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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베이스볼] 미·일 프로야구 4할타자 도전기
더 베이스볼 | 이선호 OSEN 기자 | 입력 2012.09.20 10:17
단순하게 보자면 10번 가운데 4개의 안타를 치면 4할이다.
어쩌면 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말이 쉽지 현실에 적용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이다.
메이저리그 _ 71년째 허락지 않은 4할 타율
미국 메이저리그 1880~1890년대는 15명의 4할 타자가 나왔다. 그러나 당시는 규칙이 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투수는 타자가 원하는 높이로 볼을 던지는 시대였다. 아무래도 현대야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조금씩 현대야구의 틀이 잡히던 1901년 필라델피아의 랩 라조이가 4할2푼6리(543타수 229안타)를 기록해 4할 타자의 반열에 올랐다. 메이저리그는 이후 13차례 4할 타자를 배출했다. 선수로 따지면 8명이다. 옆차기 슬라이딩 등 거친 플레이로 악명이 높았던 타이콥은 세 번(1911년, 1912년, 1921년)이나 4할 타율을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지난 1941년 보스턴의 테드 윌리엄스가 4할6리(456타수 185안타)를 기록했다. 그는 시즌 최종전(더블헤더)에 출전하지 않으면 타율 4할이 가능했다. 3할9푼9리9모에서 반올림하면 4할이 됐다.
자존심이 강했던 윌리엄스(사진)는 출전을 강행했고 안타를 날려 기어이 완전한 4할 타율을 작성했다. 윌리엄스 이후 올해까지 71년째 4할의 벽은 깨지지 않고 있다. 1942년부터 현재까지 3할7푼 이상의 고타율은 기록한 선수는 모두 13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4할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테드 윌리엄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1994시즌 토니 그윈이었다. 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었던 그윈은 3할9푼4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통산 8번이나 내셔널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던 그윈은 운이 없었다. 8월12일부터 노사협상 결렬로 선수노조가 파업하는 통에 110경기 출전에 그쳤고 4할 도전에 실패했다. 3안타만 추가하면 4할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지 브렛(캔자스시티 로열스)도 1980년 3할9푼을 기록했지만 매스컴을 비롯해 주변의 과도한 관심 탓에 페이스가 흔들려 고지 등정에 실패했다. 7번이나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지낸 로드 캐류도 1977시즌 4할에 도전했지만 3할8푼8리를 기록했다. 윌리엄스도 58년 자신의 두 번째 4할에 도전했지만 3할8푼8리에 그쳤다.
2000년대 이후는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한때 4할의 벽에 도전했다. 2000시즌을 마치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이치로는 첫 시즌인 2001년 242안타를 날려 3할5푼을 기록했다. 이후 매년 200안타를 날리며 높은 타율을 보유했다. 2004년에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기록인 262안타를 날려 타율 3할7푼2리까지 끌어올렸다.
두 번이나 월간 50안타 이상을 때려내는 등 사무라이 안타 제조기로 신기원을 작성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치로가 윌리엄스 이후 꿈의 4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면서 응원을 펼쳤으나 결국 4할은 넘지 못했다. 그는 4할 타율보다는 안타에 관심이 컸다. 당시 언론들은 볼을 기다리지 않고 초구부터 적극적인 타격을 하는 이치로의 타격 스타일이 4할 타율의 걸림돌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
4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4할 실패의 원인은 마운드의 분업화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대야구는 완투형 투수는 점점 사라지고 6~7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와 후반 2~3이닝을 책임지는 계투로 나뉘어 있다. 특히 좌우타자에 대응하는 좌우투수들이 원포인트 릴리프로 출동하고 필승조의 중간투수뿐만 아니라 9회에는 소방수까지 상대하기 때문에 안타생산이 그만큼 어려워진다. 필승조와 소방수는 대개 150km에 가까운 볼을 던진다는 점도 안타생산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야구광이자 고생물 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박사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4할 타자 탄생의 어려움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굴드는 타율은 투수와 타자 승부의 결과에 따른 상대적 지표라는 점에 착안해 가설을 세웠다. 즉, 정규 시즌 평균 타율은 항상 2할대 후반을 기록했고 정규 시즌 타율의 표준편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울러 야구가 프로 스포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규칙 개정을 통해 평균 타율을 일정 범위 내로 유지하고 있다는 가설도 곁들였다.
