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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준과 야구이해하기] 장효조 선배를 기리며..

조회수 2011. 9. 7. 16: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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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데... 자식 같은 후배들이 장 선배의 타격에 관한 노하우를 배우려고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장효조 선배께서 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일먼저 떠오른 것이,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누르고 극적으로 우승 후 너무 기뻐 같이 눈물을 흘리던 일이 생각난다. 처음 보는 사람은 선배의 당당한 모습에 또는 무뚝뚝한 모습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선배 역시 낮을 좀 가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알고 보면 한없이 여리고 착한 성품의 소유자 였다. 이러한 분이 왜 그리도 급히 갔는지, 또 왜 그리도 평소에 건강관리를 안 했는지 떠나보내고 난 후 후배로서 아쉬움이 가득 할 뿐이다. 평소에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식사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아무튼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야구계의 큰 자산을 잃었다. 지면상으로 어떠한 미사구어를 동원해도 모자를 정도로 타격기술에 관한 한 따라갈 선수가 없었던 장효조 선배는 프로야구가 생기기 이전부터 국가대표로서 많은 국위 선양을 했다. 특히 82년 안방에서 벌어지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아마추어 국가대표로서 프로진출을 1년간 유보해 가면서 까지 나라를 위해 뛰었던 선수였다. 국내외에서 대회와 합숙훈련을 하던 때 밖에 나갔다오면 항상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왔는데, 후배를 위해 간식거리를 사들고 들어왔던 정 많은 선배였다. 후배들을 거두는 모습과 자신의 타격기술을 전수하기위해 누구든지 물으면 열정을 다해 알려주려는 마음자세에 모두들 탄복 할 정도였고, 이로 인해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으며 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귀감이 되는 그는 진정한 야구인이었다.

장 선배께서 는 현역 때 유난히 맥주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자제하지 못하거나 과하게 마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술을 마셔도 꼭 배트를 들고 빈 스윙연습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모습만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많은 노력을 했던 분이다. 선수로서 장효조 선배께서는 타격 시에 "집중력과 선구안"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좋았다. 밤에 연습 스윙을 할 때도 얼마나 집중해서 하는지 감히 말을 건넬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고, 연습을 길게 하든 짧게 하든 항상 윗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짧고 강한 스윙을 할 수 있기에 공을 충분히 끌어다 놓고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볼과 스트라이크를 골라내는 능력 또 한 탁월했다. 특히 눈이 매서울정도로 좋아 스트라이크만 골라서 쳐내 상대투수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아무튼 당시 필자는 장 선배의 노력하는 자세를 보고, 노력하면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를, 장효조 선배를 통해 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들이 공감하고 따랐던 것으로 안다.

필자는 장효조 선배와 1981년 12월, 동계훈련에 대표선수로서 처음 같이 합숙생활을 하며 정이 들었던 선배다. 6년 선배이자 같은 왼손을 사용했기에 많은 조언을 받았고, 특히 개인 훈련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롤 모델로 삼아 이후 열심히 따라 했던 추억도 가지고 있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장효조 선배의 과거 기록이 나오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대단한 기록의 보유자인 장효조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만약 장효조 선배가 고교를 졸업할 즈음에 프로야구가 있었고, 또 대학과 군에 가는 공백기 없이 바로 프로에 입문했다면 한국프로야구 타자의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올 해로 우리프로야구는 정확히 30년째다. 통산 타율이 3000타석 이상 들어간 선수들을 기준으로 봤을 때 0.331리로 전체1위다. 2위가 양준혁 인데 0.317리로, 2위와의 격차도 많이 벌어질 정도로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한 마디로 야구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0순위로 들어갈 인품과 자격을 갖춘 야구인이다. 그동안 한국야구는 투타에서 훌륭한 선수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해 냈다. 장효조 선배가 올 해 55세로 세상을 떠났기에 요즘 세대는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40대부터 80대까지 장 선배의 타격하는 모습을 본 팬들이라면 영원히 기억에서 지우지 못할 것이다.

"짱구" 참 친근감 있는 장효조 선배의 닉네임이었다. 선 후 배 모두가 고인을 칭할 때 사용했던 "짱구", 그리고 "짱구" 하면 야구계에서 타격의 대명사로 통하던 짱구선배가 영원히 먼 길을 떠나셨다. 한 동안 마음이 허전 할 것 같고 인생의 뒤안길과 추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메시지를 주고 간 것 같다. 생전에 어깨에 짊어졌던 모든 짐 홀가분하게 털어놓고 부디 하늘나라에 가서 편안하게 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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