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같은 서포터 앞에서 승부조작 엄두도 못내요"

2011. 6. 12. 2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3부리그 부천 FC 가보니

팬들이 직접 만든 클럽 '2017년 1부 진출' 큰 꿈

"공차는 즐거움 있기에 승부조작 유혹 뿌리쳐"

"다시 뛴다."

건축 인테리어를 돕거나, 벽돌을 팔거나, 아니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상관없다.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는 짜릿한 쾌감과 상급 리그로 오르겠다는 '희망'만 있으면 족하다.

6월11일 오후 5시 서울 번동 강북구민운동장. 한국축구 3부 리그 챌린저스리그(K3) 경기에 나선 부천FC와 서울FC 선수들은 '축구 게릴라'였다. 승부조작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저마다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200여 관중 앞에선 선수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축구는 멈출 수 없고, 관중은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 "축구의 순수성을 지키겠다"

"공 차는 게 신나지 않으니까 승부조작 제의를 뿌리치지 못하는 거다. 재미가 없다면 지금 당장 운동화를 벗어라." 올해 초 부천FC의 플레잉코치 정현민(29)은 선수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그즈음 그에게 '발신자 표시 없음'으로 찍힌 전화 한 통이 날아왔다. "'돈을 벌 좋은 기회가 있으니 같이 하자'고 하더라. 승부조작을 제의해 온 거다. '당신 누구냐'고 캐묻자 전화가 끊겼다."

2008년 K3에 승부조작이 터져 발칵 뒤집어진 뒤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화들짝 놀란 그는 "바로 고참 선수들을 불렀다. 너희에게도 이런 전화가 올 수 있으니, 절대 휘말리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고 소개했다. 주장 박문기(29)는 의리를 얘기했다. 팬들이 힘을 모아 만든 팀인 만큼 선수와 서포터스의 유대가 깊다. 그는 "서포터스가 곧 우리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다. 경기가 끝나면 같이 밥도 먹기도 한다. 이들 때문이라도 승부조작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프로팀 전남 드래곤즈에서 2년간 뛴 경력이 있는 그는 동남아를 비롯해 해외에서 꾸준히 이적 제의를 받지만 쉽게 떠나지 못한다. "막상 가려다 보니 서포터스도 있고, 땀 흘린 동료들한테도 미안하기도 하고. 즐겁게 공 차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 "선수의 자존심을 지켜라"

부천FC 소속 선수는 모두 31명. 이들은 프로축구 K리그, 실업축구 내셔널리그는 아니지만 공을 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축구를 즐기면서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선수들의 목적이다. 외국으로 나가거나 상위 리그로 재취업할 수도 있다. 이런 목적을 갖고 있는 선수라면 절대 당장의 돈만 보고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는다." 정민(34) 부천FC 운영팀장의 말이다.

K3리그는 열악한 환경 탓에 검은손의 유혹에 쉽게 노출돼 있다. 부천FC 선수들이 축구를 통해 버는 수입은 출전수당(10만원)이 전부다. 정현민 코치는 건축업을 하고 있고, 팀의 맏형 오경은(39)은 벽돌장사를 한다. 대부분 임시직을 갖고 있는 투잡족이다. 그러나 모두의 가슴속엔 커다란 꿈이 있다. 2007년 창단 당시 세운 '10년 마스터플랜'은 그들을 지탱해주는 자존심. 정현민은 "창단 10년째인 2017년 K리그 진입을 위해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다. 그 희망에 산다"고 말했다. 프로축구 K리그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던 부천FC 선수들은 이날 모처럼 4-0 대승을 거두고 최근 4경기 연속 무승에서 벗어났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