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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 드림 41]16세에 뒤늦게 야구를 시작한 웃음대장 리즈
훌쭉한 키에 단단한 체격의 리즈는 참 유쾌하게 잘 웃었습니다. 16세나 돼서 뒤늦게 야구를 시작해 불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짧은 시일 내에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지만 경험 부족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는 또 새로운 투수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라다메스 리즈 고메스의 이야기입니다.
-라다메스 코리 리즈가 원래 이름인가.
▶그렇지 않다. (웃음) 나의 원래 이름은 라다메스 리즈 고메스다. 리즈는 아버지, 고메스는 어머니의 성이다. 그런데 미국에 가면서 어떤 이유에선지 코리라는 이름이 중간에 붙었다. 인터넷에는 그렇게 나오지만 원래 내 이름은 아니다.
-기록은 보니 도니미칸 공화국의 엘 세이바에서 태어났다고 돼 있는데.
▶그렇다, 엘 세이바(El Seyba)는 작은 도시다. 그곳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려서 자라기는 시골에서 대부분 자랐다. 5살 때인가에 큰 형이 살던 산 페드로로 가서 살다가 10년여 전에 형이 사망하면서 13세인가에 다시 시골로 갔다. 그리고 16세에 다시 산 페드로로 가서 계속 살았다.
-모두 8남매인가.
▶지금은 그렇다.
-지금은?
▶말했지만 큰 형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지금은 8명이다. 남자 형제 중에는 내가 막내고 여동생이 둘 있다. 원래는 일곱째이다.
-부모님은 시골에 사셨나.
▶어머님은 14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후에 나는 산 페드로로 다시 돌아갔다.
-시골에서 아버지는 농사를 지은신건가.
▶이버지는 일용직으로 힘들게 일하셨다. 사탕수수 밭에서도 일하고 공장에서도 일하시고. 형들도 일을 했고 나도 조금 일을 하고 그랬다. 가난한 집안이었다.
-야구는 언제 시작한 건가.
▶16세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산 페드로로 다시 돌아갔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늦게? 그전에는 야구를 하지 않았나?
▶안 그래도 형이랑 어제 이야기를 했었다. (형 둘이 현재 한국에 와 있습니다.) 페르난도 형(리즈는 형을 조니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이 어려서 내게 낡은 글러브를 주면서 야구를 시작했었다. 형도 야구를 했지만 5년 동안 시도를 했는데 프로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야구를 시작하면서 2년 안에 프로가 되지 못하면 야구를 그만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도미니칸 프로 팀과 계약을 하게 됐다. (웃음)
-그리고 2년 후인가 볼티모어와 계약한다.
▶그렇다. 19세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고 2년간 도미니칸 서머리그에서 뛰다가 2년 후인가에 미국 마이너리그에 데뷔했다.
-대부분 도미니칸 선수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야구를 하는데.
▶아버지가 나는 야구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형은 허락을 했는데. 내겐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어려서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5살 많은 형 조니는 정말 야구를 좋아했다. 16세가 돼서 나는 삶의 결정을 할 나이가 됐고 형이 내게 야구를 권했다.
-처음부터 투수를 했나.
▶형은 3루수였고 내가 유격수가 되길 바랐다. 그렇지만 내 어깨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챘다. (웃음) 그래서 투수로 시작했다.
-투수라는 포지션이 참 어려운데 야구 배운지 2년 만에 빅리그 팀과 계약을 하다니.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야구는 뭔가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고, 늘 배울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2004년에 난 97마일(156km)을 던졌다. 그 리그에서 97마일을 치는 타자는 많지 않았다. (웃음)
-그리고 2005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어는 좀 할 줄 알았나.
▶전혀. (웃음) 처음엔 돈도 없고 해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난 영어를 못하고 그분들은 스패시니를 못하니 참 어려웠다. 음식도 다르고. 그러나 열심히 했고 별 어려움 없이 적응을 했다. 싱글A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더블A에 올라가니 좀 다르긴 했다. 진짜 야구를 하는 느낌.
-그래도 2006년 더블A에서 뛸 때는 올스타전 퓨처스 게임에도 나갔다. 삼진도 아주 많고 또 볼넷도 많았다. 늦게 시작했으니 배우는 과정이 필요했을 듯.
