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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를 기념하다-故최동원①] ‘만화에나 나올법한’ 지옥훈련
일간스포츠 | 유선의 | 입력 2011.09.26 11:41
[일간스포츠 유선의] 최동원. 그는 그냥 잘하지 않았다. 멋있게 잘했다. 직구와 커브와 슬라이더 하나하나가 절묘했다.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디디며 공을 던지는 그의 얼굴에 트레이드마크처럼 자리했던 금테 안경도 멋있었다. 그는 초창기 우리 프로야구에서 좀체 보기 힘든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인생은 플레이보다 멋있었다. 1980년대 중반,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했고, 프로야구 최초로 선수협회를 만들려고 했다. 최고의 선수로 빛났고, 쿨하게 은퇴했다. 의욕적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괜찮다"고 말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의 행적 하나하나가 전설이 됐다. 어떻게 그랬을까. 고인의 어머니와 동생, 군복무중인 아들을 통해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다. '타격의 달인' 고(故) 장효조 감독에 이은 '레전드를 기념하다' 두 번째 기획이다.
만화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나 나올 법한 기상천외한 훈련. 키(179㎝)도 크지 않고 몸무게도 가벼웠던 최동원은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 매일 밤 200개 정도의 공을 던졌다. 하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언덕길에서 중형차를 끌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목숨 걸고' 운동했던 건 아니었다. 현역 시절 날렵한 몸매를 뽐냈던 최동원의 초등학교 시절 별명은 '돼지'였다. 그가 운동을 시작했던 건, 사실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돼지'에서 '곰 새끼'로
최동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몸무게 45㎏을 넘겼다. 지금은 평범하지만 당시엔 반에서 압도적인 몸무게. 사학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지만 선수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순수하게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어머니 김정자 여사는 "공부에 소질이 더 많았다. 반에서 5등 밖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들은 '돼지'라고 놀림 받는 게 싫어서 축구를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자 곧 소질을 보였다. 축구도 잘 했지만, 야구에 더 흥미를 보였다. 축구장에 갈 때도 글러브를 가지고 갔고, 언제부턴가 "야구가 더 재미있다"는 말을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야구부가 있는 구덕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자 어머니를 따라 전학을 갔다. 최동원의 야구부 입성, 남들보다 다소 늦은 6학년 때였다. 야구부에 들어간 첫 날, 최동원은 학교를 마치고 눈을 빛내며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어머니! 여기서는 날 '돼지'라고 부르지 않아요. 친구들이 '곰 새끼'라고 불러요."라며 기뻐했다. 그는 몇 달 지나지 않아 팀의 에이스가 됐고, 가족들에게 "앞으로 야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고(故) 최윤식 씨는 아들이 야구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최동원이 모두 장남이었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야구를 하겠다.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최동원의 모두발언 이후 어머니·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가 투표를 했다. 찬성 3표, 반대 1표. 할머니는 "운동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아느냐"며 끝까지 반대했다. 최동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 정식으로 야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공포의 외인구단' 훈련법
가족회의가 끝나고 온 가족이 최동원을 밀어주기로 했다. 우선 집 뒤의 약 400평방미터(120평)짜리 밭을 전용연습장으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손수 담벼락에 100와트짜리 전구 600개를 매달았고, 밭을 다져 정식 구장과 같은 규모의 마운드를 만들었다. 천막을 잘라 스트라이크 존을 그렸고, 처마의 빗물받이를 떼서 야구공 굴리는 길을 만들었다. 토성중학교(현 경남중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최동원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용연습장에서 야간훈련을 했다.
