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2군서 부활한 '유승안 감독 시프트'

2009. 5. 2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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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25일, 한화의 유승안 감독(53)은 두산과의 잠실경기에서 경기 종반 '적중하면 좋고 아니면 하는 수 없다'는 모 아니면 도식의 도박(?)과도 같은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사용한 적이 있다.

두산에 0-3으로 뒤지던 8회말이었다. 1사 만루의 난관에 봉착한 유승안 감독은 당시 좌익수이던 이영우를 1루수 자리로 불러들이고, 1루수 김태균을 2루수와 유격수의 중간 지점인 2루(베이스) 앞으로 이동을 시켰다. (당시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영우를 투수로 마운드에 올리는 줄 알았다고 했다. 좌타자 최경환을 상대하는 좌투수 이영우를 순간 머리에 그린 것이다)

그리고 2루수 임수민과 3루수 디아즈, 유격수 이범호에게는 전진수비 대형을 갖추도록 지시했다. 추가실점은 곧 패배였기에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내야수의 숫자를 5명으로 변칙 증원시킨 것이었다.

반면 수비수가 줄어든 외야지역은 중견수와 우익수 2명만이 덜렁 남게 되었고, 좌중간과 우중간으로 각각 나누어 선 그들에겐 보다 넓어진 지역관리를 해야 하는 부담스런 과제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유승안 감독의 '과감한 시도'는 '완전한 실패'로 끝맺음 되고 말았다. 붉은 색으로 꽉 들어찬 내야수의 빡빡한 수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경환(두산)이 친 타구는 공교롭게도 이영우가 서 있던 자리인 좌익수 쪽으로 날아갔고, 잡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이 타구가 2타점 2루타로 돌변하는 어이없는 광경을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이후 야수 몇 명을 교체한 뒤 수비위치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으로 유승안 감독의 위험한 실험은 일단락 되었고, 이날 선보였던 촘촘한 그물망식 내야수비는 다음날 '유승안 감독 시프트'라는 새로운 신조어로 재 탄생되기도 했다.

세월에 묻힌 이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는 야구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곱게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올 시즌부터 경찰청 감독을 맡고 있는 유승안 감독이 5년 전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수비시프트를 2군에서 또 한번 꺼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담당 공식기록원의 전언을 종합해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상무와의 경기(4월 8일)에서 8-7로 앞서고 있던 9회말, 경찰청의 유승안 감독은 1사 만루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자 좌익수 이웅용를 2루수와 유격수 사이인 2루(베이스) 앞쪽으로 불러들였다. 2루수 송승민과 유격수 전현태는 땅볼타구가 나왔을 경우에 홈에서의 빠른 승부를 위해 전진배치시키고.

타석에는 상무의 톱타자 강명구(29)가 들어서 있었다. 볼카운트 2-2에서 강명구의 방망이가 돌아갔고, 타구는 2루수 앞으로 굴렀다.

2루수는 이 땅볼타구를 잡아 2루 위에 서 있던 좌익수 이웅용에게 송구(1루주자 포스아웃)했고, 이웅용는 연결동작으로 1루에 던져 타자주자까지 잡아내는데 성공(기록법상 4-7B-3), 극적으로 1점차의 리드를 지켜냈다는 소식이었다.

만일 정상적인 수비 형태로 갔다면 2루수나 유격수가 전진수비 중이었기 때문에 3루주자를 홈에서 포스아웃 시킬 수는 있었겠지만, 더블 플레이는 아무래도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좌익수를 2루 위에 세워놓은 모종의 선택이 이 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것이었다.

병살타 하면 흔히들 4-6-3, 5-4-3, 6-4-3 등을 떠올리는데 '4-7-3'의 병살타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선수의 수비위치 이동에 따른 기록상의 원칙을 잠깐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주심을 통해 수비위치를 변경한다는 공식적인 통보를 기록석에 해오지 않는 이상, 수비수가 자리를 이동했다고 해서 수비위치가 변경되었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이날 경기처럼 좌익수가 2루 부근으로 옮겨 서 있다고 해서 2루수나 유격수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년 전의 이영우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1루수 역할을 맡았지만 기록법상 1루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외야수가 내야수로 들어와 플레이에 관여해도 외야수가 갖고 있던 고유의 수비위치 번호(7,8,9)를 그대로 기입한다. 기록지를 읽는데 부연이 필요하다면 따로 설명을 붙인다. 그래서 4-7-3의 병살타가 가능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수비 시프트 변형의 유래는 194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후의 4할타자(좌타자)로 남아있는 고(故) 테드 윌리엄스(보스턴 레드삭스)의 불 같은 타격을 잠재워보고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루 부드로 감독이 3루 부근을 비워두고 3루수를 유격수 쪽으로, 유격수를 2루 쪽으로, 2루수를 좀더 1루수 쪽으로 각각 이동해 자리하게 했던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요즘도 일명 '루 부드로 시프트' 또는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타자별 수비 시프트의 임기응변식 변형은 현대 야구에선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최근 가르시아(롯데)나 김재현(SK) 등과 같은 국내 선수는 물론 일본과 미국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이승엽(요미우리)과 추신수(클리블랜드)에 대한 상대 팀의 극단적 수비위치 이동만 놓고 봐도 그렇다.

다만 여기에서 한가지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은 수비 시프트의 극단적 변형이 단순히 수비수의 위치 이동에 기대어 이득을 바라는 요행수 작전으로만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수비수의 자리를 옮기는 일은 타자별 타격성향에 따른 과거 통계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겠지만, 당장 투수가 타자를 어떤 구질과 코스로 요리를 하겠다는 나름의 공략법이 제대로 서야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작전이다.

이래저래 벌써부터 '유승안 감독 시프트' 제3탄이 기다려진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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