▶그렇다. (스트라이크에서 고개를 끄덕이다 볼넷에서 크게 웃음) 빠른 공을 던지면 때로는 제구를 잡기가 쉽지 않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많지만 구속을 떨어뜨려 제구를 잡으려고 하는데 난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강하게 던지려다 공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에 와서 더욱 좋은 투수가 됐다는 리즈는 16세에 뒤늦게 야구를 시작해 아직도 배우고 발전하는 중입니다.>
-노히트 노런 경기도 했다. 더블A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는 수준인데.
▶(즐거운 웃음과 함께)2007년이었다. 더블A는 유망주도 많고 빅리그 수준의 선수도 꽤 많다. 그 경기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든 게 잘 풀렸다. 지금도 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때는 젊었다. 공도 아주 빨랐다. (웃음) 5,6회가 지나면서 노히트인줄 알았고 7회가 지나면서는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아웃은 라인드라이브 타구였는데 도미니칸 친구인 좌익수 루디 존이 기가 막힌 호수비로 잡아냈다. "잡았어? 잡았어?"라고 외치던 생각이 난다. 해리스버그와의 경기였다. (2007년 6월1일)
-삼진은 몇 개를 잡았나.
▶그 경기에서는 10개를 잡았다. 볼넷은 몇 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웃음) 그리고 얼마 후에 또 노히트 노런을 할 뻔 했다.(8월14일 코네티컷 전) 8회에 들어갈 때까지 노히트였다. 그런데 송구 실책이 나왔는데 안타로 기록이 됐고 내가 집중력을 잃은 것 같다. 곧이어 홈런을 맞았다. 결국 그 플레이는 경기 후에 실책으로 수정됐다. 그렇게 노히트를 놓쳤다.
-한 해에 노히트를 두 번이나 할 뻔 하다니. 마이너에서는 100마일도 던졌다는데 그때였나.
▶그 당시는 97~99마일을 계속 던졌다. 평균 96,97마일 정도 됐다. 마이너에서 가장 빠르게 기록된 것은 101마일(162.5km)이었다.
-아버지나 형들도 야구를 했나.
▶아니 아버지는 전혀 아니었고 네 형 중에 조니 말고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조니만 야구를 했는데 거의 프로가 될 뻔도 했지만 3000 달러의 계약금만 주겠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조니와 가브리엘 형이 현재 한국에 와 있는데 내가 야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자 조니형이 자기가 오면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고 큰소리치더라. 그런데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는데도 요즘 야구가 다시 잘 된다. (웃음)
-그리고 2007년에는 메이저리그 데뷔도 했다. 야구를 시작한지 4년만이었다.
▶미네소타와 경기였다. 5회까지 잘 던지다가 6회에 토리 헌터에게 3점 홈런을 맞았다. 패전 투수가 됐었다.
-2008년에는 빅리그에서 6승6패를 기록했는데 평균자책점은 별로 안 좋았다.
▶보스턴과 텍사스 전에서 형편없이 두들겨 맞아 평균자책점이 아주 나빠졌다. (16경기 선발로 나섰는데 8이닝 무실점이 있는가하면 5이닝도 못 채운 경기도 6번 있을 정도로 기복이 심했습니다.)
-마이너 기록은 아주 좋다. (47승36패에 평균자책점 3.75와 667이닝에서 717K, 283BB) 그런데 빅리그에 가서는 볼넷이 유독 많았다. (100.1이닝 80K 80BB) 어떤 점이 어려웠나.
▶2007년 첫 게임 때는 그저 즐겁고 흥분되기만 했다. 그런데 2008년에 다시 올라갔을 때는 첫 게임을 잘 던지고 둘째 경기에서 부진하고 나서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 (실제 기록을 보면 세 경기까지는 잘 던지다가 4번째 경기 밀워키전에서 2이닝만에 5실점하고 강판됐습니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정신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고 보나.
▶그건 아니다. 나는 타고나길 느긋하고 늘 웃는 그런 성격이다. 그러나 마운드에 오르면 다르다. 야구를 하려면 강인한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야구를 하면 온갖 일이 발생한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
-2008년 이후로는 빅리그에서 별 기회가 없었다.
▶2009년에는 팀에서 구원 투수로 변신을 원했지만 그건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2010년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했지만 빅리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LG 트윈스와는 어떻게 연결이 됐나.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뛸 때 LG 스카우트가 왔었다.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했고 당초 나는 딱 1년만 한국에서 뛰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와보니 모든 것이 너무 좋았고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웃음)
-왜 한국에 오겠다는 결심을 한 건가.
