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있는 대책도 없애는 대책 없는 K리그

조회수 2013. 7. 20. 07: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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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프로축구연맹이 난데없이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징계를 경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마침 기성용의 'SNS논란'으로 축구계가 시끌벅적했던 때고 축구협회가 특별한 징계 없이 '엄중경고'라는 표현으로 용서를 내린 직후라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흘렀다. 프로연맹은 "보호관찰 기간 동안 본인이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봉사활동 이행 현황과 교화의 진정성을 검증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승부조작에 가담한 이가 자기 자신에게 내린 평가를 토대로 '용서'하겠다는 뜻이었다.

7월말 예정된 대한축구협회 이사회가 프로연맹의 결정을 받아들여 '제명'이라는 봉인이 풀리면 필드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K리그에서도 뛸 수 있다. 승부조작 때문에 축구계 전체가 호되게 앓았던 것이 2011년 여름이다. 불과 2년이 지났다.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에 우리 사회가 그리도 관대 했던가 잠시 갸웃하게 하는 결정이다.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누군가를 용서하자는 제안을 향해 무슨 소리냐 외치는 꼴이니 편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실수'를 바라보는 눈과 '죄'를 바라보는 눈은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스승에게 반항했던 이천수나 스승을 조롱했던 기성용의 철없는 행동 등이 '실수'다. 하지만 승부를 조작한 것은 '범죄'다. 예도 있다.

의정부지법은 지난18일, 강동희 전 원주동부 프로농구단 감독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4,700만원을 구형했다. 강 전 감독은 지난2011년 브로커들에게 4차례에 걸쳐 4,700만원을 받고 모두 4경기에 주전이 아닌 후보 선수들을 기용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사건을 바라보던 법의 눈은 '범죄'라는 판단을 내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의정부지법의 '집행' 일주일 전에 프로축구연맹이'용서'를 내린 이들도 결국 범죄자인 셈이다.

축구팬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독심술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6일 전북과 대전의K리그 클래식 경기가 열린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팬들의 명확한 뜻이 포착됐다. 플래카드를 제작한 이들이 대전시티즌 팬들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승부조작에 연루됐던 대전 선수는 드러난 이들만 무려 8명이었다. '체포' '영장' '구속' '기소'등 축구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과 함께 가장 많이 비통함을 느껴야했던 대전 팬들이 들어 올린'반대' 걸개는 과연 프로축구연맹의 결정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승부조작 사건의 피해자는 분명 축구팬들이다. 앞에서는'축구장의 주인은 팬'들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뒤에서 그 주인의 돈을 갈취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운 사건이다. 그들 때문에 피해를 받은 당사자가 여전히 괴롭고 아파 용서할 힘이 없는데, 넓은 의미에서 함께 벌을 받아야할 축구계가 나서서 용서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프로연맹의 용서 결정이 나오고 며칠 뒤 한 축구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다. 그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말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움직임'이 있었던 것을 알았던 까닭이다.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해 징계를 받았던 모 선수가 몇 달 전부터 공공연하게 몸을 만들고 있었다. 한 K리그 클래식 구단으로부터의 영입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다른 선수들에게 신나게 떠들면서(복귀)준비를 하고 있더라. 모든 상황이 괘씸했다"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결국 '봉인이 해제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 축구인은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현재 K리그에 그토록 선수가 없는 것인지, 이 나라의 청년실업을 그토록 걱정하는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며 성토했다.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징계경감은 프로연맹 이사회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이사회 구성원 중에는 일부 K리그 구단의 단장 혹은 사장도 포함돼 있다. 자신들도 뒤에서는 팬들 모르게 딴짓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니, '결국은 한통속'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지금 지적을 받아야할 대상은 징계가 경감되는 선수들이 아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은, 그저 족쇄를 풀어준다니 고마울 뿐이다. 어이가 없는 집단은 프로축구연맹이다. 과연 해야 할 일들은 제대로 하면서 관용과 도량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프로연맹 측은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선수들은 축구밖에 몰랐던 이들이다. 그들을 더 방치하면 생활고에 시달려 재기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팬들에게 호소했다. 말하고도 아차 싶었을 것이다. 진짜 축구밖에 몰랐던 이들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축구판을 지킨 이들이다. 눈을 질끈 감고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맨 이들이 진짜 축구밖에 몰랐던 이들이다. '이정도 쯤이야'라 여긴 이들이 왜 미화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생활고 운운도 조심스럽다. 진짜 축구밖에 모르지만 가진 재주가 다소 부족해서, 혹은 불의의 부상으로 뜻을 펼치지 못한 이들까지도 과연 '천사표' 프로축구연맹이 신경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용서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대책은 있냐는 것이다. 죄를 지은 이들을 교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리그를 꾸려가는 프로연맹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범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재발방지책이 있냐는 지적이다.

승부조작 사건은 결국 불법 스포츠도박에 선수들이 연루돼 발생한 일이다.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나 불법도박이 근절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2013년의 K리그 경기장에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았다는 제보가 심심치 않다. '의심스러운 이들'이란 경기 내내 핸드폰을 들고서 장시간 통화하는 이들을 말한다. 경기 상황을 전화로 중계하는 '알바생'들로, 아직까지 불법 스포츠도박이 성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증도 나왔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16일 "지난5월4일 Daum챌린저스리그 8라운드 경기 도중 김포공설운동장과 강북시민운동장에서 적발된 외국 국적의 유학생의 불법 도박사이트 전화 중계행위와 관련된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이송됐음을 공지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손이 아직 축구판에 있다는 뜻이다. 이는 또 다시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선수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혹은 이미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 고름이 터질 때도 악마의 손길은 3부리그와 2부리그를 거쳐1부리그로 올라왔다.

이렇듯 여전히 판치고 있는 불법 스포츠도박을 K리그에서 뿌리 뽑기 위해 프로축구연맹은 어떤 노력을 펼쳐왔는지 궁금하다. '축구밖에 몰라서' 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대책은 마련했는지 묻고 싶다. 봉인해제 이전, 팬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과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이 먼저였다.

전 국민에서 혼났던 기성용의 'SNS논란'을 지켜본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예SNS를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화들짝 놀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숫제 축구판을 떠나야한다는 중징계를 내린 것은 재발을 방지케 하는 좋은 대책이었다. 있는 대책도 스스로 없애버렸으니, 참 대책이 없다.

자신이 응원하던 선수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진저리치며 축구장을 등진 팬들도 있고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것을 괴로워하다 세상을 등진 선수도 있다.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선수들의 앞길을 막지 말자는 좋은 취지가 좋게 보일 리 없는 지금의 용서는,무모했다.

사진제공=스포츠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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