굴드에 따르면 초기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타격 기술들이 나와 타율의 표준편차도 컸다. 그러나 최상의 기술만 살아남고 그것이 기준이 되면서 그만큼 타율의 표준 편차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타자의 능력은 꾸준히 향상되면서 현재는 다수의 선수들이 최상의 타자 범주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최상의 타자 타율과 평균 타율과의 차이가 작아져, 결과적으로 4할 타자는 출현하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야구 _ 끝내 허물지 못한 4할의 벽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4할의 벽은 단 한번도 깨지지 않았다. 타격천재 스즈키 이치로, 안타 제조기 장훈, 최강의 외국인 타자 랜디 바스와 워렌 크로마티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끝내 허물지 못한 철옹성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더 이상 4할 타자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미국 출신의 워렌 크로마티는 지난 1989년 요미우리 시절 꿈의 4할을 달성할 뻔했다. 당시 4할 타율을 이루고 은퇴하겠다며 호기를 부린 그의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개막부터 소나기 안타를 쏟아내더니 규정타석(403타석)에 도달한 시점에서 타율 4할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는 경기를 출전하지 않으면 4할이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개인기록 뿐이던가. 일본에서는 개인보다는 팀 우승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크로마티는 우승 경쟁 때문에 출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최종타율 3할7푼8리를 기록했다. 그래도 그는 96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다. 일본야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4할을 유지한 선수이다.
난카이 호크스의 내야수 히로세 요시노리도 4할 타율에 근접했던 교타자였다. 1954년 테스트를 받고 투수로 입단했으나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해 유격수로 변신했다. 100m를 11초4에 주파하고 그라운드 한바퀴 도는데 13초9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발이 빨랐다. 이런 장점을 살려 1963시즌 187안타를 터트렸다. 스즈키 이치로가 1994시즌 기록을 경신할 때까지 31년 동안 최다안타 기록을 보유했다. 히로세는 1964시즌 89경기까지 타율 4할을 마크하면서 꿈의 기록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 역시 주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타격 페이스가 흐트러졌고 3할6푼6리의 저조한(?)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신 타이거즈 용병타자 랜디 바스는 일본 야구 한 시즌 최고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1986시즌 453타수 176안타를 터트려 3할8푼9리를 기록했다. 바스는 1985년 54홈런, 3할5푼, 134타점을 거두어 21년 만에 타이거즈 우승을 이끌고 '부처님'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986시즌에서도 개막부터 꾸준히 안타를 생산하기 시작해 대기록 달성 가능성을 높였다. 69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다. 이후 5경기에서 25타수 무안타의 부진에 빠져 3할7푼까지 떨어졌다. 재반등에 성공해 85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3할9푼9리4모까지 끌어올렸지만 결국 끝내 4할 도약에 실패했다.
60년~70년대 일본 프로야구계를 지배했던 재일 한국인 장훈도 4할 가능성이 있었다. 장훈은 1970시즌 4년 연속 타격왕에 도전했다. 초반 30경기는 겨우 3할 언저리에서 그쳤지만 이후 매 경기 맹타를 휘둘렀고 106경기째 3할9푼6리까지 타율을 끌어올려 꿈의 4할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역시 4할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고 3할8푼3리로 마감, 당시까지 시즌 최고 타율을 세우는데 만족했다.
이치로도 오릭스 시절 도전했으나 4할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94년부터 99년까지 6연 연속 수위타자에 오른 타격의 황제였다. 모두 3할4푼 이상의 고타율이고 내야안타 생산 능력이 탁월해 4할 타자 후보로 떠올랐다. 이치로는 94년 102경기 시점에서 3할9푼7리를 기록했다. 아울러 169안타를 쳐내 전인미답의 200안타와 4할 가능성을 높여 일본열도를 흥분시켰다. 그는 210안타를 날려 일본 최초의 200안타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결국 막판 무안타 경기가 나오면서 3할8푼5리의 기록에 만족해야 했다.