▶동양이나 한국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겁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고 그리고 숨통을 틔우고 1년 정도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여러가지를 배우고 다시 빅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계속 머물게 됐다.
▶한국 야구의 수준도 높고 아주 즐겁다. 코치들도 잘 대해주고 팬은 정말 좋다. 도미니칸 팬도 대단히 요란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팀이 패하고 있을 때도 한국팬은 똑같이 우리를 성원해준다.
-팬의 질문을 보자. 가장 많은 질문은 내년에도 트윈스 멤버로 뛸 의향이 있나.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물론이다. 안 그럴 이유가 없다. LG가 원하기만 한다면 뛰고 싶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생각은.
▶가끔 TV에서 메이저리그를 보면 나랑 함께 뛰던 친구들이 경기에 나온다. 그러면 정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 야구가 좋다.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결과를 보겠다. 운이 좀 따르지는 않지만 열심히 시즌을 마치고 기다려 보겠다.
-8월 이후 평균자책점이 1점대인데 1승뿐이다. 타선 지원도 약하고 경기에 지고하면 쉽지는 않을 텐데.
▶경기가 끝난 후에는 허탈하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그런 생각이 들 여지가 없고 경기가 끝나도 팀이 승리하면 문제없다. 그러나 팀이 지고나면 기뻐할 일이 없으니 아쉽긴 하다.
-현재의 리즈와 2년전 한국에 오기 전의 리즈는 다른 투수인가.
▶현재의 내가 훨씬 좋은 투수다. 미국에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내가 왜 난타를 당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기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특히 전체적인 제구력이 훨씬 낮아졌다. 아직도 볼넷이 많지만 제구력도 훨씬 좋아졌다. 투구시 습관도 많이 수정했다. 커브와 강속구를 던질 때의 자세가 달랐었다. 내년에는 더욱 좋아질 것으로 나 스스로에게 기대한다.
-팀에서 가장 친한 동료는.
▶모두와 아주 친하다. 농담도 하고 필요할 때는 통역이 도와주고 모두 즐겁게 배운다. 한국어도 좀 배웠다. 음식점에 가면 '저기요, 밥 하나 주세요.'라든가 택시를 타면 '이태원 가세요.'라는 것 등의 간단한 주문이나 요구를 할 수 있다. (웃음)
-외국인 선수 중에는 누구와 친한가.
▶바티스타와는 오랜 친구 사이다. 서울에 원정 오면 함께 식사도 하고 그런다. 미국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지만 대부분 가족이 있다. 주키치도 아주 좋은 친구로 늘 잘 지낸다.
-야구를 하면서 최고의 순간은.
▶2007년 두 번째 거의 노히트를 한 그 경기가 최고였다. 강속구가 정말 잘 들어가 7회까지 슬라이더 하나만 빼고는 계속 강속구를 던졌다. 그리고 특히 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우리는 포스트 시즌 진출이 확정됐다. 내 생애 최초의 포스트 시즌이었고 가장 흥분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노히트 노런보다 조금 더 좋았다. (웃음) 물론 빅리그에 호출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감독이 불러 방으로 갔더니 트리플A에 가서 두 경기만 뛰고 오라고 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동료들이 모두 뒤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감독님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그러더니 내일 메이저리그로 가라고 말해줬고 모두가 난리가 났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려운 질문도 있다. 4연속 볼넷을 준 기억은.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지만 안됐다. 몸보다는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감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때는 마무리로 뛰었는데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선발로 나서면 편안하고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마이너부터 내내 선발로 뛰었기에 그것이 훨씬 편하다. 메이저에서도 구원 투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었다. (처음 심각한 표정이었다.)
<유쾌한 리즈는 인터뷰 동안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자장면을 좋아한다는데 고춧가루를 뿌려 먹어봤나. (웃음) 짬뽕과 무엇이 더 좋은가.
▶(웃음) 물론이다. 고춧가루 뿌려 먹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자장면을 조금 더 좋아하지만 짬뽕을 먹을 때도 많다. 오늘은 인터뷰 끝나면 짬뽕을 먹을 것이다. (웃음)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차돌박이다. 친구나 가족이 없을 때는 혼자 먹으러 가기도 하는데 팬이 사진을 찍어 올린 적이 있다. (웃음) 그날은 삼겹살을 먹은 것 같다.
