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먹은 기자님, 사도스키한테 미안하지 않나요?

2011. 7. 1. 17: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양형석 기자]

경기도 의정부에서 서울 상도동까지 통학을 했던 친구 A군은 상대적으로 학교에서 거리가 가까운 우리 집을 자신의 자취방처럼 활용했다.

A군은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샤워를 하거나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집에 없을지도 모르니 열쇠를 따로 맞춰 달라는 황당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물론 이것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을 제 집처럼 활보하고 다니던 A군도 활동 범위는 내가 쓰는 방과 부엌, 화장실로 정해져 있었다. 가끔은 술에 잔뜩 취해 우리 집에 오는 일이 있어도 여동생이 쓰는 방이나 부모님이 계시는 안방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만약 A군이 안방이나 여동생 방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잠을 자거나 물건을 함부로 썼다면 그 순간 집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이것은 부모님과 여동생이 집에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렇듯 가족이 아닌 불청객이 허락받지 않은 곳에 함부로 드나들지 말아야 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에티켓이다. 그런데 프로야구 구장에서 가족도 아닌 이가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룰을 어기는 사건을 저질러 야구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유력 스포츠 일간지 기자가 선수단 라커룸에서 식사를?

라이언 사도스키는 직접 촬영한 유튜브 동영상을 팬들과 소통하던 선수였다.

ⓒ 롯데 자이언츠

라이언 사도스키는 지난 2010년부터 두 시즌째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단 25%의 확률밖에 되지 않는 '재계약'에 성공한 4명 중 한 명이다.

사도스키에게는 조금 색다른 취미가 있다. 바로 자신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로 올리는 일이다. 유투브는 이역만리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사도스키와 미국에 있는 친구들의 소통의 장이자 외국인 선수의 친근한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사도스키는 지난 6월 21일 오전에도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런데 사도스키가 올린 영상에 라커룸(외국인 선수들은 클럽 하우스라고 표현한다)에서 낯선 이가 식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사도스키는 라커룸 문에 붙어 있는 '선수단 외 출입금지'라는 화면과 식사를 하는 낯선 이의 영상을 교차 편집해 공개했고 이 영상을 본 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상 속의 주인공은 바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스포츠 일간지의 기자였다. 기자가 취재를 빌미로, 선수단이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때로는 경기에 앞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라커룸에서 버젓이 자신의 허기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의 사과 대신 사도스키의 동영상 업데이트 중단 선언

사도스키는 졸지에 자신의 사적인 취미를 잃게 됐다.

ⓒ 유튜브 영상 캡쳐

하지만 야구팬들의 거센 분노를 가져온 사도스키의 동영상은 그날 오후 감쪽같이 삭제되고 말았다. 기자의 사과나 구단의 해명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식사를 하던 기자의 모습이 삭제된 채 영상은 다시 공개됐다.

일주일이 지난 28일 사도스키의 동영상이 업데이트됐다. 제목은 'End of video making'이었다. 제목에서처럼 사도스키가 동영상 업데이트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기자의 그릇된 행동으로 롯데팬들은 사도스키가 제공해 주는 동영상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사도스키가 롯데 구단에게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도스키는 29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이닝 7실점이라는 부진한 투구를 했고, 지금은 퇴출설까지 나오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롯데의 공식 홈페이지 '갈매기마당'을 비롯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었음에도 그 많은 매체에서 단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사도스키'만 검색해도 '사도스키 사건', '사도스키 유튜브', 'OO 기자', 'OO 기자 국수', 'OO 기자 우동' 등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출입금지' 팻말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기자의 특권?

기자도 사람이다.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깔끔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한다면 롯데 선수들을 취재하는 기자를 향한 팬들의 분노는 금방 가라앉게 될 것이다.

나도 지난 2006년 < 오마이뉴스 > 시민기자 자격으로 KBO로부터 시즌 프레스를 발급받아 야구장 현장 취재를 해본 경험이 있다. 일개 야구팬에 불과하던 내가 경기가 끝난 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인터뷰를 했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고단한 직업일 수도 있겠지만, 야구 기자들은 수많은 야구팬들이 한 번쯤 해보고 싶어한 일을 매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단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붙은 곳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특혜를 가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자장면은 당구장에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도 '우동은 라커룸에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오마이뉴스 아이폰 앱 출시! 지금 다운받으세요.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