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매니저] 노장을 활용하는 팀, 노장을 버리는 팀

n/a 2010. 7. 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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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

30대. 야구선수의 황혼기다. 사람들이 '노장'이라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이다. 대개 이때쯤 되면 선수들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한 번 다치고 나면 빨리 낫지도 않는다. 물 찬 제비 같던 순발력은 사라지고,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질 않는다.

벤치에 앉아 보내는 시간은 늘어만 가고, 기자들로부터 은퇴 이후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후배들 앞길을 막는 것 같아 눈치도 보인다. '퇴물'이니 '계륵'이니 하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예외는 없다. 영원히 선수로 남아있을 것만 같던 숱한 이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사실 구단 입장에서 노장 선수는 불안한 존재다. 고연봉에 다루기도 까다로운데다, 무엇보다 부상으로 언제 쓰러질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팀은 젊은 신인급 선수 위주로 전력을 구성하기를 소망한다. 적은 연봉에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자유계약선수가 되기 전까지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어린 선수들로의 세대교체. 한미일 프로야구를 막론하고 모든 구단이 꿈꾸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SK 와이번스는 정말로 이상한 팀이다. 역대 시즌 최다승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이 팀에는 노장 선수들이 매우 많다. 부동의 주전포수 박경완(38세)을 필두로 리틀 쿠바 박재홍(37세), 캐넌 히터 김재현(35세), 이호준(34세) 등이 전부 30대 노장이다.

최근 2~3년 동안에는 다른 팀에서 버림받은 전준호(35세), 안경현(40세), 박정환(33세) 같은 선수들까지 끌어 모았다. 얼마전에는 LG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최동수(40세)도 영입했다. 부업으로 재활용 공장이라도 차리려는 것일까.

이는 베테랑의 가치를 인정하는 김성근 감독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대부분의 팀이 노장 선수를 '퇴물'로 여기는 풍토와는 달리, 김 감독은 베테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테랑의 경륜은 경기를 조율하고, 위기를 넘기고, 승리를 이끈다." "베테랑은 함부로 버리는 게 아니다. 야구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베테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김 감독의 지론이다.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 중에서)

물론 김성근 감독이 노장이라고 무조건 자리를 보장하는 '노인우대' 정책을 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김 감독은 노장과 젊은 선수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쪽에 가깝다. 선수의 나이나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오로지 성실한 훈련 태도와 실력을 기준으로 선수를 평가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김성근 감독의 SK에서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벤치를 지키고 2군으로 내려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은퇴를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없다. 선수가 하려는 의지가 있고 기량만 여전하다면, 노장이라도 젊은 선수와 똑같은 기회가 부여된다. 마찬가지로 젊고 유망한 선수라도 불성실하거나 기량이 더 나은 선수가 나타나면 가차 없이 자리를 잃는다.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도 예외가 없다.

김성근 감독의 베테랑 존중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김재현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김 감독이 LG에 있던 지난 2002년, 김재현은 고관절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날 위기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김재현을 중용했고, 다리를 절룩이며 출전한 김재현은 놀라운 투혼으로 팀을 우승 일보직전까지 이끌었다. SK에서 다시 만난 2007년에도 김재현은 시즌 때는 1할대 타율로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두 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올 시즌에도 김재현의 활약은 눈부시다. .315/.441/.503의 타율-출루율-장타율에 7홈런 7도루 32타점. 뿐만 아니라 벤치에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따끔하게 질책하며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이상적인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장이지만 SK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는 게 대다수 야구인들의 평가다.

만일 김성근 감독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김재현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2002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완전히 벗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팀에 가서 '계륵'이니 '후배들 자리를 뺏는다'느니 '엔트리 한 자리를 전세냈다'는 따위 비난을 받으며 어렵게 선수 생활 말년을 꾸려갔을지도 모르겠다. 기량이나 체력과는 상관없이 단지 노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선수에 대해 실력 이외에는 어떠한 선입견도 갖지 않았다. 나이나 개인적인 친분 대신 선수가 지닌 의지와 노력을 중시했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될 때는 선수가 납득할 만큼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여기에 김재현도 스타라는 허명을 벗고 근성과 노력으로 화답했다. 노장 김재현의 부활이 가능했던 배경이자, 노장과 신예가 조화를 이룬 최강 SK의 비결이기도 하다.

한 전직 코치는 "베테랑의 가치는 단순히 기록으로 환원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고 지적한다. 오랜 선수생활에서 나오는 경험과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단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젊은 선수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얘기다. "혹자는 코치도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명백히 코치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베테랑만이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 SK에서 김재현이 하는 역할은 코치가 아닌 선수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한 코치의 말이다.

김재현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상태. 하지만 SK는 은퇴와는 관계없이 김재현을 시즌 끝까지 출전시킬 계획이다.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그가 지닌 경험과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재현 역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팀의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게임이 곧 김재현의 은퇴 경기가 될 참이다.

SK와 김재현의 예는 우리 프로야구에서 굉장히 행복한 사례에 속한다. 아직도 많은 팀에서 단지 선수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은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젊은 선수와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주지 않고서 "박수칠 때 떠나는 선수는 행복하다"고 하는 건, 덕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아냥에 가깝게 들린다. 언제 박수칠 기회를 줬어야 행복하게 떠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는가. 거꾸로 방망이를 잡아도 3할을 칠 수는 있지만, 벤치에 앉은 채로 3할을 칠 수는 없는 법. 베테랑을 함부로 버리는 프로야구의 악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글 : < 야구라 > 배지헌 (www.yagoor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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