-가장 매운 한국 음식은 무엇이었나.
▶광주의 김치가 가장 매웠다. 진짜 매웠다. (웃음)
-선호하는 포수가 있나.
▶(고민을 좀 하더니) 특별히 편한 포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타력에 차이는 약간 있지만 수비는 모두 좋다. 누가 포수가 되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야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어디를 가든 야구는 야구다. 한국 야구는 미국 야구와 흡사한 점이 많다. 그런데 한국 선수는 운동장에서 서로 소통을 더 많이 하고 팀워크가 좋은 것 같다. 타격은 정말 좋다. 까다로운 타자가 많고 작전도 많아 아주 힘든 리그다.
-까다로운 타자는 누구인가.
▶작년에는 정말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없다. 이대호 같은 타자는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작년에는 특정 타자를 만나면 같은 패턴으로 던졌지만 올해는 타자마다 다른 패턴으로 던진다. 1번 타자들이나 4번 타자들이 어렵지만 올해는 개의치 않는다. 안타나 홈런은 맞을 수 있다.
-구질은 무엇을 많이 던지나.
▶포심 강속구와 투심 싱커,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는데 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한다. 그립을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캐치볼을 할 때가 아주 중요하다. 여러 가지 그립이나 변화구 등을 많이 훈련한다.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나.
▶그냥 쉬거나 쇼핑을 한다. 요즘은 형들이 와서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편안한 구장이 있나.
▶한화 이글스 구장이 좋다. 작지만 마운드가 마음에 든다. 내겐 마운드가 가장 중요하다. 잠실구장 마운드도 올해 내겐 훨씬 좋아졌다.
-얼마나 더 선수 생활을 하고 싶은가.
▶적어도 7,8년은 더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레다미스 리즈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아니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야구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나의 미래와 나의 가족의 미래와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는, 내게는 너무도 의미가 큰 것이 야구다. 야구는 나의 삶이다.
선한 인상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리즈는 도미니칸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더 열심히 야구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가족 중에 유일하게 프로야구 선수가 됐고 그리고 가적들의 경제를 어느 정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뒤늦게 야구를 시작했고 뛰어난 재능과 강속구로 빠르게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지만 사실 리즈는 아직도 야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만으로 29세 생일이 지나지 않은 리즈에게는 한국에서의 프로 야구 생활이 큰 보탬이 되는 듯합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리즈가 언젠가는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호령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라다메스 코리 리즈가 원래 이름인가.
▶그렇지 않다. (웃음) 나의 원래 이름은 라다메스 리즈 고메스다. 리즈는 아버지, 고메스는 어머니의 성이다. 그런데 미국에 가면서 어떤 이유에선지 코리라는 이름이 중간에 붙었다. 인터넷에는 그렇게 나오지만 원래 내 이름은 아니다.

▶그렇다, 엘 세이바(El Seyba)는 작은 도시다. 그곳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려서 자라기는 시골에서 대부분 자랐다. 5살 때인가에 큰 형이 살던 산 페드로로 가서 살다가 10년여 전에 형이 사망하면서 13세인가에 다시 시골로 갔다. 그리고 16세에 다시 산 페드로로 가서 계속 살았다.
-모두 8남매인가.
▶지금은 그렇다.
-지금은?
▶말했지만 큰 형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지금은 8명이다. 남자 형제 중에는 내가 막내고 여동생이 둘 있다. 원래는 일곱째이다.
-부모님은 시골에 사셨나.
▶어머님은 14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후에 나는 산 페드로로 다시 돌아갔다.
-시골에서 아버지는 농사를 지은신건가.
▶이버지는 일용직으로 힘들게 일하셨다. 사탕수수 밭에서도 일하고 공장에서도 일하시고. 형들도 일을 했고 나도 조금 일을 하고 그랬다. 가난한 집안이었다.
-야구는 언제 시작한 건가.
▶16세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산 페드로로 다시 돌아갔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늦게? 그전에는 야구를 하지 않았나?
