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딱 한명이라도 억울한 선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조회수 2013. 8. 18. 18: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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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온정주의라는 비판 속에 모두 버려야 할까, 개별적으로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따져 소수라고 구제해야할까. 

대한축구협회가 19일 이사회를 열고 프로축구연맹이 승부조작 가담자에 대해 징계경감을 요구한 사안을 검토한다. 협회가 승인해주면 선수들의 복귀길이 열릴 수 있고 협회가 거부하면 복귀길은 무산된다. 

승부조작은 스포츠가 가진 생명과 존재가치를 부인하는 중차대한 범죄행위와 같다. 그래서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최종적으로 판명된 선수들에게 복귀의 길을 열어줘서는 안 된다는 게 현재 중론이다. 필자도 물론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볼게 있다. 만의 하나,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 모든 일에는 억울한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거론돼 징계를 받는 선수들 중에도 그런 케이스는, 비록 소수지만,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도 죗값이 무거운 다른 선수들과 함께 승부조작 가담자로 낙인찍어야 할까. 그들의 상황을 개별적으로 면밀하게 따져 징계경감을 검토해보는 건 안 될까. 

승부조작과 관련된 사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몇 가지를 미리 숙지해야한다. 

우선 자진신고자에 대한 이해다. 연맹은 2년 전 승부조작으로 큰 혼란이 벌어졌을 때 자진신고를 받았다.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선수들에게 이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하면 승부조작의 뿌리를 조금 더 깊에 파헤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였다. 그렇게 해서 33명이 자진신고를 했고 25명은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후 자신 신고했든 하지 않았든, 이들 중 2명을 제외한 56명이 똑같은 징계를 받았다. 선수자격 영구박탈 및 직무자격 영구상실이었다. 그런데 연맹은 자진신고를 해서 수사에 협조한 선수 33명에게는 조건을 달았다. 그게 바로 보호관찰과 사회봉사였다. 33명은 2년·3년·5년 보호관찰, 200~50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함께 받았다. 적당한 시점에 어떤 식으로든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었다. 

2년, 3년, 5년 징계는 기준이 있었다. 2년은 승부조작 단순 가담·가담 경기수 1경기·수수금액 700만원 이하다. 3년은 단순가담·가담 경기수 1~2경기·수수금액 700만원~2000만원 이하다. 5년은 적극 가담·주동 또는 설득·가담 경기수 2경기 이상·수수 금액 2000만원 이상이다. 권집, 최성국, 염동균 등이 5년 짜리이며 성경일, 이상홍, 윤여산 등이 3년짜리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게 두 가지가 있다. 2년 보호관찰기간 징계를 받은 선수들은 이미 선수로 복귀했다는 점이다.지금 뛰는 선수도 있고 또 다시 방출된 선수도 있다. 다음은 2012년 10월29일 연맹 발표내용이다.

"승부조작 영구제명 징계선수 중 일부 선수의 징계가 경감됐다. 영구제명과 보호관찰 및 봉사활동 이행의 징계를 받은 선수 가운데 보호관찰 기간이 50% 이상 경과한 대상자 8명 중 봉사활동을 50% 이상 성실히 이행하고, 단순 가담한 7명(박창헌 안현식 양승원 오주현 조형익 이세주 천제훈)의 보호관찰 기간을 기존 2년에서 1년 6개월로 6개월 경감하고 2013년 2월 영구제명 징계를 해제하기로 했다. 법원으로부터 승부조작 무죄 판결을 받아 연맹의 징계(영구제명·보호관찰 3년·봉사활동 300시간)에 대해 재심의를 요청한 이정호, 홍성요, 김응진은 금품 수수만 적용되어 출장정지 1년 6개월로 징계가 경감됐고, 2013년 2월에 징계가 해제된다." 

물론 이것은 대한축구협회 징계위원회를 통과해 최종 확정됐다.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어쨌든 상벌관련 규정에 따른 결정이었다. 협회 규정에 징계기간이 절반이 지나면 경감 또는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팬들의 정서가 아니라, 만일 규정에만 따른다면, 이들이 징계를 받은 지 2년 안팎이 지났기 때문에 3년짜리는 징계경감 또는 해제를 논의하는데 최소한 '규정상' 문제는 없다. 그러나 5년짜리는 규정에 따라서도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염두해야 할 부분은 자진신고를 한 선수들과 자진신고를 하지 않는 선수 중 누가 더 깊숙하게 승부조작에 관여했냐는 점이다. 그것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신고를 한 선수들이다. 즉, 자진신고를 한 선수들은 더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연맹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겠다고 당초에 약속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진 신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하지 않았거나, 구속 수사 중이라 할 수 없었던 선수들은 자진신고를 한 선수들에 비해 가담 정도가 미비해도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선수들이다.이 선수들에게 내려진 징계도 선수자격 영구박탈 및 직무자격 영구상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자진 신고한 선수들과는 달리 보호관찰기간, 사회봉사가 없었다. 연맹은 이런 선수들에 대해서도 징계경감을 협회에 요구했다. 다음은 지난달 연맹이 이사회를 마친 뒤 발표한 내용이다.

