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만 원에서 10억 원까지' 최고연봉 변천사

신화섭 2011. 12. 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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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신화섭]

'2400만 원에서 10억 원까지.'

프로야구가 30년 만에 연봉 10억 원 선수를 탄생시켰다. 주인공은 2일 한화 구단으로부터 최소 10억 원의 연봉을 보장 받은 김태균(29)이다.

이로써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최고 연봉은 무려 40배 이상 증가하게 됐다. 원년 최고 몸값은 미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투수 박철순(당시 OB)의 2400만 원이었다. 억대 연봉은 재일동포 선수가 먼저 돌파했다. 85년 장명부(당시 삼미)가 1억484만원의 연봉을 받아 처음으로 1억원대에 진입했다.

국내 선수 중 최초의 억대 연봉자는 '국보 투수' 선동열(당시 해태)이었다. 93년 1억원으로 본격적인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다. 선동열은 최고 연봉을 1억3000만원(95년)까지 끌어올린 뒤 96년 일본 주니치로 떠났다. 이후 양준혁(1억4000만원·98년)과 정명원(1억5400만원·99년)이 이어간 최고 연봉은 2000년 정민태(당시 현대)가 3억1000만원을 받으면서 단숨에 2억원을 넘어 3억원대에 진입했다.

1999시즌 뒤 프리에이전트(FA) 제도가 도입되고 최고 스타들이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돌아오면서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 연속 최고 연봉 기록이 새로 작성됐다. 2001년 이종범이 3억5000만원에 KIA로 복귀했고, 2002년 LG로 돌아온 이상훈은 첫 4억원대 연봉(4억7000만원) 선수가 됐다. 2003년 이승엽(당시 삼성)은 6억원대 시대(6억3000만원)를 열었고, 2005년에는 심정수가 FA로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연봉 7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이후 주춤했던 프로야구 최고 연봉은 김태균이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7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신화섭 기자 evermyt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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