아버지는 일본 방송을 통해 야구를 보고 해설자들의 발언을 꼼꼼하게 메모했다. 30분 동안 그 내용을 아들에게 일러주고, 함께 연습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늘의 공'을 정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던졌다. 최동원의 동생 최수원 심판위원은 "항상 100개 넘게 던졌다. 많은 날은 300~400개도 던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30개 정도 던지면 동생들이 그 공을 주워 빗물받이로 굴린다. 아버지는 그 공을 받아 소쿠리에 담고, 그 사이 잠시 휴식을 취한 최동원은 다시 공을 던졌다. 찢어진 천막을 꿰매는 건 할머니가 했고, 훈련이 끝날 때 쯤 어머니는 연탄불에 물을 데웠다. 훈련을 마친 아들이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추운 겨울엔 러닝 위주의 훈련을 했다. 아버지는 최동원의 구속을 올리기 위해 다이내믹한 투구 폼을 연습시켰다. 하지만 너무 큰 투구 폼 때문에 하체가 흔들렸다. 그래서 아버지는 '차 끌기' 훈련을 제안했다. 고등학생이 된 최동원은 아버지가 손수 다듬은 타이어를 몸에 끼우고 타이어에 매단 중형 승용차를 끌고 10도~15도 경사의 언덕길을 올랐다. 허벅지가 굵어졌고, 투구 폼에 안정감이 생겼다. 최동원의 1984년 투구 영상을 본 LG 외국인 투수 리즈는 "투구 폼이 매우 큰데 하체가 굉장히 안정돼 있다. 이런 하체 밸런스를 유지하려면 보통 사람보다 뼈가 두 배쯤 두껍거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하체 훈련을 했을 것"이라며 놀랐었다.
유선의 기자 [sunny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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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플레이보다 멋있었다. 1980년대 중반,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했고, 프로야구 최초로 선수협회를 만들려고 했다. 최고의 선수로 빛났고, 쿨하게 은퇴했다. 의욕적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괜찮다"고 말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의 행적 하나하나가 전설이 됐다. 어떻게 그랬을까. 고인의 어머니와 동생, 군복무중인 아들을 통해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다. '타격의 달인' 고(故) 장효조 감독에 이은 '레전드를 기념하다' 두 번째 기획이다.

'돼지'에서 '곰 새끼'로
최동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몸무게 45㎏을 넘겼다. 지금은 평범하지만 당시엔 반에서 압도적인 몸무게. 사학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지만 선수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순수하게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어머니 김정자 여사는 "공부에 소질이 더 많았다. 반에서 5등 밖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들은 '돼지'라고 놀림 받는 게 싫어서 축구를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자 곧 소질을 보였다. 축구도 잘 했지만, 야구에 더 흥미를 보였다. 축구장에 갈 때도 글러브를 가지고 갔고, 언제부턴가 "야구가 더 재미있다"는 말을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야구부가 있는 구덕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자 어머니를 따라 전학을 갔다. 최동원의 야구부 입성, 남들보다 다소 늦은 6학년 때였다. 야구부에 들어간 첫 날, 최동원은 학교를 마치고 눈을 빛내며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어머니! 여기서는 날 '돼지'라고 부르지 않아요. 친구들이 '곰 새끼'라고 불러요."라며 기뻐했다. 그는 몇 달 지나지 않아 팀의 에이스가 됐고, 가족들에게 "앞으로 야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포의 외인구단' 훈련법
가족회의가 끝나고 온 가족이 최동원을 밀어주기로 했다. 우선 집 뒤의 약 400평방미터(120평)짜리 밭을 전용연습장으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손수 담벼락에 100와트짜리 전구 600개를 매달았고, 밭을 다져 정식 구장과 같은 규모의 마운드를 만들었다. 천막을 잘라 스트라이크 존을 그렸고, 처마의 빗물받이를 떼서 야구공 굴리는 길을 만들었다. 토성중학교(현 경남중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최동원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용연습장에서 야간훈련을 했다.
아버지는 일본 방송을 통해 야구를 보고 해설자들의 발언을 꼼꼼하게 메모했다. 30분 동안 그 내용을 아들에게 일러주고, 함께 연습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늘의 공'을 정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던졌다. 최동원의 동생 최수원 심판위원은 "항상 100개 넘게 던졌다. 많은 날은 300~400개도 던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30개 정도 던지면 동생들이 그 공을 주워 빗물받이로 굴린다. 아버지는 그 공을 받아 소쿠리에 담고, 그 사이 잠시 휴식을 취한 최동원은 다시 공을 던졌다. 찢어진 천막을 꿰매는 건 할머니가 했고, 훈련이 끝날 때 쯤 어머니는 연탄불에 물을 데웠다. 훈련을 마친 아들이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선의 기자 [sunny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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