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과 허민, 젊은 게임갑부들의 야구도전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1. 12.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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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제9구단 'NC 다이노스'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앞날

[머니투데이 장윤호스타뉴스 대표][[장윤호의 체인지업]제9구단 'NC 다이노스'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앞날]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허민 구단주(왼쪽)와 프로야구 제 9구단 NC 다이노스의 김택진 구단주.

# 허민을 아시나요

지난 9월15일 '고양 원더스(Wonders)'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독립 구단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창단 협약식을 가졌을 때 야구계와 팬들은 '도대체 구단주인 허민이 뭐하는 사람이냐?'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야구단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데 허민이라는 이름이 벤처와 게임 업계가 아닌 분야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봐도 구단주라기에는 너무 젊었다. 그런데 독립구단을 만들어 1년에 20억 원 가까이를 그냥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뭐를 해서 돈을 벌었어'부터 '돈이 얼마나 있는데'를 거쳐 '아니 1년에 20억 가까운 돈을 왜 야구에 그냥 버린다는 거야. 이상한 사람 아니냐'까지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난무했다. 필자는 작년부터 허구연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에게 허민이라는 이름을 듣고 있었다.

KBO가 '신상우 총재-하일성 총장' 체제였던 2007년 말, 인연이 됐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주인공이 허민이었을 것이라며 그가 독립 구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여러 번 얘기했기 때문이다.

도무지 어떤 사람인데 무모하기까지 한 독립구단을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 이력을 찾아 보았다. 허민은 1976년생이었다. 올해 만 35세이다. 최초의 비운동권 출신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했고 야구부원이었던 그는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뒤 온라인 게임회사 네오플을 설립해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을 대 성공시켰다.

그리고 2008년 7월 네오플을 넥슨에 3,800억 원에 매각해 자신의 손에만 2,000억 원 이상을 거머쥐며 청년 거부(巨富)가 됐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이후 홀연히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나 너클볼의 대가, 필 니크로의 제자가 돼 너클볼을 전수 받기도 했다.

허민은 금년 7월 자신이 대주주인 소셜커머스업체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한국야구의 상식을 뒤엎는 독립구단 출범을 마침내 성사시켜 마침내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창단식을 열었다.

# 김택진과는 뭐가 다른가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해 게임 리니지를 발판으로 2조원 가까운 주식 부자가 된 김택진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이며 1967년 서울 출생으로 허민 대표보다 9살 위인 44세이다.

김택진 사장이 한국프로야구 제9구단 'NC 다이노스' 창단을 추진하고 나섰을 때 모두가 놀랐다. 우리 청소년들을 모두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던 그가 온라인 게임과 달리 땀과 웃음, 눈물,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절망이 뒤엉키는 현실의 그라운드로 되돌려 보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택진 사장은 야구에 정통적으로 접근했다. KBO에 제9구단 창단 신청을 해 창원을 연고로 NC 다이노스를 출범시켜 지난 3월 창단식을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NC 다이노스가 연간 2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프로야구단이라면 고양 원더스는 1/10인 20억 정도가 운영 자금이라는 것이다. 이는 2조원 가까운 부자인 김택진 대표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허민 대표의 재력 차이가 반영되기도 했다.

허민 대표는 허구연 위원장에게 '두고 보십시오. 제가 더 많은 돈을 벌어 반드시 프로야구단을 하겠습니다'라고 장담을 했다니 지켜볼 일이다.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창단 사령탑을 맡은 김성근 감독(왼쪽)과 프로야구 제 9구단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초대 감독.

# 왜 김경문과 김성근감독인가

김택진 구단주와 허민 구단주는 감독의 선택에서 무엇인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물론 아직도 야구계에서 추측이 있기는 하다. 김성근 감독이 SK에서 정상적으로 시즌을 마쳤다면 NC 다이노스의 초대 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일각에서 생각하고 있다.

김감독이 구단과 마찰을 빚고 8월18일 경질당하자 김택진 구단주가 부담을 느껴 시즌 초반 두산에서 자진 사퇴하고 미국에 체류중이었던 김경문 감독을 귀국시켜 8월31일 공식 계약을 발표했다는 주장이다.

프로야구 시즌 종료 후 결정한다고 했던 창단 감독 발표가 김성근 감독 사태와 맞물려 김경문 감독 조기 선임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는 한 확인하기 어렵다.

김택진 구단주는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차례도 못했으나 '신사(紳士)'의 이미지에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으로 전승 금메달을 따낸 김경문 감독을 택했다.

반면 잘 나가던 회사를 돌연 매각하고 미국으로 가 음악과 야구 공부로 외도를 한 '기인(奇人)'의 이미지를 지닌 허민 대표는 오로지 자신의 야구에 목숨을 걸고 구단과 무관하게 자진사퇴까지 선언하는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

김성근 감독은 기존 프로야구단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허민 대표는 개의치 않고 사실상 구단의 전권을 맡겼다.

# 결론은?

김택진 구단주와 허민 구단주는 게임에서 야구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나란히 게임으로 이룬 부를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은 야구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제9구단 NC 다이노스(Dinos)는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반면 고양 원더스(Wonders)는 큰 돈을 번 허민 대표가 야구에 대한 자신의 꿈을 이루고 패배자들에게 마지막 도전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현재로서는 독립구단이 돈을 벌 방법이 전혀 없다. 그 무모함이 '놀라움(wonder)'일 뿐이다.

장윤호는...

서울 중앙고등학교 시절 고교야구의 전성기를 구경했으나 그 때만 해도 인생의 절반을 야구와 함께 할 줄 몰랐다. 1987년 일간스포츠에 입사해 롯데와 태평양 취재를 시작으로 야구와의 동거가 직업이자 일상이 됐다. 한국프로야구 일본프로야구 취재를 거쳐 1997~2002년까지 6년 동안 미국특파원으로 박찬호의 활약과 메이저리그를 현장에서 취재하고 귀국한 후 일간스포츠 체육부장, 야구부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2003년 MBC ESPN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을 했고 2006년 봄 다시 미국으로 떠나 3년 동안 미 프로스포츠를 심층 취재하고 2009년 돌아왔다. 현재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스타뉴스(Starnews)' 대표,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야구발전연구원이사,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06년 3월 '야구의 기술과 훈련(BASEBALL Skills & Drills)'을 번역 정리해 한국야구 100주년 특별 기획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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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장윤호스타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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