A, 보호관찰기간 경감 대상 : 박정혜, 어경준, 박병규, 성경일, 윤여산, 김인호, 안성민, 이상덕, 김바우, 이상홍, 김형호, 박지용, 황지윤, 백승민, 권집, 최성국, 장남석, 염동균

B. 영구자격박탈→보호관찰 대상 : 이훈, 김수연, 김범수, 이중원, 이명철

C. 승부조작 무혐의 판결에 따른 징계 조정 대상(영구자격박탈→자격정지 2년) : 김지혁, 박상철, 임인성, 주광윤 

A는 자진신고를 한 뒤 3년 또는 5년 보호관찰기간을 받은 선수들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 추가 설명은 하지 않는다. 반면 B, C 그룹은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선수들이다.

B는 당초 영구자격박탈에서 보호관찰(1년) 대상으로 경감된 선수 명단이다. 이들은 금품을 수수했고 승부조작에 경미하나마 가담한 선수들이다. 만일 축구협회가 19일 이 안건을 승인하면 이들 5명은 앞으로 1년 동안 보호관찰기간을 보낸 뒤 내년 8월쯤 선수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C는 상대적으로 가장 죗값이 가벼운 선수들이다. 이들은 돈은 받았지만 승부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다. 그래서 당초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자격발탁이라는 징계가 내려진 게 승부조작 무혐의 판결에 따라 금품수수에만 해당되는 자격정지 2년으로 징계가 준 것이다. 이들은 축구협회 이사회가 징계경감을 승인하면 곧바로 징계가 해제돼 선수로 복귀할 수 있다. 법원 최종 판결 결과, 승부조작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에 자격정지 2년을 소급 적용시키겠다는 의미다.

다음에 나온 ㄱ, ㄴ, ㄷ선수들은 B,C 그룹에 속한 선수들의 경우다. 이름은 밝히지 않고 사연과 재판결과만 적는다. 물론 당사자의 주장인 만큼 다 믿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ㄱ 선수 : 1경기 승부조작에 단순 가담한 혐의다. 당시 신인으로 그 경기가 공교롭게도 프로 데뷔전이었다. 부모님도 관전했다. 승부조작에 대한 이야기는 사전에 들었지만 ㄱ 선수는 경기를 제대로 뛰었다고 했다. 돈은 200만원을, 그것도 한 달 뒤에 받았다. ㄱ 선수는 승부조작에 따른 돈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물론 이게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법원 최종판결은 벌금 300만원이다. 자진신고를 못한 이유는 연맹이 자진신고를 받겠다고 공포했을 무렵, ㄱ 선수는 구속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ㄴ 선수 : 경기 전날 밤 팀 동료 선배가 방으로 찾아와 승부조작을 제의하고는 100만원을 두고 갔다. 그런데 ㄴ 선수는 다음날 경기에 결장했다. ㄴ 선수는 경기 당일 오전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한다. 물론 받은 선수는 받지 못했다고 맞서고 있다. 그 후 ㄴ 선수는 J2로 갔다. 일본에서 자진신고에 대한 기사는 봤지만 돈을 돌려줬고 게임도 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자진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ㄴ 선수는 자조지종을 다 설명했지만 기소됐다. 항소를 하려고 했지만 가정형편도 어렵고 해서 포기했다. 법윈 최종판결은 벌금 300만원이다.

ㄷ 선수 : 후배가 승부조작한 대가로 돈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무섭다고 같이 가달라고 했다. 그래서 ㄷ 선수는 함께 갔다. 그게 승부조작을 모의했다는 식으로 해석돼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받았다. 연맹 관계자는 "죄질은 가벼운데 ㄷ 수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면서 "당시 가담자는 엄벌에 처해야하는 분위기가 고조돼 법원 판결이 높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같은 팀에서 뛴 선수 몇몇은 "ㄷ 선수는 정말 억울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ㄱ,ㄴ,ㄷ 선수는 어쨌든 자진신고를 했다면 2년짜리로 분류돼 이미 풀렸을 것이다. 필자도 승부를 조작한 선수들에게 온정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중 딱 한명이라도 억울한 선수가 있다면, 그리고 법원으로부터 최소한 승부조작에 대해서 무혐의로 판정받은 선수가 있다면, 그들에 대한 상황과 정보 등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협회가 이들에 대한 징계경감을 곧바로 결정하지 못해도, 최소한 논의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승부조작은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억울한 선수가 생겨서는 안 되며 만의 하나 그런 케이스가 있다면 뒤늦게나마 실추된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해줘야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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