▶안 그래도 형이랑 어제 이야기를 했었다. (형 둘이 현재 한국에 와 있습니다.) 페르난도 형(리즈는 형을 조니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이 어려서 내게 낡은 글러브를 주면서 야구를 시작했었다. 형도 야구를 했지만 5년 동안 시도를 했는데 프로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야구를 시작하면서 2년 안에 프로가 되지 못하면 야구를 그만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도미니칸 프로 팀과 계약을 하게 됐다. (웃음)
-그리고 2년 후인가 볼티모어와 계약한다.
▶그렇다. 19세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고 2년간 도미니칸 서머리그에서 뛰다가 2년 후인가에 미국 마이너리그에 데뷔했다.
-대부분 도미니칸 선수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야구를 하는데.
▶아버지가 나는 야구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형은 허락을 했는데. 내겐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어려서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5살 많은 형 조니는 정말 야구를 좋아했다. 16세가 돼서 나는 삶의 결정을 할 나이가 됐고 형이 내게 야구를 권했다.
-처음부터 투수를 했나.
▶형은 3루수였고 내가 유격수가 되길 바랐다. 그렇지만 내 어깨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챘다. (웃음) 그래서 투수로 시작했다.
-투수라는 포지션이 참 어려운데 야구 배운지 2년 만에 빅리그 팀과 계약을 하다니.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야구는 뭔가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고, 늘 배울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2004년에 난 97마일(156km)을 던졌다. 그 리그에서 97마일을 치는 타자는 많지 않았다. (웃음)
-그리고 2005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어는 좀 할 줄 알았나.
▶전혀. (웃음) 처음엔 돈도 없고 해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난 영어를 못하고 그분들은 스패시니를 못하니 참 어려웠다. 음식도 다르고. 그러나 열심히 했고 별 어려움 없이 적응을 했다. 싱글A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더블A에 올라가니 좀 다르긴 했다. 진짜 야구를 하는 느낌.
-그래도 2006년 더블A에서 뛸 때는 올스타전 퓨처스 게임에도 나갔다. 삼진도 아주 많고 또 볼넷도 많았다. 늦게 시작했으니 배우는 과정이 필요했을 듯.
▶그렇다. (스트라이크에서 고개를 끄덕이다 볼넷에서 크게 웃음) 빠른 공을 던지면 때로는 제구를 잡기가 쉽지 않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많지만 구속을 떨어뜨려 제구를 잡으려고 하는데 난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강하게 던지려다 공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노히트 노런 경기도 했다. 더블A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는 수준인데.
▶(즐거운 웃음과 함께)2007년이었다. 더블A는 유망주도 많고 빅리그 수준의 선수도 꽤 많다. 그 경기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든 게 잘 풀렸다. 지금도 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때는 젊었다. 공도 아주 빨랐다. (웃음) 5,6회가 지나면서 노히트인줄 알았고 7회가 지나면서는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아웃은 라인드라이브 타구였는데 도미니칸 친구인 좌익수 루디 존이 기가 막힌 호수비로 잡아냈다. "잡았어? 잡았어?"라고 외치던 생각이 난다. 해리스버그와의 경기였다. (2007년 6월1일)
-삼진은 몇 개를 잡았나.
▶그 경기에서는 10개를 잡았다. 볼넷은 몇 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웃음) 그리고 얼마 후에 또 노히트 노런을 할 뻔 했다.(8월14일 코네티컷 전) 8회에 들어갈 때까지 노히트였다. 그런데 송구 실책이 나왔는데 안타로 기록이 됐고 내가 집중력을 잃은 것 같다. 곧이어 홈런을 맞았다. 결국 그 플레이는 경기 후에 실책으로 수정됐다. 그렇게 노히트를 놓쳤다.
-한 해에 노히트를 두 번이나 할 뻔 하다니. 마이너에서는 100마일도 던졌다는데 그때였나.
▶그 당시는 97~99마일을 계속 던졌다. 평균 96,97마일 정도 됐다. 마이너에서 가장 빠르게 기록된 것은 101마일(162.5km)이었다.
-아버지나 형들도 야구를 했나.
▶아니 아버지는 전혀 아니었고 네 형 중에 조니 말고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조니만 야구를 했는데 거의 프로가 될 뻔도 했지만 3000 달러의 계약금만 주겠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조니와 가브리엘 형이 현재 한국에 와 있는데 내가 야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자 조니형이 자기가 오면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고 큰소리치더라. 그런데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는데도 요즘 야구가 다시 잘 된다. (웃음)
-그리고 2007년에는 메이저리그 데뷔도 했다. 야구를 시작한지 4년만이었다.