비록 1군은 아니지만 일본프로야구 2군에서는 4할 타자가 나왔다. 세이부의 내야수 스즈키 겐은 1991년 2군 이스턴리그에서 4할1리를 기록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울러 현재 한신의 외야수 노하라 유야는 2007년 독립리그 도야마 선더버드에서 4할1푼7리를 기록했지만 프로야구 신기록으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4할 달성의 조건
일본에서는 4할 달성의 조건에 대해 논의가 활발했다. 일단 안타 양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교한 타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왼손타자가 유리하다. 우타자에 비해 한걸음 정도 1루에 가깝다는 위치적 요건 때문이다. 때문에 일본은 유난히 왼손타자들이 많다. 매 시즌 타율 10걸 가운데 좌타자들이 즐비하다.
무안타 경기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치로는 210안타를 달성할 당시 무안타는 13경기였다. 3안타 이상의 안타도 중요하지만 무안타 경기를 줄여 타율을 까먹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볼넷과 사구를 얻어낼 수 있는 선구안도 필요조건이다. 타율 4할은 안타수도 중요하지만 타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더욱 중요하다. 이치로는 1994년 210안타를 날렸지만 타수는 546개에 이르렀고 사사구는 66개에 불과했다. 만일 20개 정도 사사구를 얻었다면 4할 타율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지막으로는 멘탈의 중요성이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면 미디어의 엄청난 관심과 팬들의 기대를 받기 마련이다.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에 주변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다닌다. 매 경기 4할에 관련된 질문을 감수해야 한다. 압박감을 이겨야 하는 강한 정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본인 투수들의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다르다. 그들은 타자들과 무조건 정면승부를 펼치지 않는다.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제구력을 갖추었다. 볼 10개 가운데 7~8개는 자신이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진다. 볼 한 개 씩 빼는 유인구 기술도 탁월하다. 기록 달성에 조급해지면 투수들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더욱이 대기록 가능성이 있으면 견제가 더욱 심해지는 일본야구의 풍토도 4할 타자 배출을 어렵게 한다. 4할 타자의 꿈은 크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글. 이선호 OSEN 기자 / 사진. WIKIPEDIA
※ 이 기사는 KBO가 만드는 월간 야구 매거진 [더 베이스볼]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Copyright ⓒ 베이스볼클래식 뉴스, 기사, 사진은 한국야구위원회 (KBO)의 자료 입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말이 쉽지 현실에 적용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이다.
메이저리그 _ 71년째 허락지 않은 4할 타율
미국 메이저리그 1880~1890년대는 15명의 4할 타자가 나왔다. 그러나 당시는 규칙이 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투수는 타자가 원하는 높이로 볼을 던지는 시대였다. 아무래도 현대야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조금씩 현대야구의 틀이 잡히던 1901년 필라델피아의 랩 라조이가 4할2푼6리(543타수 229안타)를 기록해 4할 타자의 반열에 올랐다. 메이저리그는 이후 13차례 4할 타자를 배출했다. 선수로 따지면 8명이다. 옆차기 슬라이딩 등 거친 플레이로 악명이 높았던 타이콥은 세 번(1911년, 1912년, 1921년)이나 4할 타율을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지난 1941년 보스턴의 테드 윌리엄스가 4할6리(456타수 185안타)를 기록했다. 그는 시즌 최종전(더블헤더)에 출전하지 않으면 타율 4할이 가능했다. 3할9푼9리9모에서 반올림하면 4할이 됐다.

