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한테 그러죠, '너희 그러다가 나처럼 된다'"

2013. 5. 2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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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사령탑 돌풍 일으키는 넥센 염경엽 감독

초보 사령탑 돌풍 일으키는 넥센 염경엽 감독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초보 사령탑' 염경엽(45) 넥센 감독의 돌풍이 프로야구판에 거침없이 몰아치고 있다.

염 감독이 이끄는 넥센은 27일 현재 27승13패로 삼성을 반 경기 차이로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에도 넥센이 잠시 1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당시보다 훨씬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해 정말 무서운 팀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평가다.

그 중심에는 염경엽 감독이 있다.

선수로서 전혀 빛을 보지 못한 데다 지도자로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염 감독이 지난해 넥센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되자 많은 이들은 의구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염 감독이 보여준 지략과 선수 육성 솜씨, 소통 능력 등은 "김성근, 김시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장점을 닮겠다"던 취임 일성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는 듯하다.

24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염 감독은 선수 시절 화려하게 꽃피우지 못하고 후보로 밀려난 경험이 늘 연구하고 생각하는 '지도자 염경엽'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자신처럼 선수로서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어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속 편히 했던 선수 생활…위기 맞고서야 '진짜 노력' 뭔지 깨달아

잘 알려진 대로 염 감독은 '1할 타자'였다. 박진만(SK)에 밀려 후보로 밀린 뒤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염 감독은 "선수 시절 노력 없이 쉽게 많은 것을 얻어서 야구를 쉽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 그냥 재미로 야구를 했어요. 4학년이던 어느날 후배들과 잠실에서 LG와 해태의 경기를 봤는데, 프로야구란 게 정말 멋있더라고요. 그제야 프로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1년 반짝 해서 프로에 지명받았고, 겨울에 조금 열심히 하니 바로 주전이 됐죠. 모든 것을 이렇게 쉽게 얻었어요. 즐길 것을 다 즐기면서 하다 보니 여름엔 체력이 떨어져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야구를 했어요.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죠."

후보로 밀리자마자 포기하고 유학도 할 겸 캐나다 이민을 신청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선수 생활을 더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받아들였다는 염 감독은 '그러면 노력을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열심히 해도 좋아지는 것은 없었다. 대신에 그 과정에서 야구를 보는 새로운 눈이 열렸다.

"1년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안좋은 폼으로 배트만 돌려댔으니 성과가 없었죠. 시험 공부를 하는데 엉뚱한 범위를 본 셈입니다. 제대로 된 계획과 방향을 설정하고, 생각을 하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염 감독은 '주전으로는 1등을 못했지만 백업으로서는 8개 구단에서 1등을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고는 새로운 노력을 시작했다. 선수의 습관을 잡아내는 예리한 눈도 그때 길렀다.

"대주자로 나가서 살기 위해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상대의 습관도 보기 시작한 거죠. 3년을 보니 그 눈이 생기더군요. 5년이 넘어가자 눈이 컴퓨터처럼 움직여서 저도 모르게 그런 포인트를 보고 있더라고요. 노력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저 자신을 보고 느꼈어요."

◇ 꼼꼼한 성격과 결합…인정받는 '재야의 지도자'로

염 감독이 깨우친 '새로운 길'은 원래 가지고 있던 치밀한 성격과도 꼭 들어맞았다.

"가장 가까운 아내가 '꼼꼼하고 예민하다'고 하니 원래 성격이 그런 거겠지요? 절대로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여행을 간다고 하면 저 혼자 움직이죠. 한 달 전에 계획을 미리 다 짜 놓든다든지 말예요. 생활에 있어서도 미리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잡아 두곤 합니다."

선수 생활이 황혼에 다다랐을 때 제2의 인생을 명확히 설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성격 덕분이었을 것이다.

