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골키퍼'가 히말라야로 가는 사연

전성호 2011. 10. 6. 17: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일레븐)

지금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다. 축구인으로서의 인생도 포기했다. 용서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선수로 뛰거나 지도자로 나서기는커녕 축구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축구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속죄하고 싶었다. 나를 비롯해 다른 이들까지도 용서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성경모. 올해 초 프로축구 승부 조작 파문의 장본인이다. 한순간 안일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재판에서는 유죄 판결을,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는 영구 제명이란 철퇴를 맞았다. 축구인으로서 인생은 끝났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다.

그가 새로운 인간으로서 거듭나기 위해서 내디딘 첫걸음은 자원봉사다. 오는 15일부터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는 달팽이원정대에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려고 고심 끝에 봉사를 자원했다. 장애인 5명, 비장애인 자원봉사자 10여 명 등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올해로 네 번째 도전의 길에 나선다. 장애인들에게 세상의 편견에 맞설 용기와 도전의 기회를 준다는 뜻깊은 원정이다.

연이은 승부 조작 보도 속에 성경모는 철저한 악인으로 낙인 찍혔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 몸부림쳤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곽균열 변호사도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재판 결과가 나온 뒤 조심스레 그에게 히말라야 원정 자원봉사를 제안했다.

처음엔 당연히 참가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 직후였다. 어떤 봉사 활동이라도 대중에겐 나쁘게 비쳐질 수 있었다. 재판부로부터 명령받은 사회봉사 300시간을 채우려는 '꼼수'란 의심 어린 시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히말라야행은 실제 단 1분도 사회봉사로 인정받지 않는다. 그렇다해도 이제 겨우 승부 조작으로 인한 파문이 잠잠해지고 있는 가운데 불쑥 이런 일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역시 잘못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곽 변호사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장애인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오르며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더불어 내가 먼저 나서 승부 조작 가담 선수들의 참회와 반성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 특별한 벌이도 없는 빠듯한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자원봉사에 참가하는 모든 비용은 자비로 준비했다. 남편의 새 출발을 응원해준 아내 덕분이었다. 또 다른 승부 조작 가담 선수였던 신준배도 이번 봉사 활동에 함께 동참하기로 했다.

이들은 앞으로 2주간 장애인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한다. 더불어 네팔 산지 마을에선 어린이 축구교실을 여는 등 2주간 자원봉사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성경모는 베스트일레븐과의 전화 통화에서 "안 좋은 일의 당사자로서 죄송하고 조심스럽다. 지금도 내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번 자원봉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그는 이번 결정이 단순히 사회봉사 활동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사실 나는 축구를 더 이상 할 생각도, 할 수도 없다. 설사 당장 내일부터 모든 걸 용서하고 다시 뛰라고 해줘도 내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워 그라운드에 서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승부 조작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정종관은 내가 아끼던 동생이었다. 종관이의 사망 소식을 옥중에서 들었는데, 동생이 처음 잘못을 저지를 때 내가 혼내지 못하고 도리어 도와줬던 게 정말 많이 후회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부끄러운 형이자 선배였지만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작은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장을 그리워하는 동생들이 많다. 죗값을 모두 치르고 다시 경기장에 서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협회나 연맹의 용서보다 국민과 축구팬의 용서가 먼저 필요하다. 우리가 반성하는 모습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진심 그대로 전해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하는 이 활동이 그러한 용서의 발단이라도 됐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놨다.

더불어 "이번 사건에 연루됐던 후배·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이번 자원봉사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들도 있어 일단 우리 둘만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많이 후회하고 있다. 정말 잘못한 일이고 입이 열 개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만큼 속죄하고 살겠다. 남은 재판이 모두 끝나고 나면 동생들을 이끌고 여러 봉사 활동을 다니며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속죄의 삶을 살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글=전성호 기자(spree8@soccerbest11.co.kr)

<인기기사>

▶조광래 감독 "폴란드전, 박주영-이동국-지동원 삼각편대 출격"

▶'6강 좌절' 허정무 감독, 인천 팬들에게 장문의 편지

▶'승부조작 골키퍼'가 히말라야로 가는 사연

▶[Injury Time] '영국 축구대표팀'은 가능한가

▶시세에게 2천만 유로 제의한 '중국의 안지' 광저우

대한민국 축구 언론의 자존심 - 베스트일레븐 & 베스트일레븐닷컴저작권자 ⓒ(주)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