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제명 진영수, "한 번쯤은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2013. 8. 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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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가담했던 선수 중 한 명, 3년이 지나서야 털어놓는 이야기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던 e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이 있은 지 약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지상파 뉴스에서 일제히 보도했을 정도로 프로게이머들이 저지른 승부조작 스캔들의 파장은 매우 컸다. 특히 한때 '본좌' 칭호를 들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던 마재윤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비단 마재윤뿐만이 아니었다. 조작에 연루된 그 어떤 선수도 충격이 아닌 선수는 없었다. 노력의 아이콘이자 한 팀의 에이스, 거기에 곱상한 외모로 인기를 누렸던 테란 진영수도 마찬가지였다. 마재윤의 알선으로 조작에 가담한 진영수는 많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안겼고 특히 소녀팬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이후 진영수는 처벌과 함께 e스포츠협회 차원에서 영구제명을 당해 사람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진영수가 인터뷰를 요청해왔을 때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서, 왜 지금에서야 인터뷰를 하자고 하는 건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에 그는 '사죄하고 싶어서'라는 일관된 답변을 내놨다. 언젠가 한 번은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승부조작 스캔들에 연루된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마재윤이 인터넷 방송에서 '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해 비난 여론이 일었던 사건을 떠올렸을 때 더욱 진정한 사과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공식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해서 26살 평범한 젊은이로 살고 있는 진영수를 만났다. 그리고'진심'을 담보로 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 #160; & #160; & #160; & #160;

3년이 지났지만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왜 이제서야?

"승부조작이라는 사건이 있은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저를 모르는 분들도 있고 제 얘기를 듣기 싫어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한 번쯤은 이렇게 사죄를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후회도 많이 하고 자책도 많이 했는데 쉽게 나서지를 못한거죠. 지금도 굉장히 힘들어요. 얼마 전에 STX 소울이 프로리그에서 우승했잖아요. 가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제가 가는 것 자체가 팀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차마 못 가겠는 거에요. 휴대폰으로 메시지만 보냈죠. 우승한 다음에 축하한다는 말도 전했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쉬운 마음이 더 컸어요. 내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을 전부 보낸 팀인데 나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 이런 생각이 들면 또 다시 과거의 제 잘못이 떠오르고, 그래서 더 사죄하고 싶었어요."

사과를 하려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상기해야 한다. 알려진 것처럼 진영수는 지난 2009년 12월, 배틀넷에서 마재윤으로부터 승부조작을 처음 제안 받았고, 그달 16강 탈락이 확정된 스타리그 경기와 MSL 8강전 김구현과의 다전제 1경기를 고의로 패배해 각각 300만원씩 총 600만원을 대가로 수령했다. 이후 마재윤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 봉사 120시간을 선고 받았고, 진영수에게는 추징금 600만원과 벌금 600만원이 부과됐다. 또한 두 명 모두 한국e스포츠협회로부터 선수 자격을 영구히 박탈 당했다.

STX 소울의 창단 멤버이자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진영수는 승부조작 사건 이후에도 김민기 감독이나 팀 동료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다고 한다. 군대에 있을 때는 후배들이 편지를 써주기도 했고 동갑내기 친구인 박종수 코치와는 절친으로 지낼 정도. 하지만 STX의 프로리그 결승전에 직접 가지는 못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년이 흘렀지만 적어도 e스포츠 안에서 진영수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온 셈이다. 오래전 이야기라도 그 당시의 승부조작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리그에서 일부러 경기를 패하며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진영수.- 승부조작을 왜 하게 됐었는지 솔직하게 말해달라.

"일단 제가 어떤 얘기를 해도 핑계고 변명이겠지만 그 당시에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태였어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연봉을 받으면서 생활했지만, 돈을 벌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하루하루가 힘든 날이었는데 그러던 중에 마재윤한테 그런 제의가 온 거죠. 그때만 해도 승부조작이라는 단어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고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마재윤이라는 인물에게 어차피 중요한 경기가 아니니까 져주고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식의 얘기를 들으니까 쉽게 넘어갔던 것 같아요."

- 그건 넘어간 사람이 잘못이지.

"네.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었죠. 어쨌든 저의 선택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승부조작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서로 얘기할 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나쁜 일인지 몰랐는데 막상 시간이 되서 경기를 져주려고 하니까 엄청나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에요. 죄책감이죠. 그 경기를 끝내고 나서 정말 다시는 이런 짓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서는 안될 일을 했고 그 후에 마재윤이 찾아와서 돈을 줬을 때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 하지만 그런 일이 한 번 더 발생했지 않았나?

"첫 번째는 그렇게 끝이 났는데 마재윤이 상대 선수의 빌드를 알려준 적이 있어요. 원래 방송경기를 앞두고 연습할 때 빌드가 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저는 그냥 그런 것이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빌드를 알고도 제가 그 경기에서 진 거에요. 근데 나중에 그 경기에 엄청난 돈이 걸려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상하게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엄청 미안해지는 거에요. 바보같이 그걸 만회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개인리그에서 같은 팀 구현이와의 경기에서 1세트를 일부러 져주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두 번의 조작 경기를 했던 22살의 진영수는 경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양손이 떨릴 정도로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현장에 와 있는 팬들의 눈을 마주치기가 무서웠고 방송국 스태프들을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다시는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마재윤이 아닌 다른 선수나 이메일을 통해 계속해서 승부조작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승부조작 사건은 대중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나게 됐다.