염 감독은 "선수로서는 한 번 기회를 잃은 만큼 다시 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면서 "제2의 인생 목표를 코치로 잡고 '어떤 사람보다도 인정받는 코치가 되자'는 생각으로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하고 생각하며 적어둔 메모가 서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쌓인 노력은 그를 '고유의 콘텐츠'를 가진 인정받는 재야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백업으로서 살아남으려 만들기 시작한 제 노하우들이죠. 야구를 절대로 그냥 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플레이가 나왔을 때, 어떻게 보완하면 상대를 괴롭히고 무너뜨릴 전략이 나올지를 거듭 생각했어요. 기존의 플레이에 새로운 방법을 더한 것이 코치를 하면서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변형해서 사용하는 것, 이게 저만의 것이죠. 남들에게 없는 저만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장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탄성 불러일으키는 '꾀주머니'…친정팀 넥센 만나 시너지 효과

이렇게 쌓인 자신만의 콘텐츠로 염 감독은 올해 허를 찌르는 신묘한 작전과, 철저한 계획 하에 팀을 운영하는 안정감을 동시에 선보이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야구인들의 탄성을 불러일으킨 작전으로는 23일 잠실 두산전 11회말 1사 1, 3루에서 1루 주자 오재원이 안심하고 2루로 뛰도록 유도해 잡아내려 한 '덫 수비'가 꼽힌다.

이 일을 화제에 올리자 한참 동안 그 상황에 맞아떨어진 조건들을 두루 설명한 염 감독은 "하지만 잡았어야 하는 건데…"라고 아쉬워하면서도 "올 시즌에 다 보여주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작전들이 몇 개 더 있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흔히 '무한 경쟁'을 외치게 마련인 스프링캠프 기간에 선수들의 보직을 미리 정해 준비시키거나, 타 팀보다 많은 휴식을 주는 등 염 감독은 시즌 운영에 있어서는 철저한 계획 아래 자신만의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런 방식이 가능한 배경으로 자신이 백업 선수 출신이었다는 점과 오랫동안 친정팀에서 호흡해 신뢰를 쌓아 왔다는 점을 들었다.

"어떤 선수가 주전으로 뛰기 싫겠습니까. 백업 선수에게는 그 이유와 1년간의 활용 계획을 다 얘기하고 이해시켰죠. 저도 백업을 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 그래서 더 고맙죠. 얼마나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희생하는지 분명히 인정해 줍니다. 휴식을 많이 주는 것도 목표는 경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혜택을 받은 만큼 경기에서 보여달라는 것이죠. 다만, 그 혜택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이 팀에서 절반 이상의 선수가 프런트와 코치 시절의 제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수들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저 역시 어린 선수들까지도 성격과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거든요. 그런 상호 신뢰 위에 진실한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 지도자로 꽃피운 야구 인생…"문화 바꾸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합니다"

스타 선수 출신이 지휘봉을 잡곤 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1할 타자' 염 감독은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그의 도전 결과에 따라 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릴 날도 앞당겨질 수 있다.

염 감독이 단순히 한 구단의 사령탑이라는 것을 넘어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다.

"한국의 문화 때문에 제 인생 계획에서 감독이란 목표는 없었습니다. 제게 사령탑을 맡긴 구단의 선택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아울러 저와 비슷한 이들에게도 기회가 열리도록 한국의 문화도 바꿔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많은 이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꼭 좋은 성적을 내서 문이 더 열리기를 바랍니다."

감독 염경엽을 바라보며 이전까지 갖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을 수많은 후보 선수를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야구를 그냥 보면 안된다는 겁니다. 여전히 많은 선수들이 팬과 똑같은 눈으로 '와 잘 쳤네' 정도의 생각을 하며 야구를 봅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어요. 늘 '왜'가 들어가야 합니다. 저 선수는 왜 잘 치는가, 지금 감독은 이 작전을 왜 냈을까, 이렇게 자꾸 물음표를 달아야 해요. 그러면 어떤 것을 더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고, 나만의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염 감독은 "지금도 선수 시절의 아쉬움을 떠올리며 선수들에게 '너희들 그렇게 하면 나처럼 된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마도 염 감독이 마음 속에 품은 새로운 꿈은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너희도 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날을 만드는 것일 터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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