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킬러' 장원삼, 3년전 日구단들 탐냈다

김식 2011. 11. 30. 10: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김식]

공을 던질수록 장원삼(28·삼성)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반대로 일본 소프트뱅크 타자들의 스윙은 위축됐다. 장원삼은 1회 1점을 내줬지만 이후 7회 1사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100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6⅓이닝 5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장원삼은 29일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2011 아시아시리즈 결승에서 승리투수가 됐고, 경기 및 대회 MVP에 올랐다. 나흘 전 호주전 승리에 이은 쾌투였다. 저마노·매니스·차우찬·윤성환이 빠진 삼성 선발진에서 장원삼 홀로 반짝반짝 빛났다.

특히 일본챔피언 소프트뱅크를 상대한 피칭은 눈부셨다. 최고 146㎞의 직구는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송곳처럼 찔렀다. 슬라이더도 강약을 조절해 정교한 일본 타자들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새로운 '일본 킬러'의 등장이었다.

1970년대 이선희, 80년대 김기범·송진우, 90년대 구대성, 2000년대 김광현·봉중근 등 역대 '일본 킬러'들은 죄다 좌완이다. 장원삼은 이들에 비해 파워가 조금 떨어지지만 정교함은 더 낫다. 무엇보다 왼손이라는 공통적인 무기가 있다.

사실 일본 야구는 3년 전인 2008년부터 그를 주목했다. 현대가 해체되고 2008년 히어로즈(넥센)가 이를 인수해 어렵게 구단을 운영하던 때다. 당시 히어로즈는 30억원을 받고 에이스 장원삼을 삼성에 팔려 했다. 결국 트레이드가 승인되지 않았고 장원삼인 1년 뒤인 2009년 겨울 삼성으로 이적했다.

히어로즈가 장원삼을 트레이드 하려 하자 갑자기 일본의 몇몇 구단이 움직였다. 뛰어난 왼손 투수를 얻을 방법을 찾고자 했다. 일본 구단들은 장원삼을 현금 트레이드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한편으로는 스카우트를 한국에 급파해 장원삼의 현재가치를 따지기도 했다. 규약상 한국-일본간의 선수 거래가 이뤄질 수는 없지만 당시 히어로즈 상황이 워낙 특수한 탓에 일본 구단들이 그를 탐냈던 것이다.

얼마 후 일본 구단들의 장원삼 영입시도가 멈췄다. '수준급 컨트롤을 갖췄고, 슬라이더가 예리하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없다'는 스카우트리포팅만 남았다.

이후 3년이 지났다. 그 동안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그리고 아시아시리즈 또는 한·일 챔피언십이 매년 열렸지만 장원삼이 일본을 상대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던 2009년 WBC 2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3이닝 1자책점을 기록한 적망 있다.

이번 아시아시리즈에서 장원삼은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의 직구는 충분히 위력적이었고, 포크볼이 없어도 일본 타자들을 농락했다. 이날 한판은 '장원삼의 재발견' 무대였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사진=이영목 기자

현아-장현승, 공연 중 돌발 키스 '이럴수가!'

박한별, 울퉁불퉁한 짐승 허벅지 '쇼킹하네'

성형의혹 추궁에 입 연 김현정 "셀카 성형 아시나요?"

오인혜 주연 '붉은 바캉스…' 포스터부터 파격

이본 "7년 잠적, 아기들에게 미안" 무슨의미?

'야구 유망주' 퍽치기전과자 투수, 결국 조폭으로…

김광은 감독, 박혜진 선수 목조르고 폭행 충격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