-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나서 마재윤에게 연락을 받거나 한 적은?

"처음에 제가 먼저 연락을 해봤는데 마재윤 어머니께서 받으시더라고요. 저랑 통화하는 걸 거부한거죠. 통화가 안 된 이후 지금까지 다시 연락을 해본 적은 없어요. 나중에 마재윤이 일부 혐의를 부인해서 제가 검찰 쪽 증인으로 법원에 가게 됐는데 그 때도 마재윤을 만나지는 못했어요. 거기서 계단을 밟고 재판장으로 향하는데 서 있는 팬들을 본 거에요.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도 모르겠고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죽고 싶었죠."

그것은 엄청난 잘못이었고, 좋았던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추징금과 벌금형, 협회에서 영구 제명까지 당했는데

"프로게이머 생활을 7년 넘게 해 왔는데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끝나야 한다는 게 참혹스러웠죠. 그리고 저를 믿어준 가족들과 팀원들, 여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 밖에 없었어요."

- 처음 그런 제의를 했던 마재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나

"처음엔 진짜 많이 원망했어요. 아니, 무섭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 스스로한테 화가 나더라고요. 나중에는 그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 생각하게 되고 결국 제 잘못이니까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죠."

- 중학생 때부터 게임만 해왔던 셈인데 그렇게 퇴출된 이후 어떻게 살았나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고향에 내려가 6개월 정도 칩거 생활을 했어요. 마음 편히 어디를 갈 수도없었죠. 어디를 가도 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고 욕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항상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녔는데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항상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살았으니까요."

- 그래서 어떻게 극복했는지

"가족들이 위로를 많이 해준 것도 있지만 제가 그렇게 실망을 안겼는데도 저를 응원해 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말할 수 없이 고마웠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제가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자주해서 좋은 얘기를 해주신 분도 있고, 감독님과 팀원들도 저를 탓하지 않고 걱정하고 위로해 줬어요. 그래서 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그러다 입대했는데 차라리 군대에 있을 때가 편한 시간이었겠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육군으로 입대했는데 다 비슷한 또래들이 오는 거니까 부대에서도 승부조작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고참들도 그렇고 간부들까지 저한테 수없이 묻고 꾸짖기도 했어요. 물론 그 안에서도 진영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거죠. 그냥 군생활은 남들처럼 똑같이 힘들고 보람되게 했다고 생각해요. 또 군대 안에서는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내가 그랬지만 도대체 왜 했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수만 번도 넘게 생각했을 거에요."

승부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인 팬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승부조작이라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잘 알고 있는지

"사건이 터지고 나서 바로 알았죠. 내가 프로게이머고, 나를 응원해 준 팬들이 있는데 내가 그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런 생각은 지금도 계속 해요. 지금은 e스포츠가 아닌 다른 스포츠에서도 승부조작 사건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도 승부조작에 대한 유혹은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어린 선수들한테는 어른들이 확실하게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는데 어떤 얘기를 들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나

"브루드워가 더 이상 리그가 열리지 않고 있잖아요. 전 그게 아직도 실감이 잘 안나요. 제가 가장듣기 힘든 얘기는 그거였어요. '많은 선배들이 공을 들여 쌓아 온 e스포츠가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졌다'는 말.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한 순간의 실수와 저의 멍청함으로 인해 그런 얘기를 듣게 됐다는 게 너무 힘들었죠."

- 전역한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전역한 다음부터 이일 저일 다 해봤어요. 공사판에서 막노동도 해보고 택배 물류도 했어요. 피시방 알바도 해봤는데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바리스타 공부를 하게 됐어요. 아주 작게 시작하더라도 손수 만든 커피를 사람들한테 팔면서 사업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돈을 모으고 있는 도중에 한 회사 대표님을 만나서 비서 생활을 하게 됐는데 지금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어요."

- 앞으로는 어떻게 살 생각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제가 다 잊혀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사람들한테 연락이 많이 와요. 신기한 일이죠. 미니홈피나 메일을 통해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 주고 있긴 한데 그런 분들에게 한 번쯤은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다 말씀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중요한 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는데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아무렇지 않게 승부조작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냥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를 아는 분들 모두에게 힘프로게이머 진영수가 아닌 인간 진영수가 괜찮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대신 뭘 하든 착실하고 진실되게 살아야겠죠."

인터뷰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얘기를 다 듣고 나서도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팬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진영수의 진심이 인터뷰를 통해서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이뤄진 만남. 어쩌면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사건이 터졌을 당시 직접 얼굴을 내비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건 아닌지 착잡함이 느껴졌다. 그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도, 이해도 바라지 않고 그저 사죄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듣고 싶었던 것은 진영수라는 한 개인의 사과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통해 명쾌한 해결책이나 승부조작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위한 따뜻한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 #160;

강영훈 기자 kangzuck@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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