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린 농구계..루게릭병 박승일 "잡상인 취급까지.."

서민교 기자 2010. 2. 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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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기 살기 바쁘니까요."눈물샘을 자극하는 미세한 떨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유일한 눈의 움직임. 글자판을 따라 힘겹게 한 문장의 글이 완성됐다. 간절했다. 루게릭병으로 7년째 투병 중인 박승일(39) 전 코치.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짧지만 강렬했다.

운명은 기구했다. 연세대와 기아자동차에서 농구선수 생활을 했던 박승일 씨는 지난 1996년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꿈을 품고 4년 만에 고집스럽게 미국 유타주 BYU대학으로 농구 유학을 떠났다.

문경은(SK), 이상민(삼성)과 함께 뛰었던 선수시절. 그는 화려한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도자의 꿈을 안고 떠난 유학 생활 2년 만에 다시 코트 위로 복귀했다. 당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감독이었던 최희암 전 감독의 메일 한 통. 그는 2002년 최연소 프로 코치라는 명예를 안고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코트 위 삶은 짧았다. 모비스와 코치 계약을 하던 그날.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신체검사 결과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것. 천청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4개월 만에 코치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2003년 루게릭병 발병 후 그의 몸은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부터 시작한 마비 증세는 그를 더 이상 온전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발병 후 그가 먼저 찾아간 곳은 농구팀 관계자들과 선후배들이었다. 하지만 예전의 따뜻한 시선은 없었다. 그들과 다른 그의 모습에 돌아온 것은 차갑고 따가운 시선뿐이었다.

박 씨의 어머니 선복순(69) 씨는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승일이에게는 그때가 가장 슬펐던 순간이에요. 죽을 용기를 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잡상인 취급을 받고 온 거였죠.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요. 다 자기 살기 바쁘니까…." 애써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씨가 찾아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가 7년이라는 세월동안 처절한 삶과 투쟁을 하면서 지켜온 자신과의 약속.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요양소 건립에 대한 목표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농구만 생각하며 자신이 몸담았던 그곳에서 홍보를 위해 도와줄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을 안고 힘겨운 첫 걸음을 뗀 그의 발걸음. 하지만 등을 돌린 농구계는 온 몸에 퍼지고 있던 전신 마비의 무게보다 몇 배는 무거운 고통이었다.

그는 지금도 한 평짜리 침대에 몸을 의지한 채 농구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 온 몸은 마비돼 이제는 눈과 귀, 그리고 기억만 뚜렷한 채.

그가 유독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경기는 SK와 KT & G, 모비스, 삼성의 경기다. 모비스와 KT & G는 유재학 감독과 이상범 감독 때문에, 그리고 SK와 삼성은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유일한 구단이기 때문이다.

SK는 4년 전부터 꾸준히 수백만 원씩 후원을 하고 있고, 모비스는 그의 발병 직후 1년간 후원, 삼성은 2006년 4강 플레이오프 홈경기 입장 수익 전액을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SK를 제외하고 모두 일회성에 그쳤다.

지난해 오랫동안 그를 취재한 이규연 기자와 박 씨가 4년간 주고받은 50여 통의 이메일과 그를 지켜본 가족과 주변인 20여 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쓰인 '눈으로 희망을 쓰다'가 출간된데 이어 SBS 스페셜 '승일 스토리-나는 산다'에서 박 씨의 322일 간의 사투가 다시 한 번 공개됐다.

그의 7년 세월을 보여준 처절한 삶과의 투쟁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작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뻗은 곳은 농구계가 아닌 연예계였다.

이 책을 읽은 가수 션 씨가 현금 1억 원을 루게릭병 환자 요양소 건립에 써달라고 기탁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가수 타이거 JK 역시 박승일 씨를 위한 콘서트 기금, 티셔츠와 수건 판매 및 UCC를 직접 제작해 꾸준히 후원을 하고 있다.

올 시즌 프로농구 구단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LG와 모비스는 소속 구단 선수들의 경매를 통해 수익금을 전달하는 의미 있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박 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턱 없이 부족한 예산.

7년 이라는 세월동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루게릭병을 알리고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환우들을 위해 처절한 삶과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박승일 씨. 그의 안타까운 눈물 한 방울의 호소는 아직 농구계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어렵게 발걸음을 떼는 기자를 향해 글자판에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쓰며 흔들리는 시선을 힘겹게 고정했다.

"기자님, 사명감을 갖고 농구단에 홍보를 부탁합니다."# 사진 문복주 기자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0-02-08 서민교 기자( 11coolguy@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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