▶미네소타와 경기였다. 5회까지 잘 던지다가 6회에 토리 헌터에게 3점 홈런을 맞았다. 패전 투수가 됐었다.
-2008년에는 빅리그에서 6승6패를 기록했는데 평균자책점은 별로 안 좋았다.
▶보스턴과 텍사스 전에서 형편없이 두들겨 맞아 평균자책점이 아주 나빠졌다. (16경기 선발로 나섰는데 8이닝 무실점이 있는가하면 5이닝도 못 채운 경기도 6번 있을 정도로 기복이 심했습니다.)
-마이너 기록은 아주 좋다. (47승36패에 평균자책점 3.75와 667이닝에서 717K, 283BB) 그런데 빅리그에 가서는 볼넷이 유독 많았다. (100.1이닝 80K 80BB) 어떤 점이 어려웠나.
▶2007년 첫 게임 때는 그저 즐겁고 흥분되기만 했다. 그런데 2008년에 다시 올라갔을 때는 첫 게임을 잘 던지고 둘째 경기에서 부진하고 나서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 (실제 기록을 보면 세 경기까지는 잘 던지다가 4번째 경기 밀워키전에서 2이닝만에 5실점하고 강판됐습니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정신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고 보나.
▶그건 아니다. 나는 타고나길 느긋하고 늘 웃는 그런 성격이다. 그러나 마운드에 오르면 다르다. 야구를 하려면 강인한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야구를 하면 온갖 일이 발생한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
-2008년 이후로는 빅리그에서 별 기회가 없었다.
▶2009년에는 팀에서 구원 투수로 변신을 원했지만 그건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2010년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했지만 빅리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LG 트윈스와는 어떻게 연결이 됐나.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뛸 때 LG 스카우트가 왔었다.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했고 당초 나는 딱 1년만 한국에서 뛰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와보니 모든 것이 너무 좋았고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웃음)
-왜 한국에 오겠다는 결심을 한 건가.
▶동양이나 한국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겁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고 그리고 숨통을 틔우고 1년 정도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여러가지를 배우고 다시 빅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계속 머물게 됐다.
▶한국 야구의 수준도 높고 아주 즐겁다. 코치들도 잘 대해주고 팬은 정말 좋다. 도미니칸 팬도 대단히 요란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팀이 패하고 있을 때도 한국팬은 똑같이 우리를 성원해준다.
-팬의 질문을 보자. 가장 많은 질문은 내년에도 트윈스 멤버로 뛸 의향이 있나.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물론이다. 안 그럴 이유가 없다. LG가 원하기만 한다면 뛰고 싶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생각은.
▶가끔 TV에서 메이저리그를 보면 나랑 함께 뛰던 친구들이 경기에 나온다. 그러면 정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 야구가 좋다.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결과를 보겠다. 운이 좀 따르지는 않지만 열심히 시즌을 마치고 기다려 보겠다.
-8월 이후 평균자책점이 1점대인데 1승뿐이다. 타선 지원도 약하고 경기에 지고하면 쉽지는 않을 텐데.
▶경기가 끝난 후에는 허탈하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그런 생각이 들 여지가 없고 경기가 끝나도 팀이 승리하면 문제없다. 그러나 팀이 지고나면 기뻐할 일이 없으니 아쉽긴 하다.
-현재의 리즈와 2년전 한국에 오기 전의 리즈는 다른 투수인가.
▶현재의 내가 훨씬 좋은 투수다. 미국에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내가 왜 난타를 당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기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특히 전체적인 제구력이 훨씬 낮아졌다. 아직도 볼넷이 많지만 제구력도 훨씬 좋아졌다. 투구시 습관도 많이 수정했다. 커브와 강속구를 던질 때의 자세가 달랐었다. 내년에는 더욱 좋아질 것으로 나 스스로에게 기대한다.
-팀에서 가장 친한 동료는.
▶모두와 아주 친하다. 농담도 하고 필요할 때는 통역이 도와주고 모두 즐겁게 배운다. 한국어도 좀 배웠다. 음식점에 가면 '저기요, 밥 하나 주세요.'라든가 택시를 타면 '이태원 가세요.'라는 것 등의 간단한 주문이나 요구를 할 수 있다. (웃음)
-외국인 선수 중에는 누구와 친한가.