테드 윌리엄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1994시즌 토니 그윈이었다. 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었던 그윈은 3할9푼4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통산 8번이나 내셔널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던 그윈은 운이 없었다. 8월12일부터 노사협상 결렬로 선수노조가 파업하는 통에 110경기 출전에 그쳤고 4할 도전에 실패했다. 3안타만 추가하면 4할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지 브렛(캔자스시티 로열스)도 1980년 3할9푼을 기록했지만 매스컴을 비롯해 주변의 과도한 관심 탓에 페이스가 흔들려 고지 등정에 실패했다. 7번이나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지낸 로드 캐류도 1977시즌 4할에 도전했지만 3할8푼8리를 기록했다. 윌리엄스도 58년 자신의 두 번째 4할에 도전했지만 3할8푼8리에 그쳤다.
2000년대 이후는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한때 4할의 벽에 도전했다. 2000시즌을 마치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이치로는 첫 시즌인 2001년 242안타를 날려 3할5푼을 기록했다. 이후 매년 200안타를 날리며 높은 타율을 보유했다. 2004년에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기록인 262안타를 날려 타율 3할7푼2리까지 끌어올렸다.
두 번이나 월간 50안타 이상을 때려내는 등 사무라이 안타 제조기로 신기원을 작성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치로가 윌리엄스 이후 꿈의 4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면서 응원을 펼쳤으나 결국 4할은 넘지 못했다. 그는 4할 타율보다는 안타에 관심이 컸다. 당시 언론들은 볼을 기다리지 않고 초구부터 적극적인 타격을 하는 이치로의 타격 스타일이 4할 타율의 걸림돌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
4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4할 실패의 원인은 마운드의 분업화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대야구는 완투형 투수는 점점 사라지고 6~7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와 후반 2~3이닝을 책임지는 계투로 나뉘어 있다. 특히 좌우타자에 대응하는 좌우투수들이 원포인트 릴리프로 출동하고 필승조의 중간투수뿐만 아니라 9회에는 소방수까지 상대하기 때문에 안타생산이 그만큼 어려워진다. 필승조와 소방수는 대개 150km에 가까운 볼을 던진다는 점도 안타생산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야구광이자 고생물 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박사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4할 타자 탄생의 어려움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굴드는 타율은 투수와 타자 승부의 결과에 따른 상대적 지표라는 점에 착안해 가설을 세웠다. 즉, 정규 시즌 평균 타율은 항상 2할대 후반을 기록했고 정규 시즌 타율의 표준편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울러 야구가 프로 스포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규칙 개정을 통해 평균 타율을 일정 범위 내로 유지하고 있다는 가설도 곁들였다.
굴드에 따르면 초기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타격 기술들이 나와 타율의 표준편차도 컸다. 그러나 최상의 기술만 살아남고 그것이 기준이 되면서 그만큼 타율의 표준 편차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타자의 능력은 꾸준히 향상되면서 현재는 다수의 선수들이 최상의 타자 범주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최상의 타자 타율과 평균 타율과의 차이가 작아져, 결과적으로 4할 타자는 출현하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야구 _ 끝내 허물지 못한 4할의 벽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4할의 벽은 단 한번도 깨지지 않았다. 타격천재 스즈키 이치로, 안타 제조기 장훈, 최강의 외국인 타자 랜디 바스와 워렌 크로마티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끝내 허물지 못한 철옹성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더 이상 4할 타자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미국 출신의 워렌 크로마티는 지난 1989년 요미우리 시절 꿈의 4할을 달성할 뻔했다. 당시 4할 타율을 이루고 은퇴하겠다며 호기를 부린 그의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개막부터 소나기 안타를 쏟아내더니 규정타석(403타석)에 도달한 시점에서 타율 4할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는 경기를 출전하지 않으면 4할이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개인기록 뿐이던가. 일본에서는 개인보다는 팀 우승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크로마티는 우승 경쟁 때문에 출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최종타율 3할7푼8리를 기록했다. 그래도 그는 96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다. 일본야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4할을 유지한 선수이다.
