한국축구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날이기도 하다.

슈퍼리그 창설은 1년 앞선 프로야구의 성공적인 출범과 순항에 크게 자극받은 것이었다.

축구협회는 과도기적이고 변칙적인 방법이지만의 프로 2개 팀 할렐루야,유공과 아마추어 3강 대우 포철 국민은행을 묶어 5개 팀으로 리그를 조직하고 아마추어 팀들을 점진적으로 프로화 하여 수년 내 명실상부한 프로축구 시스템을 확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같은 구상의 중심에는 축구협회 장영근 부회장이 있었다. 국민은행 전무이기도 한 장 부회장은 1983년 2월부터 축구인 이수환씨, 국민은행원인 조철래 송만수씨와 극비리에 슈퍼리그 출범 작업을 벌였다.

1982년 각종 국내 축구대회 유료관중은 고작 8,000여명이었다. 1980년 할렐루야, 1981년 유공 등 프로팀을 창단한 축구가 한발 늦게 1982년 출범시킨 프로야구에 관중과 관심을 빼앗긴 탓이었다.

장영근 부회장은 이러다가는 축구가 고사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껴 최순영 회장에게 축구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 슈퍼리그 산파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축구 재건은 국내 경기의 활성화, 즉 팬을 되찾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그러기 위해서는 볼만하고 수준 높은 경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명색뿐인 할렐루야 유공 두 프로팀만으로는 '프로리그'라는 게 적절치 않았고 실업경기가 '코리안리그'란 이름으로 열리고 있었던 터라 '슈퍼리그'라는 명칭을 택했다.

참가팀은 프로 2팀과 프로 전환 가능성이 높은 대우 포철을 우선 배정했다. 장 부회장은 자신이 소속한 국민은행을 비롯, 금융 팀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비교적 축구단에 관심이 높은 은행 팀을 노크했으나 의외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첫 해인 1983년은 할렐루야 유공 대우 포철 국민은행 5팀만으로 시작하되 전국 주요도시 순회경기로 축구 붐을 조성, 1984년에는 많은 팀들의 참가를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기본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이 같은 슈퍼리그 계획이 새나가자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이 뛰는 것은 이론에 맞지 않는다." "너무 성급하다. 3년만에 정착시킨 코리안리그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저항과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장영근 부회장은 프로와 아마가 같이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자 강점이라고 주장, 관중이 많아져 붐이 조성되면 자연히 모든 경기가 활성화 될 것이라며 반대파를 설득했다.

축구계의 반발에 반신반의하던 장 부회장은 언론에서 호응해준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KBS 이원홍 사장을 찾아가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KBS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이원홍 사장으로부터 전 경기 사전 예고와 풀 중계를 약속받은 장 부회장은 슈퍼리그의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축구도 경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장 부회장의 마지막 과제는 얼마나 많은 관중을 끌어 들이느냐 였다. 관중은 고객이며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는 그는 관중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장 마다 푸짐한 경품과 현란한 응원이 바로 그것이었다.

3개월여의 난산 끝에 1983년 5월8일 할렐루야-유공전을 시작으로 '슈퍼리그'가 출범했다.

슈퍼리그는 출범 첫해 폭발적인 관중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축구팬들의 관심과 시선을 되찾는데 성공하며 현대와 럭키금성의 창단을 유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슈퍼리그가 지금의 K리그 모체였다.

김덕기 (스포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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