▶바티스타와는 오랜 친구 사이다. 서울에 원정 오면 함께 식사도 하고 그런다. 미국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지만 대부분 가족이 있다. 주키치도 아주 좋은 친구로 늘 잘 지낸다.
-야구를 하면서 최고의 순간은.
▶2007년 두 번째 거의 노히트를 한 그 경기가 최고였다. 강속구가 정말 잘 들어가 7회까지 슬라이더 하나만 빼고는 계속 강속구를 던졌다. 그리고 특히 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우리는 포스트 시즌 진출이 확정됐다. 내 생애 최초의 포스트 시즌이었고 가장 흥분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노히트 노런보다 조금 더 좋았다. (웃음) 물론 빅리그에 호출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감독이 불러 방으로 갔더니 트리플A에 가서 두 경기만 뛰고 오라고 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동료들이 모두 뒤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감독님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그러더니 내일 메이저리그로 가라고 말해줬고 모두가 난리가 났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려운 질문도 있다. 4연속 볼넷을 준 기억은.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지만 안됐다. 몸보다는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감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때는 마무리로 뛰었는데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선발로 나서면 편안하고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마이너부터 내내 선발로 뛰었기에 그것이 훨씬 편하다. 메이저에서도 구원 투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었다. (처음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장면을 좋아한다는데 고춧가루를 뿌려 먹어봤나. (웃음) 짬뽕과 무엇이 더 좋은가.
▶(웃음) 물론이다. 고춧가루 뿌려 먹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자장면을 조금 더 좋아하지만 짬뽕을 먹을 때도 많다. 오늘은 인터뷰 끝나면 짬뽕을 먹을 것이다. (웃음)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차돌박이다. 친구나 가족이 없을 때는 혼자 먹으러 가기도 하는데 팬이 사진을 찍어 올린 적이 있다. (웃음) 그날은 삼겹살을 먹은 것 같다.
-가장 매운 한국 음식은 무엇이었나.
▶광주의 김치가 가장 매웠다. 진짜 매웠다. (웃음)
-선호하는 포수가 있나.
▶(고민을 좀 하더니) 특별히 편한 포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타력에 차이는 약간 있지만 수비는 모두 좋다. 누가 포수가 되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야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어디를 가든 야구는 야구다. 한국 야구는 미국 야구와 흡사한 점이 많다. 그런데 한국 선수는 운동장에서 서로 소통을 더 많이 하고 팀워크가 좋은 것 같다. 타격은 정말 좋다. 까다로운 타자가 많고 작전도 많아 아주 힘든 리그다.
-까다로운 타자는 누구인가.
▶작년에는 정말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없다. 이대호 같은 타자는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작년에는 특정 타자를 만나면 같은 패턴으로 던졌지만 올해는 타자마다 다른 패턴으로 던진다. 1번 타자들이나 4번 타자들이 어렵지만 올해는 개의치 않는다. 안타나 홈런은 맞을 수 있다.
-구질은 무엇을 많이 던지나.
▶포심 강속구와 투심 싱커,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는데 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한다. 그립을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캐치볼을 할 때가 아주 중요하다. 여러 가지 그립이나 변화구 등을 많이 훈련한다.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나.
▶그냥 쉬거나 쇼핑을 한다. 요즘은 형들이 와서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편안한 구장이 있나.
▶한화 이글스 구장이 좋다. 작지만 마운드가 마음에 든다. 내겐 마운드가 가장 중요하다. 잠실구장 마운드도 올해 내겐 훨씬 좋아졌다.
-얼마나 더 선수 생활을 하고 싶은가.
▶적어도 7,8년은 더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레다미스 리즈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아니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야구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나의 미래와 나의 가족의 미래와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는, 내게는 너무도 의미가 큰 것이 야구다. 야구는 나의 삶이다.
선한 인상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리즈는 도미니칸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더 열심히 야구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가족 중에 유일하게 프로야구 선수가 됐고 그리고 가적들의 경제를 어느 정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뒤늦게 야구를 시작했고 뛰어난 재능과 강속구로 빠르게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지만 사실 리즈는 아직도 야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만으로 29세 생일이 지나지 않은 리즈에게는 한국에서의 프로 야구 생활이 큰 보탬이 되는 듯합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리즈가 언젠가는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호령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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