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형님들 봤습니까? 축구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조회수 2011. 8. 11. 12: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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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약체가 강호와 맞서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몸을 던지는 겁니다. 1대1이 안되면 2대1로, 그것도 부족하면 3대1로 싸우는 겁니다. 어느 곳에서든 수적 우위를 점해야만 강한 상대와 맞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협력수비, 강한 체력, 포기를 모르는 정신력입니다. 그걸 우리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 너무나도 잘 보여줬습니다.

 세계적인 강호,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 그런 팀을 상대로 우리 어린 선수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 이상을 보여줬습니다. 전반 초반 15분 정도는 상대의 기술과 패스워크에 아찔한 순간이 많았지만 그걸 무실점으로 막은 뒤에는 겂없이 맞섰습니다. 승부차기 패배. 기록으로는 무승부지만 심정적으로는 이긴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광종 감독, 모든 선수들은 경기 후 똑같은 말을 할 겁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우리가 그동안 해온 우리 플레이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스페인이 무섭다고 뒤로 물러서 수비만하지도 않았습니다. 스페인의 간담을 서늘케한 공격도 몇차례 있었습니다. 내용에서는 다소 밀렸지만 우리의 마무리 슈팅이 좋았다면 이길 수도 있는 경기였습니다.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김경중이 실축하는 순간 우리 선수들은 벤치선수까지 달려와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 때 어린 태극 전사들의 얼굴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습니다. 그건 후회없이 우리가 그동안 연습해온 걸 모두 다 쏟아냈다는 만족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해외파라고는 이용재 1명 뿐이었고 대학생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평소에 이름을 듣지 못한 무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05년, 2007년 적잖은 스타들도 있어도 해내지 못한 16강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비록 홍명보호가 거둔 2009년 대회 8강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스페인전에서 보여준 그들의 투혼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16강에서 패하든, 8강에서 패하든 별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토너먼트에서는 첫판부터 우승후보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서 패한다고 해도 그건 실력이 아니라 불운일 뿐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스페인전을 통해 너무 많은 걸 배웠습니다. 스페인의 개인기에 초반 농락당하면서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고요. 그 와중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체험했습니다. 축구는 1,2명의 스타가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똘똘 뭉쳐야 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동안 준비해온 우리만의 플레이를 해야지 강호를 상대로도 후회없는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20세 이하 어린 나이게 좀처럼 국내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귀한 걸 얻은 거죠. 이번 경험은 그들이 앞으로 좀 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겁니다.

 전날 형님들은 일본에게 완패를 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박지성, 이청용이 그리웠다는 감상적인 이유를 부진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고요. 베스트 멤버가 아니라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관용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팬들이 정신력, 체력, 기술에서 모두 일본에게 밀렸다며 대표선수들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선수들도 위기의식을 갖고 나부터 달라져야한다고 입을 모았고요.

 축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대표팀에는 박주영, 기성용, 구자철 등 유럽파가 있었지만 기대 이하 플레이에 그쳤습니다. 박주영은 팀을 찾지 못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기량이 떨어졌습니다. 구자철은 좋은 찬스에 허공만 갈라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타이기 전에 선수입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스타가 될 수도, 돼어서도 안 됩니다. 더욱이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선수라고 하면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평소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면서 경기장에서는 모든 자존심을 걸고 싸워야합니다. 기술이 부족하면서도 정신력까지 해이해진 우리 선수들이 0-3으로 완패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죠.

 그런데 한일전을 치른 형들보다 동생들은 더 어려웠습니다. 소위 간판 스타, 슈퍼스타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소는 머나먼 타국 콜롬비아, 우리 팬들도 거의 없는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세계적인 강호, 강력한 우승후보, 조별리그 3전전승 11득점 2실점 막강화력을 뽐낸 스페인이었고요. 설상가상으로 우리 팀에는 이런 강호들과 어려운 경기를 해온 경험 있는 선수들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당당하고 꿋꿋하게 싸웠습니다. 유럽파가 주축을 이룬 형들처럼 안일한 자세로 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명인 동생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온몸을 던지면 스페인을 막아냈습니다. 형들은 협력수비를 모르는 것처럼 일본을 압박할 줄 몰랐지만 동생들은 둘이,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며 스페인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비록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들의 투혼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 축구가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도 찾았고요.

 스페인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이 돼 거둔 무승부(기록상)은 아직도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젊은피들에게는 스페인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팀을 만나 8강에 오른 것보다는 더 귀한 경험이 될 겁니다.

 이번 20세 이하 대표 선수 중 몇몇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에 뽑힐 겁니다. 장현수, 백성동 등이 후보들이겠죠. 이들은 올림픽대표선수들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을 이번에 했습니다. 기량도 좋아졌고 여유도 늘었고 앞으로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강호들과 싸워야하는지를 깨달은 선수들이죠. 지금 올림픽대표팀은 선수 발탁이 대표팀과 겹치고 간판 선수들이 해외로 나갔습니다. 올림픽 최종예선이 진행될 오는 11월에는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프로팀과 선수차출을 놓고 한바탕 홍역도 치러야합니다. 이런 가운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값진 경험을 한 선수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역만리 콜롬비아에서 돌아올 우리 어린 선수들, 고개 숙이고 죄지은 얼굴로 귀국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는 것, 갖고 있는 것 이상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축구협회는 금의환향를 반기는 축하파티는 아니라도 잘 싸웠다는 격려 만찬이라도 열어줘야 합니다.

 어린 선수 여러분, 너무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얻은 소중한 경험, 마음 속에 깊이 되새기고 앞으로 더욱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세요. 그리고 다음에 스페인 한 번 더 만나면 그 때는 한 번 더 놀래켜줍니다. 물론 다음에도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공은 둥글고 약체라고 매번 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팬 여러분. 지금이라도 이번 20세 이하 대표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해둡시다. 평소 무관심한 과거를 반성하며 말이죠.

 ▲골키퍼=노동건(고려대) 김진영(건국대) 양한빈(강원) ▲수비수=장현수(연세대) 임창우(울산) 김진수(경희대) 황도연(전남) 민상기(수원) 이주영(성균관대) ▲미드필더=김경중(고려대) 남승우(연세대) 문상윤(아주대) 이기제(동국대) 백성동(연세대) 최성근(고려대) 김영욱(전남) 이민수(한남대) 윤일록(경남) ▲공격수=이용재(낭트) 이종호(전남) 정승용(경남)

참으로 자랑스럽고 앞으로 더욱 빛날 이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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