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원과 네모] 올림픽 뒷이야기 '뻥축구로 딴 동메달'

조회수 2012. 8. 16. 11: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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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이 끝났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만족스러운 올림픽이었다. 다만 석연치 않은 판정이 속출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 와중에 드러난 우리 스포츠 외교력의 한계도 뼈아팠다. 오죽했으면 대한체육회를 향해 "아는 것도, 하는 것도, 되는 것도, 하려는 의욕도 없다"며 4무(無) 조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을까. 런던올림픽을 지켜본 소감을 적어본다. 요즘 올림픽을 결산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디, 스포츠 팬 여러분이 단 한 가지라도 새롭게 발견한 내용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허를 찌르는 뻥 축구로 딴 축구 동메달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 오해하시 마시길 바란다. 모든 전투에서 불문율로 받아들여지는 철칙이 있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명보 감독이 일본을 꺾기 위해 뽑아든 전술이 그랬다. 우리는 롱 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유는 확실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게 미드필더진 패스워크다. 그걸 하지 못하게 원천적으로 틀어막는 게 롱 볼이었다. 수비진에서 공격진으로 길게 내차니 일본은 자기 무기를 쓸 겨를도 없었다. 일본 선수들이 "공을 내차는 한국에게 당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뻥 축구도 전술이다. 게다가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는 내용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특히 3·4위전은 그랬다.  

■손연재, 혼자 벌고 혼자 고생해서 거둔 5위

손연재는 좋아하는 팬 못지 않게 싫어하는 팬도 적잖다. 안티팬들은 "국제대회에서 최고 성적도 거두지 못했는데 외모를 이용해 광고를 찍는 등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손연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나름대로 있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IB 스포츠 관계자에 따르면 손연재가 러시아에서 훈련하는데 1년에 수억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그런데 체조연맹에서 나오는 돈은 조족지혈이다. 손연재는 고등학생이라 돈을 받을 데도 없다. 결국 광고를 찍어서 번 돈으로 수업료를 냈다. 그러면서도 손연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훈련 뿐"이었다. IB스포츠도 손연재가 광고를 찍을 때마다 쏠쏠한 수입을 남겼다. 과도하게 광고를 찍었다는 비판은 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광고 출연도 손연재와 IB스포츠가 합의했기 때문에 이뤄졌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체조 양학선, 모두를 겸손하게 만들다

양학선은 된장녀가 보기에는 루저다. 키도 작고 돈도 없다. 그런데 그가 체조역사를 새로 썼다. 그것도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가 개발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기술로 말이다. 양학선이 금메달을 땄을 때 '저렴한' 라면공세를 한 농심은 팬들에게 된서리를 맞았다. 그런데 양학선에게 5억원을 내놓은 LG는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LG는 아마추어 종목을 거의 후원하지 않는다. GS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런데 삼성, SK, 한화, KT,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은 한다.

■양궁, '한국'에게 지든 이기든 승자는 '한국'이다

양궁은 금메달 3개를 따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빼앗겼을 때 흥분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 4강에 오른 4개 팀 감독이 모두 한국인이었고 우리는 동메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이 한국에게 졌다" "부메랑에 당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단기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흐뭇해야할 일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해외로 나가서 해외대표팀을 이끌면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그건 결국 우리 자신을 더욱 노력하게 만든다. 세계 양궁 수준이 우리 지도자들 덕분에 상향평준화됐다. 그걸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더 분발해야하지 않나.

■여자배구와 여자 핸드볼, 세계 벽을 넘지 못한 이유

배구, 핸드볼이 거둔 4강은 대단했다. 4강을 이룬 선수들의 투혼을 폄하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프로리그가 튼튼하지 않는 종목이 세계 정상에 올라서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전 세계 많은 나라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체계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훈련을 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금메달감이다. 그러나 우리 열악한 리그 사정과 환경을 감안하면 세계 4위의 성적은 과분한 게 아닌가.

■유도,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일본

유도가 이상하게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유는 일본이 다른 격투기에서 비롯된 '유도답지 않은' 기술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처음 공격할 때에 한해서, 손으로 하체를 공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일본의 의도는 손으로 상체를 공격하고, 다리로 하체를 공격하게 유도해 전통적인 유도다움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기술을 구사하기 힘들어졌고 그 결과로 한판승이 크게 줄었다. 요즘 올림픽 스포츠는 중계권료로 먹고 산다. 유도가 재미없어지면 중계권을 사려는 나라들도 줄어든다.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유도는 부진했다. 설상가상으로 재미없어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일본의 고민만 깊어졌다.

■태권도, 퇴출되지 않는다고 안일해서는 안 된다

태권도는 재미가 생겼다. 머리 공격에 높은 점수를 줬고 전자호구제가 도입되면서 판정시비도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출 위기에서 많이 벗어난 분위기다. 게다가 우리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한 개 밖에 따내지 않은 것도 어쨌든 올림픽에서 태권도 생명을 오래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권도를 하는 나라가 200개국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어디 있는지 모르는 섬나라도, 인구가 얼마 안 되는 소국도 있다. 그리고 전 세계 장애인들이 단증을 따고 기쁨에 겨운 눈물을 펑펑 쏟는 게 태권도다. 이런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사라지면 수많은 소국들의 꿈도 함께 사라진다. IOC가 태권도를 웬만해서는 올림픽 종목에서 뺄 수 없는 이유다. 상황이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전자 호구의 정확성을 높이고 더 높은 기술을 연마해야한다. 또 해외로 우리 지도자들을 더 많이 파견하고 그들에 대한 종주국 차원의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태권도가 재미가 있다면 태권도는 올림픽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런던올림픽 최고 공로상 수상자는 브루넬 대학교

우리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브루넬 대학교에 우리 선수들 전용 훈련장을 마련했다. 이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과거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훈련장소와 훈련시간을 모두 대회조직위원회가 정해줬다. 거리가 멀어도 가야했다. 그리고 몸이 풀리지 않은 아침에 훈련시간이 잡혀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도 훈련을 해야했기 때문에 우리가 훈련을 오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경기시간에 맞춰 몸을 조절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또 하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과거에는 훈련장 출입도 ID 카드가 있는 사람만 가능했다. ID 카드는 국가별로, 종목별로 제한적으로 발급된다. 즉 훈련파트너, 치료사, 트레이너 등은 ID 카드가 없어 경기장은커녕 훈련장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우리는 마음대로 드나들고 우리 편할 때 쓸 수 있는 훈련장이 있었다. 그리고 먹을 것도 마음대로 만들어 먹었다. 게다가 앞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메달을 걸고 브루넬 대학교 훈련장을 돌아다닌 모습은 경기를 앞둔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브루넬 대학교를 빌리기 위해 쓴 10억원이 오히려 싸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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