난카이 호크스의 내야수 히로세 요시노리도 4할 타율에 근접했던 교타자였다. 1954년 테스트를 받고 투수로 입단했으나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해 유격수로 변신했다. 100m를 11초4에 주파하고 그라운드 한바퀴 도는데 13초9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발이 빨랐다. 이런 장점을 살려 1963시즌 187안타를 터트렸다. 스즈키 이치로가 1994시즌 기록을 경신할 때까지 31년 동안 최다안타 기록을 보유했다. 히로세는 1964시즌 89경기까지 타율 4할을 마크하면서 꿈의 기록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 역시 주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타격 페이스가 흐트러졌고 3할6푼6리의 저조한(?)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신 타이거즈 용병타자 랜디 바스는 일본 야구 한 시즌 최고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1986시즌 453타수 176안타를 터트려 3할8푼9리를 기록했다. 바스는 1985년 54홈런, 3할5푼, 134타점을 거두어 21년 만에 타이거즈 우승을 이끌고 '부처님'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986시즌에서도 개막부터 꾸준히 안타를 생산하기 시작해 대기록 달성 가능성을 높였다. 69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다. 이후 5경기에서 25타수 무안타의 부진에 빠져 3할7푼까지 떨어졌다. 재반등에 성공해 85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3할9푼9리4모까지 끌어올렸지만 결국 끝내 4할 도약에 실패했다.
60년~70년대 일본 프로야구계를 지배했던 재일 한국인 장훈도 4할 가능성이 있었다. 장훈은 1970시즌 4년 연속 타격왕에 도전했다. 초반 30경기는 겨우 3할 언저리에서 그쳤지만 이후 매 경기 맹타를 휘둘렀고 106경기째 3할9푼6리까지 타율을 끌어올려 꿈의 4할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역시 4할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고 3할8푼3리로 마감, 당시까지 시즌 최고 타율을 세우는데 만족했다.

비록 1군은 아니지만 일본프로야구 2군에서는 4할 타자가 나왔다. 세이부의 내야수 스즈키 겐은 1991년 2군 이스턴리그에서 4할1리를 기록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울러 현재 한신의 외야수 노하라 유야는 2007년 독립리그 도야마 선더버드에서 4할1푼7리를 기록했지만 프로야구 신기록으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4할 달성의 조건
일본에서는 4할 달성의 조건에 대해 논의가 활발했다. 일단 안타 양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교한 타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왼손타자가 유리하다. 우타자에 비해 한걸음 정도 1루에 가깝다는 위치적 요건 때문이다. 때문에 일본은 유난히 왼손타자들이 많다. 매 시즌 타율 10걸 가운데 좌타자들이 즐비하다.
무안타 경기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치로는 210안타를 달성할 당시 무안타는 13경기였다. 3안타 이상의 안타도 중요하지만 무안타 경기를 줄여 타율을 까먹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볼넷과 사구를 얻어낼 수 있는 선구안도 필요조건이다. 타율 4할은 안타수도 중요하지만 타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더욱 중요하다. 이치로는 1994년 210안타를 날렸지만 타수는 546개에 이르렀고 사사구는 66개에 불과했다. 만일 20개 정도 사사구를 얻었다면 4할 타율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지막으로는 멘탈의 중요성이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면 미디어의 엄청난 관심과 팬들의 기대를 받기 마련이다.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에 주변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다닌다. 매 경기 4할에 관련된 질문을 감수해야 한다. 압박감을 이겨야 하는 강한 정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본인 투수들의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다르다. 그들은 타자들과 무조건 정면승부를 펼치지 않는다.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제구력을 갖추었다. 볼 10개 가운데 7~8개는 자신이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진다. 볼 한 개 씩 빼는 유인구 기술도 탁월하다. 기록 달성에 조급해지면 투수들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더욱이 대기록 가능성이 있으면 견제가 더욱 심해지는 일본야구의 풍토도 4할 타자 배출을 어렵게 한다. 4할 타자의 꿈은 크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글. 이선호 OSEN 기자 / 사진. WIKIPEDIA
※ 이 기사는 KBO가 만드는 월간 야구 매거진 [더 베이스볼]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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