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향해 쏜다" 꿈익는 열여덟 소년

입력 2004. 11. 12. 03:36 수정 2004. 11. 12.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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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이해준 기자]△2군리그 MVP를 차지한 한동원이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작은 사진=FC서울제공). 큰 사진은 한동원이 청소년대표로 활약할 당시의 모습.열여덟 살. 아직 얼굴에 채 여드름이 가시지 않을 나이다. FC 서울의 한동원(18)도 마찬가지다.

2004년 11월 11일 오후 2시. 한동원과 같은 또래인 전국의 고3 수험생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해 막바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을 시간 그는 구리연습구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기살기로 축구공을 쫓았다. 그에게도 인생의 한 단계를 정리하는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FC서울과 성남 일화의 2004년 프로축구 2군리그 결승전 2차전이다. 한동원은 FC 서울 2군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선수. 당연히 선발 출장한 한동원은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 날 FC 서울은 성남을 종합전적 1승 1무로 누르고 2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시즌 2군리그 13경기에 출장, 6골을 뽑아낸 한동원은 MVP로 뽑혔다. 2004년 대한민국 프로축구 2군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 선수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여덟 살 소년 한동원이다.

지금부터 3년 전. 남수원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한동원은 특별한 선택을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FC 서울(당시 안양LG) 입단을 택한 것. "어차피 대학 졸업해도 프로에 갈 거잖아요. 빨리 가서 좋은 환경에서 배우면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달랐다. 일년에 한번 밟아보기도 힘든 잔디를 매일 쓸 수 있다. 학교 축구부에서는 라면에도 광분했지만 프로에선 영양사가 준비하는 최고의 식단을 누릴 수 있다. "아무래도 또래 친구들하고 차이가 나죠. 특히 좋은 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때 제가 훨씬 더 적응이 빠르죠." 좋은 것은 잔디뿐만이 아니다. "스케줄에 따라 꾸준히 훈련해서 좋아요. 웨이트, 체력, 전술, 기본기 훈련 같은 거요. 프로에서는 어떻게 하는구나 빨리 알 수도 있어 좋아요." 기량은 쭉쭉 뻗어나갔다. FC 서울의 프로 2군은 한 달에 두세 번씩 열리는 대학팀과의 연습경기. 한동원은 "첫해에는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일년 일년 할수록 힘이 붙는 게 느껴져요. 이제는 웬만큼 힘이 좋은 대학생 선수와 맞붙어도 자신 있어요." 서울에 입단하던 당시 173cm 61㎏이던 체구도 3년 새 178cm 69㎏으로 조금 더 커졌다.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도 뽑혀 올해 열린 아시아청소년 선수권에도 출전했다.

그렇다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친구들 만나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 들으면 학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후회하지 않아요." FC 서울에는 한동원처럼 고교 대신 프로팀 진학을 택한 이청용, 송진형, 고명진, 이익성, 안상현 등 어린 선수가 많아 지난해부터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월요일 화요일에는 영어회화, 목요일에는 컴퓨터를 배워요. 영어 선생님은 캐나다 사람이에요. 잘은 못해도 외국 나가면 호텔 프런트에서 열쇠 달라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조광래 감독은 "실용적인 면에서는 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보다 나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한동원은 인생의 한 고비를 아주 성공적으로 넘었지만 아직 그의 앞에는 더 높은 산들이 겹겹이 가로 놓여있다. 그래서인지 2군 MVP에 올랐지만 그리 기쁜 표정도 아니다. "우선 1군에 뛰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뛰었느냐는 질문에 한동원은 "모두 9경기고 올해는 4경기"라고 아주 정확히 대답했다.

1군에서 뛰는 한 경기 한 경기가 2군 선수에게는 그토록 소중하다. 2군리그 선수들의 승리수당은 아예 없거나 기껏해야 30만원. 1군으로 올라가면 승리수당은 곧바로 10배 이상 불어난다. 한동원이 뛰어든 곳은 소수가 부와 명예를 독점하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인 것이다. 대표팀 발탁, 2010년 월드컵 대표, 유럽리그 진출 같은 커다란 목표도 모두 1군에 올라가야 달성할 수 있다. FC 서울의 두터운 선수층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학업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축구 장인(匠人)의 길을 택한 역대 최연소 2군리그 MVP 한동원의 앞날이 주목된다.

이해준 기자 <hjlee@ilgan.co.kr> 2005년 2군리그 위기 부산 부천등 포기검토 한동원을 키워낸 2군리그가 위기에 빠졌다. 부천, 부산 등 구단이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 2군리그 포기를 검토하고 있다. "2군리그 경기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한동원의 바람과는 반대의 방향이다.

사실 K리그 프로구단은 유럽이나 일본의 클럽과 비교해 볼 때 연령별 유소년 클럽을 지니지 않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몸값 비싼 선수가 모인 실업팀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프로클럽들이 해야 할 일을 용인 FC, 경수 축구단, 포천 축구센터 등 민간과 지방자치단체에서 떠맡아 하며 축구의 선진화를 일구고 있는 실정이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2군리그를 K2리그의 초석으로 삼는 한편 유소년 클럽 육성의 전초기지로 삼는 방안을 계획중"이라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FC서울 서러운 2군 우승서울은 2군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헹가래를 치지 않았다. 1군이 K리그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에 몰려 "하찮은" 2군 우승에 기뻐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또 19세 미만의 선수들이 6~7명이나 돼 승리의 샴페인도 터트릴 수 없었고 뒤풀이로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실 수 없었다.

또 비록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2차전은 1-1로 비겼기 때문에 2군 경기 승리수당으로 주어지던 30만원조차도 이 날은 받지 못했다. 트로피를 제외하고는 MVP 상금도, 우승 상금도 없다. 이래저래 우울하고 서러운 우승이 아닐 수 없다. 대신 11월 11일 소위 "빼빼로 데이"를 맞아 팬들이 건내준 초콜릿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한동원은…▲생년월일: 1986년 4월 6일 ▲출신교: 수원 율전초-남수원중 ▲포지션 : 미드필더, 포워드 ▲K1리그 기록: 2002년 1경기, 2003년 4경기, 2004년 4경기 출장 ▲연봉:2002년 입단시 계약금 1억2000만원, 연봉 2000만원-2003년 연봉 2000만원-2004년 연봉 2000만원 ▲대표 경력: U19 청소년 대표(2004 아시아선수권 우승) ▲스스로 평가한 장점: 볼키핑력 ▲스스로 평가한 단점: 스피드와 순발력▲닮고 싶은 선수: 박지성 ▲가족관계: 부 한형대(48), 모 변혜숙(44), 누나- Copyrights ⓒ 일간스포츠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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