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주말리그 2년째 중간 점검.. "영재반 학생도 축구부 가입하더라"

2010. 4. 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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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돌아. 돌아서 슛."

"골인∼."

"그래, 잘했어."

"이번엔 누구네 집 애가 넣었어요?"

지난달 27일 토요일 낮 서울 면목동 용마폭포공원 인조잔디구장. 전국중등축구리그 서울동부리그 경기가 한창이다. 공릉중학교가 골을 넣자 수송중학교 골대 뒤편에 늘어선 어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학부모 20여명이 커피를 나눠 마시며 자식들을 응원하는 중이다.

지난달 초·중·고 축구 주말리그가 시작됐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전국에서 300여 경기가 열린다. 주중 축구대회는 사라졌다. 전국대회도 방학에만 열린다. 학생 선수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날 서울 이촌1동 신용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전국초등축구리그 서울중부리그가 진행됐다. 심판을 맡은 곽한호(서울시축구협회 심판위원)씨는 "예전에는 초등학교 선수들도 대회 나가고 훈련하느라 수업의 40%도 듣지 않았다"며 "주말리그가 도입돼 지금은 모든 수업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운동장의 학부모들은 주말리그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중1 축구 선수를 둔 이명재(55·서울 망우동)씨는 "공부랑 축구를 같이 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며 "요즘은 공부도 제대로 하고 축구를 하니까 안심이 된다"고 했다. 주부 김범란(46·경기도 남양주시)씨도 "원래 축구를 안 시키려고 했는데 아이가 하도 졸라서 선수로 뛰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 애는 축구를 하면서도 전교 30등 안에 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김형완(42·충남 천안시 두정동)씨는 "주말리그가 아이들을 혹사시킨다"고 불평했다. "주말리그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에도 애들이 쉴 틈이 없다. 여름방학에도 전국대회가 있어 못 쉰다"는 것이다. 서울의 중학교 축구부에 진학한 아들 경기를 보러 새벽에 전남 여수에서 올라왔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는 "축구하라고 서울 보냈는데 운동시간 줄이고 공부를 시킨다니 걱정"이라며 "박태환 김연아가 수업에 들어갔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는 올해로 2년째를 맞는 축구 주말리그가 성공적이라 평가하고 있다. 축구협회 경기운영팀 김종윤 과장은 "축구 주말리그로 학원스포츠가 바뀌고 있다"며 "시작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요즘은 타 종목에서도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 초·중·고 축구리그 만족도 조사'에서도 지도자 82.4%, 학부모 81.9%가 주말리그 제도에 대체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라지는 학교 축구

축구협회는 지난해 '공부하는 축구선수 육성'을 내걸고 초·중·고 주말리그를 도입했다. 이전까지 학교 축구는 토너먼트 방식의 전국대회 중심이었다. 축구 선수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전국대회에 참가했다. 보통 열흘씩 대회가 이어져 매달 열흘 이상 수업에 빠졌다. 또 한 번 패하면 곧바로 탈락하는 토너먼트 특성상 매 경기가 과열될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안고 뛰는 경우도 많았다.

주말리그 도입 후 학교 축구 풍경이 변하고 있다. 경희초등학교는 축구부실에 도서대가 비치돼 있다. 선수들은 여기서 숙제를 하고 책도 읽는다. 윤의병 감독은 "연습 전후에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애들이 공만 차는 기계가 돼선 안 된다"며 "두뇌 발달이 이뤄져야 우수한 선수도 된다"고 했다.

공릉중학교는 '공부하는 축구부'로 유명하다. 축구부 자체적으로 매달 한자와 영어 시험도 본다. 김경수 감독은 "공부하면서 축구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지난해부터 축구부를 찾아오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예전에는 축구화 신는 순간 공부를 포기하는 상황이어서 선수 수급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축구협회 김종윤 과장은 "부산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영재반 학생이 축구부에 가입했다"며 "옛날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표면에서의 변화는 분명하다. 그러나 주말리그가 학교스포츠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운동 실력으로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운동시간 줄이자는 얘기가 먹혀들기 어렵다. 수많은 편법이 동원될 수 있다. 결국 체육특기자 선발 제도를 수술하지 않는다면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한때의 구호로 그칠 수도 있다.

한국중등축구연맹 전무이사이기도 한 김경수 감독은 "몇몇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주말리그가 학원체육이 나아갈 방향이 맞다"고 주장했다.

"운동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다면 운동만 해도 돼요. 그런데 사실 국가대표 한두 명을 위해 여기 다 들러리 서는 거예요. 운동 그만둔 뒤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야구도 주말리그로 간다

대학농구는 올해 리그제를 시작했다. 학기 중에 치러지던 토너먼트 방식의 대학연맹전을 폐지하고 각 대학 체육관을 오가며 경기하는 대학농구리그를 출범시켰다. 지난달 26일 고려대와 연세대가 첫 경기를 가졌다. 관중이 돼 줄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주말엔 경기가 없다. 대신 주중에 강의가 모두 끝나는 오후 5시부터 경기를 시작한다. 학생 선수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30일 끝난 제55회 전국중고등부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고등부 모든 경기가 방과 후 오후 5시에 열린 것이다. 아이스링크가 확보되지 않아 중등부는 종전처럼 낮에 경기를 치렀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고등부 선수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경기에 나오도록 시간을 조정했다"며 "방과 후 경기를 초·중·고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엔 초·중·고 야구에도 주말리그가 도입된다. 대한야구협회는 지난 2월 '학교야구주말리그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원장을 맡은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운동장을 확보하고, 전국대회 횟수를 줄이고, 선수 드래프트제를 손질해야 한다. 난관이 적지 않다"면서도 "리그제를 도입해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할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야구는 축구와 함께 학교스포츠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축구에 이어 야구가 주말리그로 전환될 경우 학원스포츠의 주말리그 흐름은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 정준희 사무관은 "축구 주말리그가 정착 단계에 들어갔다"며 "주말리그를 다른 종목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찬물 끼얹은 '학교체육법' 부결

주말리그를 중심으로 학원체육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달 2일 이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 본회의에서 '학교체육법'이 부결된 것이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체육법은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을 학원체육 정상화 방향으로 제시했다. 주중 학생대회 개최 금지, 최저학력제(일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의 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제도) 도입, 방과 후 스포츠클럽 활성화 등이 담겼다. 한나라당은 법 심의 과정이 부실하고, 엘리트 체육이 축소될 위험이 있으며, 체육이라는 특정 과목만을 위한 법률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안 의원 측은 "한나라당이 아무 대안도 없이 법안을 부결시켰다"며 "운동을 하더라도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게 사회적 흐름인데 결과적으로 국회가 그것을 따라주지 못한 꼴이 됐다"고 말했다.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도 "중3 학생 선수가 맞춤법도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학원스포츠가 변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현실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정치권이 그 흐름을 막아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준비가 제대로 안 돼 부결시켰다는 게 반대쪽 설명인데, 그건 정말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왔고 학자들과 교사, 정당 등이 한 목소리를 내서 만들어낸 법이다. 상대(민주당)가 밉다고 법을 비틀어 버린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고, 체육계에 큰 죄를 지은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미래에 흙탕물을 뿌린 것이다."

학교체육법 부결은 문화부 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 정준희 사무관은 "학교체육법은 우리 부처가 지향하는 학원체육 방향과 내용적으로 일치한다"며 "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법안 내용의 일정 부분을 적극 수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 법안을 다시 발의해 이달 임시국회에 상정하려 한다. 정희준 교수는 "이번에도 묻히면 어쩌나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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